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법 위반한 피카소… ‘n번방법’은 역차별?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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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법 위반한 피카소… ‘n번방법’은 역차별?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5.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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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1948년 7월 24일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이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 있다. 그는  그해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사진=국가기록원
1948년 7월 24일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이승만이 대통령 취임식을 하고 있다. 그는 그해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사진=국가기록원

“천황 통치체제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자는 징역에 처한다.”

1925년 오늘(5월 12일), 일제는 일본과 한반도에서 7개 조항의 법률을 동시에 시행합니다. 이 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처벌을 받습니다. 일본이 패망하던 해인 1945년 10월 15일까지 악명을 떨친 치안유지법입니다.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에는 관련 판결문만 5114건이 존재합니다. 이 법은 1948년 이승만정부와 함께 국가보안법으로 부활합니다.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사진=피카소미술관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소재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 /사진=피카소미술관

“피카소 크레파스와 물감 광고 당장 중단시켜!”

나체의 임신부들과 아이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무리들.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 표지 그림의 설명입니다. 북한이 미국이 범인이라고 주장한 황해도 신천의 3만5000명 대학살 현장을 묘사한 피카소의 그림입니다. 1969년 6월 9일 김종건 검사는 ‘피카소’라는 제품이름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문구류 제조사 대표를 입건합니다. 혐의는 반공법 위반.

‘n번방법’. 성착취 동영상 거래인 ‘n번방’ 사건을 계기로 국회가 통과시킨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이르는 네 글자입니다. 정부는 오늘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한 특례법 공포안을 의결했습니다. 법안은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만 하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국무회의는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단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신상 공개 대상으로 삼는 청소년성보호법 공포안도 의결했습니다. 이처럼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가 잇따르는 가운데 국회는 ‘n번방’ 등 음란물 유통 방지를 목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 개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는 1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공포안을 의결했다. /자료사진=청와대SNS
정부는 1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공포안을 의결했다. /자료사진=청와대SNS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네이버·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성폭력범죄처벌법을 위반한 불법 촬영물을 삭제·접속 차단하도록 유통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와 함께 처리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사업자에게 불법 촬영물 등 유통 방지 책임자를 지정할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에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업계에서는 ‘외국기업과의 규제 역차별’ 등의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불법 촬영물의 생산·유통을 막기 위한 취지 자체는 이해하지만 법적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국내기업들에게 과도한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인터넷·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문제의 온상인 ‘텔레그램’ 등 해외 서비스에는 실효성 있는 규제 집행이 어려워 국내 기업만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벤처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3개 단체는 어제 대정부 질의를 통해 “인터넷기업들은 사생활 보호, 통신비밀 보호, 표현의 자유 등 헌법적 가치 침해와 사적 검열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라면서 “개정 법안이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급하게 처리돼 국민 알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n번방 운영자 ‘갓갓’(24)이 경찰에 검거된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갓갓은 오늘 대구지법 안동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습니다. 검정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는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경찰은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5월 12일이 생일인 나이팅게일을 기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이다. 사진은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는 모습. /사진=서울 동대문구
오늘은 5월 12일이 생일인 나이팅게일을 기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이다. 사진은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는 모습. /사진=서울 동대문구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성범죄 처벌은 환영하지만 자칫 ‘개인사찰’로 이어질지 우려합니다.

“N번방 처벌법을 제정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라 실효성 없는 법안을 만들려는 걸 반대하는 것” “칼로 사람 찌르면 칼 제조사도 책임이 있다고 할 건가??” “웃긴 게 국민은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하는데 규제를 강화해서 개인을 사찰하려 하네”.

강력한 처벌과 함께 철저한 조사로 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다른 건 둘째치고서라도 저런 악질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최소 30년부터 100년 300년형까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함” “철저히 조사해서 발본색원해야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 더 철저히 조사하라” “아주아주 나쁜 놈,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벌로 엄하게 다스려주세요” “성범죄자들은 무조건 무기징역시켜라 사회악이다”.

‘갓갓’의 외모에 대한 비하는 자제하자는 글이 눈에 띕니다.

“나쁜 일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하지만 외모 비하는 하지 맙시다. 나쁜 댓글 다는 분들도 저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못생기고 잘 생기고는 개인 취향이며 모든 사람은 소중합니다”.

오늘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태어난 날이자, 국제간호사협의회가 지정한 ‘간호사의 날’입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 간호사들은 고귀한 생명의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성착취라는 악질이 완전히 치유된 건강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시작할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라. 겨자씨가 스스로 뿌리내리는 위대함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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