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앞에 닥친 ‘2023년 위기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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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앞에 닥친 ‘2023년 위기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12.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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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태광그룹은 경영진의 세대가 바뀌면서 평판이 극도로 뒤집힌 안타까운 기업집단이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용 회장은 1996년 75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나 여전히 ‘정도 경영’의 그루로 세간에 회자하는 인물이다. 창업주는 근검절약으로 재계에서 정평이 나 있는데, 화려함보다 내실을 추구한다는 신념으로 번듯한 사옥 없이 국내 재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탄탄한 그룹을 일궈냈다.

아크릴을 생산하던 태광그룹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과 수출정책에 딱 코드가 들어맞으며 고속 성장을 했음에도 한편으론 정치와의 결탁을 경계하며 경영에만 전념했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에서도 세무조사를 당하며 살아남았던 것도 정경분리의 철학 덕분이었다. ‘은행 이자는 휴일에도 불어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무차입 경영을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엄격한 경영 철학이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명문 사대부 가문을 꿈꾸었다는 흔적이 있다. 이임용 회장은 6남매를 뒀는데 모두 중매를 통해 혼인했고 동국제강, 롯데그룹, LG그룹, 전직 서울시장, 한국 베링거인겔하임 등과 화려한 사돈 인맥을 형성했다. 현재의 이호진 회장은 롯데그룹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의 선입견과는 달리 이임용 회장이 사돈 인맥을 경영에 끌어들이는 법은 없었다. 이임용 회장 재임까지 태광그룹은 대표적인 경영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 자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태광의 명성은 2세 경영에서 거의 모두 훼손됐다는 평가다.

자료1(출처=공정거래위원회)
자료1(출처=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시대상기업집단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 자료를 발표한다.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서 태광그룹의 현주소를 보면 이호진 회장이 19개 기업을 지배하며 공정자산총액은 약 9조8000억원에 이르고 기업집단 자산 순위는 48위다. 부채비율은 548%(비금융보험 26.7%)인데, 금융회사의 영향이겠지만 선대의 무차입 경영은 빛이 바랜 것 아닌지 의문을 가지기 충분하다.

무엇보다 선대 회장의 태광그룹 경영 철학 계승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이는 증거는 차고 넘치는 것 같다. 2004년 이임용 회장의 3남 이호진 현 회장은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그룹 업종 조정에 나섰다. 섬유와 화학으로 내실 성장을 추구하던 태광그룹은 선대에서 평생 축적한 현금을 바탕으로 한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뉴미디어와 금융으로 확장을 꾀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코넬대 경제학 석사, 뉴욕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가진 경제통 이호진 회장은 태광그룹 재계 서열을 50위 권에서 2000년대 초반 36위까지 끌어올리며 성공한 2세 경영인으로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기도 했다.

자료2(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나무위키)
자료2(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나무위키)

그러나 호사다마일까. 급속한 확장에는 여러 가지 무리수가 있기 마련인데, 2010년대부터 드러낸 태광그룹의 행보는 이전 성공 신화를 모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우선 이호진 회장 본인이 2012년 비자금 조성 및 회삿돈 횡령으로 4년 6개월 형을 받았고, 수감 중 유전무죄·무전유죄로 국민 공분을 사는 황제 보석 파문을 일으키며 태광그룹 이미지에 큰 상처를 남겼다. 2010년대 주요 사건 중 이호진 회장의 신성장 주력 사업인 티브로드와 관련한 사건 사고가 잦았던 것도 눈에 띄며, 울산 방사성 폐기물 불법 보관 사건은 기업이익을 위해 국민 목숨을 위태롭게 한 사건이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또한 2019년 공정거래위가 검찰에 고발한 김치·와인 오너회사 강매 사건은 현재와 과거의 태광그룹 경영 철학이 아주 다름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달 흥국생명보험은 강원지사가 무심한 정치적 동기로 불을 지른 금융시장 불안에 기름을 끼얹는 의사결정을 했다. 5년 만에 갚기로 구조화해서 발행한 신종 자본증권의 상환 약속기일에 보니 조달 금리가 불리해지자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상환기간 연장을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디폴트 선언으로 국제금융 시장에 한국 채권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우리나라 채권이 20~30% 폭락하는 사태를 불렀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 불이행이 협소한 정치적 시각이었다면 흥국생명보험의 자의적 상환연장은 협소한 경제관이 낳은 의사결정이었다. 과연 선대 회장은 이 채권 만기일에 어떠한 의사결정을 내렸을지 궁금하다.

자료3(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공정거래위)
자료3(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공정거래위)

이렇게 경영진의 교체와 경영 철학의 전환은 기업에 치명적인 리스크를 가져온다. 지난해 말 이호진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출소하면서 전면 경영 복귀를 기대했으나, 같은 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 관련 신고 시 차명주식 허위 기재 혐의로 고발 조치했고, 이후 금융위원회는 이호진 회장에게 흥국생명 등 금융회사의 대주주 자격 부적격을 통지했다. 이에 따라 이호진 회장의 그룹경영 복귀에 차질이 생겼고 자연히 3세 경영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태광그룹이 제출한 대규모기업집단 현황 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과 아들 이현준은 티알엔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아들이 공식 직함으로 경영 일선에 등장하고 있지는 않다.

자료3(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공정거래위)
자료3(인포그래픽=조수연, 정보출처=공정거래위)

2023년 태광그룹 앞에는 그룹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현안이 수북이 쌓여있다. 우선 공정자산총액이 곧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여 상호출자제한 해소가 필요하다. 지난 9월 7일 공정위 공시 자료에 따르면 1개의 상호출자 고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최근 악화한 흥국생명보험의 지급여력비율(RBC) 개선을 위한 자본 조달도 급한데, 전환주식을 통해 태광그룹이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흥국생명의 부실을 전 그룹으로 확산하는 것으로 그룹을 배드뱅크로 이용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흥국생명이 2%대 자산운용 수익률에도 4~5%대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매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역마진에 의한 흥국생명보험의 추가적인 수지 악화가 우려된다.

2023년은 전 세계적인 고금리·고물가 국면에서 경기침체 장기화가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태광그룹의 전략적인 경영 의사결정을 할 사령탑이 모호해졌고, 기존 사령탑도 신뢰가 약화한 상태에서 태광그룹이 어떻게 2023년 난관을 헤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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