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옥죄는 KB증권의 이익 갈취 ‘자전거래 패악’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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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옥죄는 KB증권의 이익 갈취 ‘자전거래 패악’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6.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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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최근 크고 작은 언론에서 KB증권에 관한 뉴스를 쏟아냈다. 내용은 KB증권이 뭔가 큰일을 벌인 것 같은데,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펀드 산업에서 횡행하며 빚어진 막대한 부작용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서도 금지한 패악이다. 1988년 투자신탁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이러한 패악을 오랫동안 목격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친일파가 자신을 ‘진정한 애국자’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과거 펀드 산업에서 이러한 패악을 저지른 펀드 매니저와 마케터들의 주장은 ‘고객을 위한다’라는 것이었다. KB증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가 나와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겠지만, 보도에 따르면 금감원은 증권사 일임형 자산관리 상품인 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 운용 실태에 대한 검사를 시작했다. 첫 검사 대상은 KB증권이며 업계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만큼 금감원은 다른 증권사로 검사를 확대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KB증권은 약 3개월 이하 기간에 시중 단기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목표로 고정금리에 가깝게 운용한다며 채권에 투자하는 단기 일임형 랩어카운트(MMW) 및 단기 특정금전신탁(MMT)을 법인에 판매했다. KB증권은 약 3개월 만기 금융투자상품에 만기 1년 이상 장기채권에 투자하고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 평가 손실이 발생하자, 이 채권을 하나증권에 있는 KB증권 신탁 계좌에 장부가로 매입하고 보유했다. 그리고 뒤늦게 약 900억원의 평가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금융당국이 증권사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할 정도로 금융시장 단기 유동성이 악화했다. 지난해 10~11월 KB증권의 MMW, MMT 가입 법인이 자금 회수를 요청했으나 증권사가 응하지 못했으며, 이들 법인은 환매 중단 사실을 금융당국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금융투자협회장이 지난해 11월 말 열린 단기자금시장 점검 회의에서 랩어카운트와 신탁 계정의 채권을 장부가 평가로 해달라고 건의했으나 금융당국은 이를 일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황으로 미루어 이미 KB증권에서 벌어진 관련 사실을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 등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금융당국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부동산 PF발 증권사 단기 자금 시장 경색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럴 때 감독 담당자는  금융산업의 미세한 정보도 상시 입수하고 보고하는 것이 관례다.

여기서 생소할 법한 용어들을 먼저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투자를 알아서 해달라고 운용 권한을 고객이 증권사에 일임한 계약이 포함된(wrapped) 증권사 계좌이며 종합자산관리계좌라고 번역한다. MMW는 Money Market Wrap Account의 약자이며, 금융투자상품 중 ‘Money Market’이 붙으면 단기금융시장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이해하면 된다. MMT는 단기금융시장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이다. MMF는 같은 성격의 펀드다. KB증권은 금융투자상품 약관에 1년 이상 장기채에 투자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해명은 그들이 판매한 금융상품이 무늬만 Money Market 금융투자 상품이었다는 주장이어서 궁색하기 그지없다.

KB증권이 설계한 단기금융상품에서 장기채권을 투자해서 고수익을 생산하는 운용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을 살펴보자. 상식적으로 3개월 만기 금융투자상품에는 3개월 이내에 매각해도 원리금 상환에 지장이 없도록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투자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포트폴리오의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를 3개월로 맞추는 것인데, 투자한 채권들의 종합적인 현금 흐름을 가중 계산할 때 3개월 만기 회수에 적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기를 단기화할 때는 수익률이 낮아져 투자자가 굳이 (직접 단기 금융상품에 가입하지 않고 증권회사에 수수료를 주면서) MMW나 MMT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 정상적인 금융 상황에서는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이자율기간구조(Term Structure)를 보여준다. 그래서 증권사는 고객 유치를 위해 장기채에 투자하고 장기채 만기 기간을 단기로 쪼개 평가 이익을 실적 배당하는 투자 구조를 설계했다. 예를 들면 시중 금리가 3개월 연 2%, 1년 연 5%라고 하면 3개월 만기 MMW에 1년 만기 채권을 투자하고 연 3~4% 수익을 배당하고도 증권사는 수수료를 1% 챙길 수 있다.

