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사받는 삼성생명 부동산 거래의 수상하고 기구한 인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상태바
검찰 조사받는 삼성생명 부동산 거래의 수상하고 기구한 인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5.16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삼성과 대한방직은 일본 식민지 경제와 관련되었으면서 대구를 모태로 대한민국 경제사에 커다란 영욕의 기록을 남긴 기업이다. 삼성은 1938년 삼성상회를 모태로 출발해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으로 성장 기반을 다졌다. 초기에 사카린 사태를 겪은 이후 불법 비자금, 편법 증여, 최순실 게이트 등 굵직한 경제사건과 정경유착 파문을 일으켰으나, 삼성전자 성공에 힘입어 지난해 기준 국내 재계 서열과 시가총액 1위이며, 세계시장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대한방직은 대구에 있던 일본 식민지 시대 방직공장을 한국전쟁 직후 불하받아 창업했고, 창업자 설경동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특히 대한방직은 창업자가 자유당 재정부장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용한 전형적인 정경유착 사례였다. 이후 설경동은 대한전선, 대동제당, 대동증권을 설립했고, 1950~60년대 핵심 산업이었던 제분·제당·방직 중 두 개 산업을 거머쥐며 1990년대 굴지의 재벌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를 맞으면서 그룹 주력 계열사 아세아종합금융이 이른바 종합금융 사태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이에 설씨 총수 일가는 차명계좌를 통한 대한방직 불법 대출이 발각되고, 이후 진승현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며 커다란 오명을 남기고 삼성과는 반대로 쇠락의 길을 갔다.

삼성과 대한방직은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창업, 주요 핵심 산업 장악, 정경유착, 경제 비리에 있어 유사점이 있으나 종착점은 크게 달랐다. 그 가운데서도 금융에 대한 경영 방식은 훗날 두 재벌 운명에 큰 분수령을 만들었다. 대한방직 그룹은 금융을 총수 일가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다가 배가 갈라진 거위 꼴이 됐고, 삼성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37개 금융회사를 거느리는 금융 그룹으로 성장했다. 법률에 따라 금융복합기업집단으로 분류된 삼성 금융 그룹은 지난해 9월 말 공시 기준 총자산 462조원, 임직원 수 2만4000명이 넘는다.

이들 두 그룹은 90년대 재벌로 공존했으므로 공식·비공식 어떠한 형태든 교류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정계든 재계든 접촉점을 늘려야 부의 극대화에 유리하다는 점을 재벌은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왕왕 거론되는 네트워크 효과를 재벌은 동물적 감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는 보통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몇 가지 흔적에서 추정할 뿐이다. 삼성생명의 이상한 부동산 거래에서 필자는 이 흔적을 본다.

최근 삼성생명과 아난티가 부동산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지난 2월 압수수색에 이어 과거 삼성생명에서 부동산 투자 사업을 담당한 임직원을 소환 조사했다. 2009년 4월 아난티는 서울 송파구 부동산을 500억원에 매입하고 잔금을 치르기도 전, 삼성생명에 다시 매도했다. 삼성생명의 매입가는 970억원으로 약 2배에 이르며 이 부동산 거래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당시 해당 부동산을 검토한 투자심의위원이자 현 삼성생명 사장인 전영묵도 검찰이 소환 조사했다. 전영묵 대표는 2009년 삼성생명 투자사업부장이었다.

아난티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자문료 명목으로 삼성생명 전직 직원에게 금품을 건넨 정황도 검찰은 확인했다. 혐의가 사실이면 고객자산으로 투자하고 배당하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삼성생명은 심각한 신뢰 상실 사태가 예상된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말 총 281조원 자산 가운데 투자부동산으로 약 3조6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총자산에서 부동산 투자 비율은 낮지만, 절대 금액 규모는 적지 않다. 검찰은 2009년 삼성생명 부동산 부당거래에 횡령·배임 등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아난티가 매입해 삼성생명에 매각한 송파구 부동산은 지금 잠실 롯데월드 건너편의 삼성생명 잠실빌딩이다. 이 부동산을 아난티에 매각한 사람은 바로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이었다. 이 땅은 설 회장의 선친 설경동 대한방직 창업자가 과거 살던 종로구 궁정동 집이 개발로 수용되며 대토로 받은 곳이다. 설 회장은 예금보험공사로부터 한스종금(옛 아세아종금) 손실 회수를 위한 경매 압박과 세금 체납에 시달렸다. 수수께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설 회장이 직접 삼성생명에 고액으로 매각해서 차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왜 아난티에 저가로 매각했나 하는 것이다. 2009년 당시 삼성 측은 설 회장 측에 600억원대에 매입 의사를 타진했으나, 설 회장이 아난티에 더 싸게 매각한 것을 검찰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대한방직 설 전 회장의 저가 매도 수수께끼는 그들이 벌인 진승현 게이트라는 금융사고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뉴스타파 보도(2021년 4월)에 따르면 1997년 대한방직 3세 설범 회장은 불법 대출을 끌어다 쓴 아세아종금 주식 870만주를 진승현에 단돈 10달러를 받고 넘겼다. 이 과정에서 480억원이 넘는 특별 손실이 발생했다. 아세아종금 발행주식 28.6%, 104억원어치 주식을 1만원에 판 기이한 거래는 저가 매도 계약의 원조 모델이다. 그러나 저가 매도 계약에는 설씨 일가의 차명 주식 620만주를 시세보다 높은 204억원에 넘겨 막대한 비자금을 만들어 준 이면 계약이 있었다. 이 사례에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저가 계약에는 반드시 그 차액을 설명할 매도자의 꿍꿍이가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방직-아난티-삼성생명이 관련된 수상한 계약이 현대판 진승현 게이트가 아닐지 궁금한 대목이다. 일요신문(5월 4일)은 2009년 156억원의 고액 체납자인 설원식 회장이 다운 계약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가 매도의 구조 배후에는 탈세와 비자금이 있고 삼성생명은 악의든 선의든 이 과정에 연루되고 말았다. 세간에 삼성의 정보력은 정보기관을 앞선다고 한다. 과연 삼성생명 투자심의위원회와 경영진은 필자도 알아낸 이 내용을 몰랐을까?

