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고정금리’로 바꾸라는데 왜 꺼림칙하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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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 ‘고정금리’로 바꾸라는데 왜 꺼림칙하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6.0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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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필자가 ‘이순’(耳順) 고개를 넘은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이순은 논어에서 나오는 말로 공자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교과서에 존재하는 이순이 필자에게 닥쳤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래도 사회 현상을 보면 대충 속과 겉을 알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다. 이순에 닥친 필자가 드는 확신은 사람 사는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것이다. 윤리적 당위성을 제거하면 표리부동은 이중성 또는 양면성이고, 동양 고전에서는 만물 운동법칙인 음양(陰陽)이다. 물리법칙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밝힌 ‘거시 세계와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이상한 미시 세계가 공존’한다. 자연이나 사회의 근본은 극단적인 치중(置重)이나 편견이 아니고, 서로 다른 것의 어울림 또는 ‘중용’(中庸)이라는 생각이다.

경제학을 학교에서 배운 필자는 금융 현장에서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체험했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경제학에서 일반인을 괴롭히는 부분도 다름 아닌 표리부동이었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현대 경제학(특히 주류 신고전경제학)은 수학적 방법론을 중시하며 서로 다른 변수 사이의 균형을 다루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금융도 사람 사는 이치를 다루는 것인 만큼, 완벽한 좌우 대칭을 가진 정규분포곡선만큼은 아니더라도 조화와 중용이 항상 필요하다. 경제에서 치우침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균형으로 복귀하려는 조정 작용을 초래한다. 경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금리도 이러한 원칙에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인데 그러나 일벌백계의 검찰 철학이 장악한 금융당국의 최근 행보를 보면 경제원리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강요하는 듯하다.

/출처=금융위원회
/출처=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원인 이해는 회피하고) 질적 구조 개선을 얘기하며 그 대책으로 고정금리대출 확대를 얘기한다. 금융당국은 올해 들어 은행권의 경영과 영업 관행,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달 25일 9차 TF에서는 가계부채의 고정금리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자료1 /출처=금융위원회
자료1 /출처=금융위원회

지난달 29일 국제금융협회 발표에 따르면, 1분기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2%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말 가계대출은 1739조원이었고, 이 중 주택담보 대출(주담대)이 58.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료1에서 보는 것처럼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담대에서 변동금리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해 말 기준 56%(은행은 68.7%)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하며, 가계대출 구조를 취약하게 하는 낙인을 ‘변동금리’에 찍고 있다.

자료2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자료2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그 근거는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미치는 악영향인데 한국은행의 분석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부채 보유 가구는 63.3%이며, 이 가구가 금리를 1%포인트 인상할 때 평균적으로 DSR(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가 1.94%포인트 악화하고 소비는 0.49% 감소한다. 특히 자영업자는 금리 1%포인트 상승이 DSR를 2.43% 증가하며, 소비는 0.53%로 급격히 감소시킨다. 또한 금리 인상은 나이별로는 30대와 60대 이상 고령 세대의 DSR를 다른 나이에 비하여 악화시켰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30대 이하 소비를 크게 줄였다. 경제 변수의 수치 변화는 펜 끝에서 그치지 않고 심각한 사회문제를 가져온다. 특히 자료가 지적하는 청년층의 소비 감소는 교육, 후생의 격차로 미래 소득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과연 금융당국 주장처럼 고정금리가 대출 공급자인 금융기관과 수요자인 가계 모두에게 금리 변동 위험에서 벗어나는 항구적인 안정화 장치(stabilizer)일까? 최근처럼 금리 인상기에 닥쳐서는 일견 금융당국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가계대출자의 남은 생애 동안(대출 상환 의무가 가족 승계 없이 대출자 사망으로 소멸할 때까지) 변동금리 이하 또는 소폭 그 이상에서 금리를 고정한, 거의 무한 만기의 고정 금리 대출이어야 가계는 금리 변동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적인 주담대가 어려운 몇 가지 경제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고정금리 대출 공급 측면의 문제다. 금리 변동은 물가 변동처럼 경제 내에 구성원이 피할 수 없는 체계적 위험(systemic risk)이다. 지속적인 금리 상승기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해도 만기가 있는 고정금리 대출은 만기 대체할 때 이전에 피한 금리 상승분에 노출하고 만다(금리 하락기에 대출로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를 가계가 선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기 대체 위험을 피할 무한 만기 고정금리 대출은 불가능하다. 금융회사 관점에서는 만기가 길어질수록 대출의 이자율 변동 위험 등이 증가하므로 금리를 고정하는 데 따른 위험 보상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연히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고정금리 대출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고정금리를 공급하는 금융회사는 변동금리를 장기간 고정금리로 바꾸는데 금리스와프를 해야 하는데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래서 금융회사가 고정금리를 공급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목표를 정해 부여하고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당연히 비싼 금융서비스를 가계가 선택할 수 있도록 저가로 가계에 공급하는 것은 금융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정부가 복지 차원에서 지원하는 이전 소득에 가깝다. 이것이 주담대에 정부 지원 등 특별한 금융시스템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금융회사가 매년 회계기간을 설정하고 재무제표를 작성하며 경영진을 평가하는 영리법인 형태로 존재하는 한에서 손실을 감수하는 종신(또는 무한) 만기 대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영리법인이 손실을 자초하는 것은 업무상 배임일 것이다. 아마 금융회사 경영진은 차라리 회수 불가능한 대출을 주주 승인을 받아 회계상 기부 처리를 하든지 대손상각을 하려 할 것이다.

