‘2022 생명표’가 경고하는 은퇴 후 재앙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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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생명표’가 경고하는 은퇴 후 재앙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12.1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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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난 6일, 2022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통계청이 한국 인구의 생명표를 발표했다. 이 생명표가 나오면 대부분 언론은 기대 수명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보도에만 그친다. 인구를 보는 사회적 관심이 기대 수명보다는 고령화 또는 출산율 감소에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고령화는 인구의 생산성을 감소할 뿐 아니라 부양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며, 출산율 감소는 생산 인구 규모를 축소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라는 인구 변화의 최종 피해는 소비와 생산 위축이라는 실물 경제적 충격으로 해석한다. 즉, 가장 유력한 경제이론에서 한 국가 경제의 생산 규모는 자본과 노동으로 구성하는 생산함수에서 결정하는데, 생산 규모와 함께 균형 GDP를 결정하는 수요는 국민 소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술이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을 배가하는 총생산성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지금까지 인구에 관해서는 인구의 양적 측면에 영향을 주는 고령화와 출산율이라는 요인과 실물경제에 관한 충격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필자는 새로운 시각에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인구의 질적 측면인 ‘기대 수명’을 소개하려고 한다.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이 고도화한 경제일수록 거대하게 축적한 ‘부’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wealth effect)은 막대하다. 또한 ‘부’는 자산관리(asset mamagement) 과정을 통해 축적한다. 자산관리는 금융 또는 실물의 자산에 투자하고 관리하는 과정이며, 자산관리 과정에서 투자 기간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투자 기간은 곧 자산관리의 위험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의미의 투자 기간은 ‘듀레이션’(duration)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 듀레이션은 투자 대상 자산에서 기간별로 발생하는 수익과 손실 및 매입, 매각 대금 등 모든 현금흐름을 반영한 자산의 실질 만기다. 중간 투자 기간에 발생하는 현금흐름이 많아질수록 자산 소유에 필요한 투자자금 회수 기간이 단축하며 이 회수 소요 기간이 듀레이션이다. 회수를 빨리하면 투자자에게 투자자금 회수 불확실성이 줄고 회수가 늦어지면 투자 기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널리 알려진 투자이론인 채권가격 정리에서 만기가 길고 중간 회수 현금흐름이 없는(듀레이션이 큰) 채권은 그렇지 않은(듀레이션이 짧은) 채권보다 이자율 변동에 대한 채권가격의 변동성이 아주 커진다. 이 변동성이 경제적 의미의 위험이다. 통상 위험은 분산과 같은 확률변수와 확률분포 등으로 확률적 예측이 가능한 것을 의미하고, 불확실성은 적용 가능한 확률분포가 없거나 확률분포의 꼬리 끝에 위치하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말한다. 물리학적으로도 투자 기간의 증가 즉, 시간은 연장할수록 엔트로피가 통제 불가능하게 증가하며 투자자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산관리의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국민은 생명 유지 기간에 경제 활동으로 소득을 벌어 주거, 결혼, 육아, 교육, 노후를 목적으로 소비하며, 남은 소득을 투자하거나 목표 달성을 위해 부채를 일으키는 자산관리 활동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자산관리 결과는 부동산, 금융자산, 실물자산 등 형태로 국부의 상당 부분을 형성하므로 국가 경제에도 자산관리는 아주 중요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 유지 활동은 그 자체가 자산관리 활동이며 인간 수명은 곧 자산관리 기간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가 조사 발표하는 생명표에서 기대 수명 증가는 국민의 평균적 자산관리 기간 확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료1(출처=통계청)
자료1(출처=통계청)

이제 인간 수명의 경제적 의미를 설명했으니 이번 달 발표한 생명표를 해석해보자. 2022 생명표는 1970년 이후 지난해까지의 수명에 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대한민국 국민 기대 수명을 보면 1970년 태어난 사람은 평균적으로 62.3년, 지난해 태어난 사람은 83.6년 살 것으로 추정한다. 51년 시차로 약 21세 늘어난 기대 수명은 무엇을 의미할까? 현재 법으로 정년을 60세로 지정하고 있으니 한국 남자의 경우 국방 의무 준수 후 30세부터 경제활동을 한다면 개인차가 있겠지만 평균 약 30년간 소득 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료2(출처=통계청)
자료2(출처=통계청)

다만 불행하게도 기대 수명이 늘어나도 소득 활동기간이 함께 증가하기 어렵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건강수명은 66.3세로 측정이 시작된 2012년 65.7세 이후 늘지 않았다. 생존확률도 65세 이후 급격하게 떨어진다. 아직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상실은 의학이 넘기에는 먼 장벽이다. 이 때문에 65세를 은퇴 시점으로 보고 전적인 소비 기간으로 추정할 수 있는 65세의 기대 여명은 1970년에는 10.2년, 지난해는 19.3년으로 9.1년이 늘었다.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평균 증가인 5년과 비교해도 상당한 기대여명 증가다. 지난해 이후 한국 국민은 30년 꼬박 벌어서 결혼, 출산, 자녀 교육까지 완성하고 부동산이든지 금융자산이든지 은퇴 후 약 20년 소비할 자산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잘 늘어나지 않는 건강수명 특성으로 66세 이후에는 의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므로 노후 준비 자금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결과적으로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소득 활동기간보다는 소비 기간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표(조수연 편집위원)
표(조수연 편집위원)

개인의 자산관리 기간은 소득 활동기간과 이 기간 형성한 부를 소비하는 기간을 통산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국민의 자산관리 필요기간은 1970년 기준 약 30년에서 지난해 50년으로 증가했다. 증가한 투자 기간 20년이 의미하는 바를 가장 간단한 예로 살펴보자. 지난해 은퇴한 사람이 A~E 다섯 명의 자산관리자(또는 투자 방법)를 선택한다고 하자. 각 선택 대안의 평균 연수익률로 10년과 20년 후 복리 추산한 총 수익률은, 1% 차이가 투자 기간의 증가에 따라 큰 차이를 가져온다. 만약 초기 투자 실패( 첫째 연도 마이너스 3% 또는 마이너스 30% 가정)가 있다면 그 결과는 노후 복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이 효과는 투자 기간의 증가로 증폭함을 표에서 알 수 있다. 기대 수명의 증가는 섣부른 자산관리의 악영향을 증가시키므로 투자자는 자산관리자 또는 투자 방법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사례처럼 30% 이상 손실을 초래하는 투자 실패를 가져올 공격적 투자보다는 2% 이내 안정적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 자산관리자에게 더 유익할 수 있다. 또한 은퇴 후에는 추가 소득을 벌어 손실을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기대 수명의 증가는 당연히 자산관리 기간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것은 투자자 위험을 키운다. 또한 부자와 빈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크게 존재하는 현행 금융 또는 부동산 시장에서 기대 수명 증가는 빈자와 고령자에게 부의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는 경향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한국은 노인이 안심하고 자산관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 문제가 가장 심각한 한국에서 기대 수명 증가는 복이라기보다 오히려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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