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과 삼성전자 이재용의 사과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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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과 삼성전자 이재용의 사과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5.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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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강주룡.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강주룡.

“노동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 뿐.”

1931년 5월 29일 평양 을밀대.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가 지붕에서 부르짖습니다. 11미터 축대에 세워진 누대에 올라앉은 모습은 보기만 해도 조마조마합니다. 요구 조건은 “임금감하 취소”. 그는 마침내 일본 노동자의 반의반도 되지 않던 품삯을 지켜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으로 기록된 ‘체공녀’ 강주룡. 서른의 삶을 불태운 그는 항일운동으로 부활합니다.

고공농성 중인 삼성테크윈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사진=JTBC 뉴스 갈무리
고공농성 중인 삼성테크윈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사진=JTBC 뉴스 갈무리

“내 건강을 걱정하는 것조차 사치에 불과하다.”

2020년 5월 7일 서울 강남역사거리 CCTV 철탑. 25미터 꼭대기에서 남성 노동자가 대기업 입주 건물을 향해 주먹을 휘두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33일째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요구하는 조건은 “삼성의 진정한 사과와 명예 복직”. 노조를 만들려던 그는 25년 전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삼성테크윈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이야기입니다.

‘고공농성’.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자리를 떠나지 않고 높은 곳에서 시위함을 뜻하는 네 글자입니다. 삼성의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가 오늘도 고공농성 중인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권가에서는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라는 이 부회장의 사과로 지배구조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됐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대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오늘 보고서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4세로의 경영권 승계 진행을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SDS 등 해당 기업들은 향후 지배구조 개편 관련 불확실성이 상당히 감소하면서 온전히 실제 기업가치에 근거한 평가가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돼 긍정적”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자료사진=삼성전자
/자료사진=삼성전자

그는 “이 부회장은 스스로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만 오로지 집중할 것임을 직접 밝힘으로써 대주주와 소수 주주간의 이해관계 역시 같은 방향으로 정확한 일치가 이뤄질 전망”이라며 “삼성은 상속제 절감을 위해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상속대상 기업 가치가 저평가 받아야한다는 불필요한 논란 역시 불식이 가능하게 됐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부회장은 전날 ‘승계 문제’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에 이어 그의 3남인 이건희 회장, 이 회장의 유일한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까지 3대를 이어 내려온 삼성의 오너 경영 체제를 4세까지는 이어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한편 대법원은 오늘,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박근혜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낸 기피신청 재항고 사건을 2부에 배당하고 주심을 노정희 대법관으로 지정했습니다. 노 대법관은 지난해 1월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항소심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낸 재판부 기피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이 부회장은 앞서 박근혜·최순실 일가에게 총 433억2800만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그러나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항소심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이 부회장을 석방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삼성 승계작업을 인정하면서 정유라씨에게 지원한 말 3마리도 뇌물로 판단,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 앞선 사과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공정한 판결을 촉구합니다.

“위반사항이 있음 처벌 받으면 돼 판사도 웃기네 대국민사과하면 있던 죄가 없어지고 용서해주는 거임?” “승계 의혹? 누가 봐도 승계 작업이죠... 괜히 또 말장난 하시네요. 세계적인 기업이니 만큼 경영도 오너도 투명하게 하셔야 진정 글로벌 리더 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은 죄 값은 달게 받으시고 앞으로는 투명 경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전국 교정시설 수감자들 사과하면 다 나오는 건가?”.

삼성의 역할론을 환기하며 ‘귀족노조’ 출현에 대한 우려도 나타냅니다.

“삼성을 욕할래야 할 수 없는 현실... 삼성만큼 국가에 돈 벌어다준 곳은? 삼성만큼 한국위상 올려준 곳은? 무슨 돈으로 삼성을 키웠는가는 몰라도 적어도 욕보다 상을 더 줘야지” “고만 닦달해라. 이 시국에 누구 좋은 일 시킬려고 못살게 구냐. 귀족노조 적당히 해라. 기업이 해외로 나가야 정신 차리겠냐” “만약 삼성이 국내기업 포기하고 국외로 나간다면 대안은 있는지 말 좀 해봐라 삼성의 행태는 나쁘지만 지금까지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서 기회를 주는 것도 국민들의 아량이 필요하다”.

삼성이 아닌 범법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반박글도 이어집니다.

“삼성을 처벌하라는 게 아니고, 범법 행위를 한 삼성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것. 스티브 잡스 없어서 애플이 망했나? 정주영 없어서 현대 망했나? 이재용 없다고 삼성이 망합니까? 법 적용에는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돈 많다고, 검찰과 친하다고 처벌 받지 않는다면 잘못된 거지요. 이재용을 두둔하는 분들 모두 재벌이거나 검찰 가족이신가요? 반대하는 이유가 뭔가요?”.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 18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 18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포기를 발표하던 날, 중견기업 오너 3세가 불법촬영에 이어 음주운전으로 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2017년 삼성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창립 이래 세번째 쇄신안을 내놨습니다. 삼성(三星)이 삼성(三省)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책임 경영’이 먼저입니다.

1946년 오늘은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의 소니가 세워진 날입니다. 2020년 오늘은 삼성이 소니가 지나온 길을 밟을지 갈림길에 선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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