자료3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자료3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다음 생각할 것은 가계가 고정금리 대출을 선택하는 것이 금융서비스의 수요자, 즉 가계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하는가이다. 미시경제학에서는 소비자에게 소비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소비자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기본 원리에 가깝다. 바로 이것이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이며, 이 원리는 금융 소비에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은행 분석(2022.10.25. ‘최근 가계 주담대의 변동금리 결정 요인 분석’)에 따르면, 가계가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이유는 가계의 무지나 금융당국의 시혜에 가까운 금융정책 부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료3은 복합적 요인을 고려하며 가계가 주담대 금리 유형을 선택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자료4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자료4 /출처=한국은행, 2023.4.29 ‘금리 상승에 따른 차주의 이자 상환 부담과 소비 변화’

자료 4는 고정·변동금리 차이가 확대할 때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짐을 보여준다. 가계는 금리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출 구조를 조정한다(현실은 대부분 금융상품 판매 인센티브를 받는 금융회사 직원이 금리 상황에 따라 먼저 고객을 유도한다). 변동금리는 대부분 단기 금리 상품이므로 고정·변동금리 차이는 장단기 금리 차이를 반영한다. 이처럼 약 1년 안팎 뒤에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 지표, 장단기 금리 차이는 가계대출 구조 조정 과정에도 개입한다.

정부가 고정금리 대출 전환을 추진하는 논거는 금리 인상기에 변동금리 주담대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 증가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금리 상황이 이 논거를 지지할지는 의문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을 촉발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 인상은 곧 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물론 고금리가 상당 기간 유지한다는(longer for higher) 부담은 있지만, 최근 미국 주식시장 상승의 원인이 미국 정책금리 인상 중지와 조만간 인하한다는 예측인 것을 고려하면 국내 금리 인상기도 조만간 멈출 확률이 높다. 자료 4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정·변동금리 차이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변하며 가계대출자의 선택 조건도 변화한다.

자료5 /출처=KDI, 2019.12 ‘장기 실질 균형이자율 전망 방법 개선을 위한 연구’
자료5 /출처=KDI, 2019.12 ‘장기 실질 균형이자율 전망 방법 개선을 위한 연구’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금리는 뚜렷한 내림세다. 인구 감소, 고령화, 기술 고도화 등으로 장기 실질 성장이 둔화하고 이에 따라 실질 금리가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차이가 장기적으로는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특혜성 금리보다 높은 고정금리로 지금 갈아탄 가계는 다시금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도해지 수수료를 무릅쓰고 변동금리로 바꿔 타야 할 수도 있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정밀한 대출의 경제적 분석과 요인이 아니다. 고정금리를 가계에 강요하는 것이 단순하게 가계에 미래 행복을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 강요는 1~2년 수명의 금융당국 수장 처지에서는 어떻게든 성공에 지장을 줄 금융시스템 불안정을 재임 동안 원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경제정책은 많은 경우 ‘국민’이라는 이름을 거론하지만, 사실 궁극적 목적은 정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자. 우리는 과거 어떤 정부에서나 정책 실패 사례와 무책임한 태도를 수없이 목격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금융을 알아야 한다. ‘자유’를 최고 가치로 한다는 윤석열정부의 금융당국이 정작 경제적 자유를 서슴없이 제한하는 것도 이율배반이라는 점에서 꺼림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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