이러한 상품 구조에 꼭 필요한 것이 ‘장부가’ 회계처리일 것이다. 예를 든 3개월 MMW 만기에 MMW에 있던 채권은 최초 매입가격에 3개월 경과 기간 이자만 계산하고 증권사 자체 계정에서 ‘장부가’로 매입한다. 이렇게 금융회사가 자기 판단으로 계좌에서 계좌로 투자자산을 이전하는 것을 ‘자전(自轉)거래’라고 한다. 물론 시중 금리가 하락하는(채권가격이 상승하는) 때라면 MMW 만기 때마다 시장에 채권을 매각해서 만기 환매 요청에 응할 수 있지만, 지난해는 대체로 금리 상승기였고, 매번 만기 때마다 매매하는 비용과 업무처리도 다수 고객을 상대하는 증권사에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장기채권일수록 이자율 변동에 따른 위험 즉 손실 폭이 크다. 이것은 채권 투자의 일반적 특성으로 채권가격 정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로 하반기 금리가 치솟자 장기채권의 손실이 크게 발생하며 장기채권 투자에 의한 단기 상품 판매 구조가 완전히 꼬였을 것이다. 이러한 자금의 단기 조달, 장기 운용이라는 만기 불일치 투자 구조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가져온 종합금융 사태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필자 경험에 법인 영업은 소수의 인원이 많은 자산을 유치해 큰 수익을 도모하는 개인영업에 비해 가성비가 높은 마케팅 분야다. 이 때문에 증권사는 법인 영업에 경쟁력을 보유하기 위해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대형 리서치센터를 막대한 비용 들여 보유하는 이유의 9할 이상은 법인 영업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법인 영업은 경영진의 관심과 지원을 받는다. KB증권은 2명의 사장이 각자 분야별 대표를 맡고 있는데 김성현 사장이 기업금융과 법인 영업을 담당하고 있어서 이번 MMW·MMT 검사 결과에 책임을 질 것으로 보인다. 눈길을 끄는 점은 김 사장은 지난해 랩과 신탁에 장부가 처리를 건의했다가 거부당했던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과 대신증권에서 2003년까지 같이 근무했었다.

이번 언론 보도와 관련 KB증권과 금융감독원은 적극적으로 반박을 하고 있다. KB증권은 랩과 신탁의 장부가 회계는 금지한다는 법적 근거가 미흡하고, 자전거래는 자금 경색 시기에 법인의 자금 지원으로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공익적 조치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금융감독원은 랩과 신탁의 불건전 영업행위 및 위험 요인 검사를 연초부터 계획했으며 증권사들 행태를 묵인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필자는 KB증권과 같은 행태를 과거 수없이 봐왔다. 당시 채권형 펀드는 장부가 평가를 통해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기형적인 실적 배당 상품으로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문제가 있는 채권은 수익률이 높은 펀드로 자전거래로 돌려 손실을 물타기하거나, 거의 잔액이 바닥난 펀드에 감춰졌다. 또 고수익 장기채권은 영업 활성화를 위해 특별 우대 펀드로 옮겨져 수익자 간 수익 배분 불평등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장부가로 평가한 장기채는 만기가 다할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전거래로 이용됐다. 모두 수익자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장부가 평가 장기채의 자전거래 결과, 실질적 수혜자는 펀드 영업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거래 법인, 고액 자산가, 그리고 경영진과 펀드 매니저, 영업 직원이었다. 돌이켜 보면 금융 약자의 이익을 갈취하는 명백한 불공정 영업행위였고, 금융사기에 다름없는 패악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금융당국은 2000년 7월부터 채권시가평가제를 도입했다. 1998년 11월 16일 이후에 설정된 펀드를 포함한 모든 공사채형 수익증권에서 장부가 평가와 자전거래를 금지한 것이다.

금감원이 검사를 개시한 KB증권의 경우는 과거 펀드 산업에서 있었던 패악 구조에서 금융상품만 MMW와 MMT로 바꾼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마 손쉽게 돈 벌던 과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제도적 불비(不備)를 보고 틈새 상품을 찾아냈을 것이다. 또한 경쟁이 치열한 법인 영업 시장에서 증권사 대부분 너도나도 범용화에 가담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MMW·MMT 관련 자전거래 의미는 가볍지 않다. 특히 시가평가가 금융투자는 물론 일반 회계에서도 대원칙으로 자리한 가운데 일부 법 규정의 미비를 이용한 영업행위는 신의성실(fiduciary)이라는 금융회사 기본자세에도 한참 동떨어진다. 관련 혐의에 관해 증권사가 법규 위반을 피하더라도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또한 장부가 자전거래로 최종적으로 회사가 손실을 떠안았다면 상황은 복잡하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는 원금 보장·손실 보전을 금지하는 자본시장법의 대원칙을 위반할 뿐 아니라, 모회사인 KB금융 주주에 대해 손실을 안긴 업무상 배임 문제도 예상된다.

2022년 사업연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B증권 김성현 사장의 보수총액은 9억1600만원이었다. 각자 대표인 박정림 사장의 7억6900만원보다 많다. 산정기준을 보니 김 사장은 IB 부문과 기관영업 부문을 담당하며 어려운 영업환경에도 불구하고 괄목한 성과를 기록해 5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는 것으로 공시했다. 최근 다수 언론에서는 KB증권 MMW·MMT 사태로 박 사장 책임을 거론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사실 김 사장이 금융당국 검사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KB증권 박정림 사장도 편안하지는 않다. 박 사장은 금감원 중징계 통보 후 금융위의 라임펀드 제재가 진행 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설상가상 올해 들어 포스트코리아 그린에너지 펀드도 3월 환매 중단되었으며, 룩셈부르크 소재 부동산 투자와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투자에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KB증권 두 사장 모두 금융당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KB증권 두 대표의 문제는 스스로 풀기 어려운 고르디우스 매듭으로 KB금융지주를 옭아맬 공산도 있다. 앞으로 금융당국이 제재의 칼로 얽힌 매듭을 단번에 풀어야 할 상황이 만들어질지 주목된다. 결국 현 정부에서 진행한 금융지주 회장의 자리바꿈 양상을 고려할 때 11월로 다가온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에 KB증권 두 사장 문제가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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