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구의 중심, ‘이것’ 때문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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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지구의 중심, ‘이것’ 때문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07.2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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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의 지속적인 대량 사용이 지구의 자전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지하수의 지속적인 대량 사용이 지구의 자전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인류는 오랜 기간 농업을 위해 엄청난 양의 물을 사용했다. 오래전 교과서에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이 인류 문명의 4대 발생지 중 하나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다. 이곳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결국 몰락한 이유로, 대규모 관개로 인한 강의 수량 감소와 이로 말미암은 토양의 염분화가 유력한 가설로 제시되기도 한다. 토양에 소금이 많아지면 농업 작물의 생산이 감소하고, 결국 인구의 감소와 이주로 이어지게 된다. 구소련의 지속적인 물 사용으로 아랄해가 말라 거의 소멸하기도 했고, 미국의 서부 지역에서 20세기에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다. 농업 작물을 경작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퍼 올렸고, 결국 지하수면의 계속된 하강이 일어났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최근 십여 년 동안 무려 5000여개의 우물이 말라버렸다고 한다. 올해 7월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DOI:10.1029/2023GL103509)이 출판되었다. 우리 인류에 의한 지하수의 지속적인 대량 사용이 지구의 자전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구의 해수면은 현재 1년에 3.5mm의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부피 팽창이 이중 매년 1.3mm의 해수면 상승 속도를 설명한다. 온도가 올라가면 물과 같은 액체의 부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얼음과 빙하가 녹는 것도 해수면 상승을 일으킨다. 대륙이 없는 북극 지역의 빙하는 바다에 둥둥 떠 있다. 얼음이 물 위에 떠있는 이유는 부력 때문이다. 얼음의 무게는 물속에 잠겨있는 얼음의 부피에 해당하는 물의 무게와 같아서, 얼음이 녹으면 정확히 물속에 잠겨있는 부피만큼의 물이 된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물컵의 수면이 얼음이 녹아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북극 지역의 얼음이 녹는다고 해서 해수면 상승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매년 3.5mm의 해수면 상승 속도에서 바닷물의 부피 팽창으로 인한 매년 1.3mm의 속도를 뺀 매년 2.2mm의 상승 속도는 주로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 그리고 내륙빙하가 녹는 것에서 기인한다.

다른 요인도 있다. 논문에 따르면 매년 0.3mm의 해수면 상승이 바로 대규모의 지하수 추출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인간이 땅위로 끌어올린 지하수 중에는 전 지구적 규모의 물의 순환을 거쳐 다시 지하수로 돌아가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하수를 추출해 해수면 상승을 일으킨다. 매년 0.3mm도 상당히 빠른 속도다. 수십 년 이어지면 그 효과가 누적된다. 논문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2조톤이 넘는 지하수를 인류가 퍼 올렸고, 이로 인해 이 기간 약 6mm의 해수면 상승을 지하수 추출이 일으켰다고 추정된다.

약 23.5도 기울여진 지구의 자전축은 영원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빙글빙글 도는 팽이를 넘어뜨리려는 지구 중력의 영향으로 팽이의 회전축 자체가 회전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지구에도 일어난다. 해와 달의 중력의 영향으로 지구의 자전축도 마찬가지로 천천히 회전해 약 2만600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진 규칙적인 세차운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장기적이고 규칙적인 자전축의 변화뿐 아니라 다른 요인도 지구의 자전축을 조금씩 바꾼다. 지구 자체의 질량 분포가 변하는 경우다. 빨랫감이 한쪽으로 치우쳐 질량분포가 변하면 회전축을 바꾸려는 돌림힘이 발생해 세탁기가 덜컹거리는 것을 떠올려도 좋겠다.

지구의 자전축이 지구 표면과 만나는 위치가 변하는 것으로 자전축의 변화를 표시할 수 있다. 지구 자전축의 이동은 상당히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아주 먼 천체인 퀘이사가 지구에서 보이는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지구의 질량 분포를 변화시켜서 지구 자전축의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으로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기의 영향이 크다. 매년 되풀이되는 지구 대기의 규칙적 순환은 1년에 몇 미터 정도의 주기적인 자전축 이동을 만든다. 늘어난 바닷물로 만들어진 지속적인 해수면 상승도 지구 전체의 질량 분포를 바꾼다. 지하수의 대량 추출이 측정 가능한 정도의 지구 자전축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량적인 분석이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 담겨있다. 같은 기간 일어난 지구의 자전축 이동 중 1년에 4.36cm만큼, 누적된 양으로는 약 80cm의 자전축 이동이 1993년부터 2010년의 기간 중 지하수 추출로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지하수 추출의 영향을 제외하면, 천체 관측으로 알아낸 지구 자전축의 실제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명확한 결과도 논문에 담겼다. 해수면 상승과 자전축 이동을 만들어낸 원인 중, 지하수 추출은 두 번째로 큰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 인류는 우리를 둘러싼 엄청난 규모의 자연, 우리 모두가 발붙여 사는 엄청난 크기의 지구가 우리의 활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기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인간에게서 비롯한 온갖 변화가 매일같이 우리를 찾아온다. 장기적인 기온 상승으로 여름은 더 뜨거워졌고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의 규모도 커졌고, 높아진 대기의 온도로 숲은 더 건조해져서 산불의 규모도 커졌다. 이런 모든 변화의 명확한 주범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에 거의 모든 과학자가 동의하고 있다. 이번 논문의 연구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지구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멀리서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 아름다운 지구가 기온 상승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제 이 아름다운 푸른 점의 자전축이 우리의 과도한 지하수 이용으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 인간에게서 비롯된 감기 몸살로 열이 오른 지구가 이제 몸을 떨며 비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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