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지난해 약 724억원(세금 등 제외 땐 660억원)을 지급하고도 공시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2015년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법원에 주식매수청구가격 조정 신청을 냈다가 갑자기 취하해 백기투항한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삼성과의 비밀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28일 확인된 법무부와 엘리엇이 2019년 4월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2016년 엘리엇에 주식매수가격 차액을 보전해주는 비밀합의를 맺었습니다. 이에 법무부는, 만약 비밀합의 이행에 따라 엘리엇이 삼성물산에서 추가로 돈을 받을 경우 그 액수만큼을 손해액 산정에서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공방 중에 2022년 4월, 일성신약 등 옛 삼성물산의 또 다른 주주들이 법원에 낸 주식매수가격 결정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나왔는데 대법원은 합병 당시 삼성물산이 제시한 1주당 주식매수가격 5만7234원이 너무 낮게 평가됐다며 6만6602원이 적당하다고 결정했습니다.

대법원 결정 뒤인 2022년 5월18일 엘리엇은 “최근 삼성물산으로부터 원천징수세와 기타 세금을 공제한 659억263만4943원의 추가 지급금을 수령했다”는 내용을 중재판정부에 알렸습니다. 삼성물산이 제시한 주식매수가격(5만7234원)과 대법원이 결정한 가격(6만6602원)의 차액(9368원)에 자신들이 보유했던 주식 수(773만2779주) 만큼의 돈을 추가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엇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중재판정 초기엔 이 돈이 “삼성과의 일”이라며 자신들이 주장하는 손해액과는 별개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태도를 바꿔 최종 손해액에선 이를 제외했다고 하는데 이는 삼성과의 비밀합의 내용을 피고측인 법무부가 인지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법무부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힌 내용 외에 추가 사실 확인은 어렵다"며 삼성과 엘리엇이 맺은 비밀합의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습니다.

새로 밝혀진 사실들 가운데 가장 궁금한 것은 삼성과 엘리엇의 ‘비밀합의’ 내용이 무엇이었냐는 것일 텐데, 이는 ISDS 중재판정 과정에서 법무부가 인지한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면 될 일입니다. 숨기려 할수록 삼성과 법무부를 향한 궁금증과 각종 의혹만 키울 뿐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또 하나 불거집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700억원 대의 거액을 엘리엇 측에 지급한 사실과 2015년 당시 비밀합의 내용 등을 일절 공시하지 않아 공시의무 위반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밀합의 내용은 당사자간 일이라 확인이 어렵고 현재 파악한 내용만으로는 주요 보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반응입니다.

거액을 지급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합의’를 일반 주주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정보를 공시해야 할까요. 공시의 목적이 공정한 거래 유지와 투자자 보호에 있는데 말입니다.

엘리엇이 비밀합의에 의해 별도의 거액을 받은 것이라면 합의 없이 주식을 넘긴 일반투자자들은 땅을 칠 일입니다. 비밀합의가 누구는 가능하고 누구에겐 언감생심인 상황이 형평성에 맞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 오너 3세의 경영 승계에 온갖 협잡(?)과 꼼수가 동원된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만천하에 하나씩 드러나고 있지만, 정작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일반 투자자들만 억울한 심정일 것입니다.

서중달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