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펀드 원금 반환’ 결정에 빠진 것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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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펀드 원금 반환’ 결정에 빠진 것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11.2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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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난 22일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는 선진국 독일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인 헤리티지 펀드에 투자한 금융투자자의 투자원금을 전액 반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헤리티지 펀드는 독일 부동산 리모델링 사업에 브리지론 대출을 실행하는 펀드이다. 신한투자증권 등 7개 금융회사가 2017년부터 4885억원 판매했으나 시행사 사업중단으로 2019년 6월부터 환매가 중단되어 투자원금의 약 97.2%를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사모펀드의 독일과의 악연은 2019년 8월에도 이어졌다. 독일 국채금리 및 미국, 영국 CMS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F 사모펀드를 하나, 우리은행이 판매했으나 금리가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자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고, 금감원 검사 후 같은 해 12월 분조위가 10~80% 배상 결정을 내렸다. 2019년 당시에는 해외금리 연계 DLF가 먼저 떠들썩했고, 이후 벌어진 금감원 실태 조사 이후 헤리티지, 라임, 옵티머스, 디스커버리, 이탈리아 헬스케어 등 이른바 5대 사모펀드의 문제가 언론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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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펀드에 내려진 전액 배상 판결은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에 이어 세 번째인데, 주요 원인은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로 분조위는 밝히고 있다. 분조위의 결정 내용을 보면 먼저 해외 운용사가 금융상품의 주요 부분을 거짓, 과장했음을 상세하게 해설하고 강조했다. 독일 ‘기념물 보존 등재 부동산’을 주거용 건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의 시행사가 시공 능력을 과장하고, 재무 능력이 미치지 못함에도 사업의 안전장치를 허위 날조했다.

또한 부동산 개발에 대한 허가도 없었으며 이 사업에서 시행사는 제안서보다 과다한 24.3%의 수수료를 취득하게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질이 안 좋은 해외 사기꾼에게 국내 판매사가 당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매사도 해외 자산운용사의 제안서에 속아서 금융투자자에게 이 펀드를 판매했고, 금융소비자는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으므로 민법 규정에 따라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자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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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분조위는 사건의 본질을 판매사의 의도하지 않은 과실로 인한 금융사고라고 보는 듯하다. 가능한 한 건조하게 금융사고 관련 사실을 나열하고 적시하면서 헤리티지 펀드 부실과 환매 중단 사태는 단순히 해외 사기꾼이 벌인 금융사고임을 공들여 설명한다. 이런 시각에서 분조위의 전액 배상 결정을 판매회사가 수용하면 금융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훌륭한 금융회사라는 주장에 흠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2019년 해외금리 연계 DLF 부실 관련 배상 결정 발표에서는 ‘본점 차원의 과도한 수익 추구 영업 전략 및 심각한 내부통제 부실이 대규모 불완전 판매로 이어져’라고 명기하며 금융회사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분조위 판단이 있었다. 헤리티지 펀드보다 DLF 사태가 상대적으로 손실이 더 적었음에도 분조위의 판매사에 대한 시각이 관대해진 것은 필자의 편견일까, 아니면 그때와 지금 판매회사 로비력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금융사고에서 결정적으로 금융당국의 역할에 관한 판단은 어디에도 없는 점은 세월호와 10·29 참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자료3. /출처=금융위원회
자료3. /출처=금융위원회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전까지 사모펀드 산업 육성은 금융당국의 20여 년에 걸친 숙원이었다. 1998년 처음 금융당국이 국내에 사모펀드를 도입한 이후 금융 선진국의 헤지펀드를 키우겠다는 일관된 목표 아래 사모펀드는 지속해서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DLF를 시작으로 한 사모펀드의 부실 운용, 불공정 판매 사태 발생을 계기로 그 이전에는 규제 완화가, 이후에는 규제 강화의 정책 흐름이 이어졌고 지난해에는 사모펀드 제도 개편 완료를 금융당국은 선언했다. 금융위가 자료에서 공언하는 것처럼 지난 20여 년 동안 모든 순간 사모펀드 배후에 금융당국이 있었다.

자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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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책 흐름에서 눈에 띄는 것이 2015년 10월 시행한 전면적인 사모펀드 활성화 추진이었다. 이 규제 완화조치 이후 발생하는 사모펀드 부실의 실마리를 금융 정책이 제공했던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2015년 금융당국은 사모펀드를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으로 재조정하면서 특히 전문투자형 펀드 운용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운용사는 인가가 아닌 등록요건만 충족하면 진입을 허용하고 운용인력 제한도 대폭 완화했다. 또한 합리적 정비라며 이해 상충 방지 장치도 풀었으며 사모펀드 운용사의 설립 사후 보고 허용, 운용규제 개선, 사모펀드 판매의 적합성·적정성 원칙 면제, 투자광고와 직접판매 허용 등도 시행했다.

규제 완화로 사모펀드 사업의 수익성은 폭발했을 것이고 금융업계의 내로라하는 운용, 마케팅 인력을 유인했을 것이다. 이는 공모펀드 산업 위축을 촉진했을 것이며, 또한 이 시점 이후 사모펀드를 악용하려는 업자들은 호기를 만났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2019년 이후 드러난 사모펀드 부실, 불공정 판매는 2015년 사모펀드 정책 실패라는 반성이나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했으나 감독권을 독점한 금융당국은 책임과 원인을 운용회사, 판매회사, 그리고 금융소비자에게서 찾는다.

국제사회는 초강대국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를 우려한다. 이러한 예외주의를 금융당국에서도 볼 수 있다. 언제나 시스템 불안정 또는 실패가 감지되는 금융사고에서 금융 정책과 금융 감독은 책임 점검 리스트에서 예외이며, 금융사고는 일시적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헤리티지 펀드 분쟁 조정 결정의 분조위 시각에는 뭔가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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