이와 같은 수상한 부동산 거래와는 상관없지만, 부동산을 매개로 한 삼성과 대한방직의 인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충동 자택은 원래 대한방직 설원식 회장 소유였다. 여성동아 보도(2021년 10월)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2014년 한국자산신탁에서 이 주택을 350억원에 매수했다. 이건희 회장 사망 이후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CJ그룹 소속 삼성가 종손이 매입하여 소유하고 있다. 이 집은 건축에 관심이 많은 대한방직 설원식 회장이 일본 건축가, 조경 예술가를 동원해 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지은 저택이라고 설원식 회장의 전 비서가 증언한다. 삼성과 대한방직의 부동산을 매개한 인연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자료=삼성생명 사업보고서
/자료=삼성생명 사업보고서

인베스트조선은 지난 12일 기사에서 2009년 당시 삼성생명 내부 시스템이 수상한 부동산 거래의 출발점이었다고 주장한다. 필자가 2009년 삼성생명 사업보고서를 확인하니, 당시 부동산사업부는 자산운용부문 사장이 총괄했다. 이사회 규정에 따르면 500억원을 초과하는 부동산 거래는 경영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하며, 송파구 부동산 매입은 2009년 7월 가결 내용에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2009년 당시 삼성생명의 투자 실무를 검토하는 투자심의위원회는 아난티 부동산 매입 건과 관련 전영묵 현 삼성생명 대표가 투자사업부장으로 근무하며 참여했다. 필자도과거 금융회사에 재임할 때 투자심의위원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대부분 회사에서 위원회란 본질적으로 위험을 파악하고 분담하는 기능을 하며, 회의에서 노출된 위험을 덮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렵다. 이러한 필자 경험으로 미루어 2009년 당시에 대한방직-아난티-삼성생명 부동산 거래에 대한 내막을 투자심의위원은 잘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경영위원회에서 970억원의 부동산 매수 건을 가결했다면 경영진도 내용을 알고 의사 결정에 개입했을 것이다.

/자료=삼성생명 공시실
/자료=삼성생명 공시실

필자가 보기에 삼성생명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는 불법이라는 측면을 넘어 금융 산업 관점에서 더욱 심각한 의미가 있다.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삼성생명이 주도하는 삼성 금융복합 기업집단은 지난 4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및 개선 명령을 받았다. 삼성 금융복합 기업집단은 지난해 9월 말 공시 기준 자산규모가 462조원인데,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279조원, 삼성화재가 87조원, 삼성증권이 57조원, 삼성카드가 29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삼성 금융복합 기업집단 자산규모는 지난해 말 국민연금 적립 금액 748조원의 약 62%( 삼성생명 37%) 수준이다.

또한 삼성생명의 영향력 아래에 인생 자산을 맡긴 사람은 국민연금 가입자와 비교할 때 약 84%에 달한다. 기업의 붕괴는 재무에 미치는 시장 위험도 문제지만 경영 방식, 기업 도덕 수준이 초래하는 운영위험이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거대한 보유자산은 사회적 영향력을 의미하며 삼성 금융그룹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사회적 파문을 초래할 수 있다. 삼성생명의 이상한 부동산 거래와 같은 위법과 내부통제 일탈은 삼성그룹 내 한 금융회사나 일부 직원의 일탈이나 금융사고로 국한하기에는 관련된 고객자산이나 고객 규모로 보아 사회적 영향력이 너무 크다. 삼성생명의 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아직도 확장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준법과 내부통제가 사회적 문제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자료=삼성생명 공시실
/자료=삼성생명 공시실

삼성생명은 ‘보험을 넘어 고객의 미래를 지키는 인생 금융 파트너’라는 비전을 공시하고, 핵심 가치로 ‘준법을 따르는 정도의 길’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나는 삼성생명의 행태는 ‘과연 그럴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형성하기 충분하다. 더군다나 고객자산을 이용한 불투명한 부동산 거래에 현 전영묵 대표가 엮여 있다는 점도 삼성생명의 ‘고객자산 투명 관리’에 관한 신뢰를 훼손하기 충분하다. 삼성생명의 사회적 영향력에 빗대보면 불법 부동산 거래 혐의는 단순하지 않은 복합적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삼성생명의 행태를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 소비자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