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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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05.2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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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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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먼 미래에도 인간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구에서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인류의 미래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지구 위 모든 생명의 궁극적인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앞으로 50억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은 적색거성이 되어 엄청난 크기로 늘어나 수성과 금성을 삼켜버린다. 그때가 되면 엄청난 열기와 태양풍으로 지구 모든 생명은 절멸할 것이 확실하다. 우리 인류가 기후 위기와 핵전쟁 등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더라도 인류의 남은 수명은 50억년을 결코 넘을 수 없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을 운명인 지구를 박차고 나가 먼 우주로 이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50억년이라는 궁극적인 잔여 수명의 한도를 인류가 모두 채울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멀리서 빠르게 날아오는 미지의 혜성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이들 위험한 천체를 미리 발견해서 파괴하거나 경로를 바꿔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지구에 또 다른 위험이 닥칠 수도 있다. 딱히 별다른 이유 없이도 수성이 지구로 날아와 충돌하거나, 가까이 다가온 목성의 중력으로 지구가 정든 고향 태양계를 벗어나 떠돌이 행성으로 먼 우주로 날아갈 가능성은 어떨까? 그런 일은 결코 생길 리 없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을까? 과학으로 태양계의 안정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

태양계의 안정성 문제를 처음 고민한 사람이 바로 중력 법칙을 발견하고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이다. 미약하더라도 외부의 힘이 주기적으로 작용하면 물체가 큰 폭으로 진동하는 것이 바로 물리학의 공명이다. 태양계 다른 행성들의 주기적 운동의 영향이 중첩해 오래 쌓이면 공명효과에 의해 지구의 궤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다. 토성 테의 원반 구조는 이미 명확히 공명효과를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토성의 테는 하나로 붙어있는 원반이 아니어서 마치 LP판의 홈처럼 여러 개의 둥근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눈에 밝게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 사이에 망원경으로 보면 어둡게 보이는 비어있는 틈들도 있다. 빈 부분에 얼음조각과 같은 물체가 놓이면 토성과 토성 위성의 중력이 주기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공명효과에 의해 물체의 궤도가 불안정해진다. 결국 이곳에 있던 물체들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옮겨가 물질이 희박한 빈틈이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태양계의 여러 행성이 긴 주기로 규칙적으로 지구에 영향을 미치면 마치 토성 고리의 빈틈에 있던 과거의 얼음조각처럼 지구의 궤도도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 문제를 처음 고민한 뉴턴은 태양계의 행성 궤도가 먼 미래에는 불안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기독교인이었던 뉴턴은 이러한 궤도 불안정성이 발생하면 신이 개입해 다시 원래의 안정적인 궤도로 돌려놓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기도 했다. 누가 미적분학을 처음 발견했는지를 두고 뉴턴과 다툰 라이프니츠는, 자연의 원인을 자연 밖에서 찾은 뉴턴의 궁색한 답변에 동의하지 않았다. 가끔 수선해야 하는 엉성한 태양계를 전지전능한 신이 창조했을 리 있겠냐는 라이프니츠의 조롱 섞인 비판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타원궤도의 긴 지름이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을 궤도 불안정성의 지표로 생각할 수 있다. 타원의 짧은 지름은 점점 줄어들고 긴 지름이 점점 늘어나면 행성은 태양으로부터 멀어져 결국 이전의 궤도를 크게 이탈하기 때문이다. 라플라스와 라그랑주는 서로 편지를 교환하며 연구를 진행해 특정 조건을 만족한다면 다른 행성의 영향이 있어도 행성 궤도의 긴 지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보였다. 뉴턴의 불안정성 주장과 라플라스와 라그랑주 팀의 안정성이 1대 1의 무승부를 이룬 셈이다. 이후 태양계의 안정성 문제를 연구한 위대한 과학자들로는 가우스, 푸앵카레, 푸아송, 그리고 20세기의 아르놀트 등이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태양계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의 주장이 엎치락뒤치락 길게 이어졌다.

19세기 말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는 태양계의 안정성을 증명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에게 1000크로나의 상금을 걸었다. 푸앵카레는 태양계의 안정성을 증명한 논문을 제출해 상금을 받았지만, 이후 논문의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아 거꾸로 태양계의 불안정성을 주장하는 논문을 다시 발표했다. 푸앵카레는 딱 세 개의 물체만 있는 경우에도 이들 물체가 보여줄 미래의 운동을 해석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바로 이 물리학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를 주요소재로 한 류츠신의 멋진 소설 <삼체>를 추천한다. 항성이 셋이어서 궤도가 불규칙하고 따라서 기후도 불규칙한 외계 행성의 이야기가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재밌는 소설이다.

오랜 기간 오리무중이었던 태양계의 안정성 문제가 해결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계기를 만든 것이 바로 컴퓨터의 발전이다. 삼체문제의 해석적인 답을 알아낼 수 없다고 해서 삼체의 운동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운동방정식을 적고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치 적분하면 셋뿐 아니라 이보다 더 많은 수의 물체라도 우리가 원하는 정확도로 미래를 알아낼 수 있다. 수치해석을 이용한 여러 연구를 통해 20세기 말엽 태양계의 안정성에 대한 답이 얻어졌다. 태양계의 먼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며 태양계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명확한 결론이다. 먼 미래 태양계의 불안정성은 수성으로부터 촉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수성의 운동이 목성의 운동과 서로 맞물리게 되고, 이로 인해 수성 궤도가 점점 더 길쭉하게 늘어나게 된다. 확률은 낮지만, 이렇게 긴 지름이 늘어난 궤도를 따라 운동하는 수성은 태양에 충돌할 수도, 금성에 충돌할 수도 있다. 수성의 궤도가 급변하면 그 영향이 멀리 파급되어 화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태양계의 불안정성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과연 궤도의 불안정성이 얼마나 긴 시간의 척도에서 일어날까에 대해서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태양에 가까운 지구형 행성들의 불규칙 운동에 관여하는 시간의 척도는 수백만 년 정도로 짧고, 멀리서 공전하는 목성형 거대 행성들의 궤도 불안정성은 수십억 년 정도의 시간 척도로 일어날 것으로 알려져서, 두 시간 척도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문제였다. 최근 발표된 한 논문에서는 태양에 가까운 지구형 행성 궤도의 불안정성의 시간 척도를 좀 더 발전된 이론과 수치계산으로 다시 살펴봐서 시간 척도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했다. 태양계는 불안정한 것은 맞지만 현재의 궤도로부터 여러 행성이 크게 이탈하는 사건은 앞으로 수십억 년 뒤에야 일어날 것이라는 결과가 얻어졌다. 만약 이 예측이 맞다면, 지구 위 생명은 50억년이라는 궁극적인 수명의 한도를 끝까지 채우며 오래 생존할 수도 있다. 멀리서 날아오는 작은 천체의 충돌을 잘 피한다면, 그리고 기후 위기 등 우리가 만든 문제를 우리 스스로 잘 극복한다면 말이다. 태양계는 불안정하지만, 우리가 궁극의 수명을 채울 수 있을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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