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의 ‘축구 논문’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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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의 ‘축구 논문’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12.2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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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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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은 둥글고, 경기는 90분간 진행된다. 이 둘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그냥 단지 이론일 뿐이다.” 1954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축구 감독 제프 헤르베르거가 남긴 멋진 축구 명언이다. 온갖 상황이 시시각각 펼쳐지는 축구 경기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 끝에 프랑스를 이기고 우승했다. 우리나라도 오랜만에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축구팀마다 전략도, 그리고 장점도 다르다. 송곳같이 정확한 패스를 이어가 공격에 성공하는 팀도, 철벽 수비를 자랑하는 팀도 있다. 그렇다면, 수비진이 얼마나 상대 공격수를 잘 막아내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을까? 축구 경기도 과학으로 살펴볼 수 있을까?

데이터를 이용해 정량적으로 스포츠 경기를 살펴보는 연구가 많다. 데이터의 스포츠라고 일컬어지는 야구가 대표적이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서 데이터를 이용한 분석이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측면이 있다. 축구공 주변 선수들의 움직임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선수들의 움직임도 경기의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뛰어난 공격수 주변에는 이미 상대팀의 수비수들의 밀접 마크가 진행되고 있듯이 말이다.

얼마 전 통계물리학 연구가 주로 출판되는 물리학분야의 학술지 <Physical Review E>에 출판된 논문(DOI: 10.1103/PhysRevE.106.044308)은 수비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수를 막는지를 네트워크 과학을 적용해서 살펴봤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한 회사에서 연구용으로 공개한 축구팀, 선수 이름, 경기가 벌어진 장소와 날짜 등의 모든 정보가 가려진 세 개의 축구 경기 데이터를 이용했다. 고해상도로 촬영한 동영상에 영상처리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서, 1초에 25번의 빈도로 선수들의 위치를 10cm 정도의 오차로 정교하게 파악한 데이터다.

종이 위에 점을 여럿 그리고 점들을 이리저리 선으로 연결하면 네트워크(연결망)가 된다. 네트워크는 이렇게 노드(점)와 링크(선)로 구성된 전체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 하나하나를 노드에 대응시키면, 선수 사이의 관계는 링크에 해당한다. 네트워크 과학의 여러 방법을 적용하려면, 먼저 노드와 링크를 정의해야 한다. 논문에서는 공격하고 있는 팀의 선수와 수비를 하는 팀의 수비수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서, 이 거리가 주어진 값보다 작다면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 링크가 있다고 가정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이렇게 구성한 네트워크를 ‘이분 네트워크’(bipartite network)라고 한다.

이분 네트워크에서는 노드 전체가 두 집합으로 나뉘고 노드를 연결하는 링크는 두 집합 사이에만 존재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의의 집합과 하의의 집합을 생각해보자. 내가 외출하려고 옷을 갖춰 입을 때마다 상의와 하의의 짝을 고르게 된다. 내가 함께 맞춰 입은 상의와 하의 사이에 링크가 있다고 생각해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이것도 이분 네트워크다. 상의는 하의하고만 링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비수와 공격수의 집합을 생각하면 수비수와 공격수 사이의 거리를 이용해 구성한 연결망은 당연히 이분 네트워크의 형태가 된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시간에 따라서 수비수와 공격수의 이분 연결망의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펴봤다(저자들이 제공한 재밌는 동영상 링크: https://physics.aps.org/articles/v15/s144). 저자들은 시간에 따라 계속 변해가는 이 연결망의 구조를 특징짓는 양으로서 노드가 가지고 있는 링크의 수가 얼마나 균일하지를 쟀다. 링크 수의 제곱의 평균값을 링크 수의 평균으로 나눈 값인 κ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κ가 2보다 크면 연결망 대부분의 노드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군집을 이루고, κ가 2보다 작다면 전체 연결망이 조각조각 여러 파편으로 나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축구 데이터로 저자들이 구성한 연결망은 κ의 값이 2 주변에 머물면서 계속 변화해간다. 즉, 수비수와 공격수 사이의 거리를 기준으로 만든 연결망은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행동을 계속 이어간다는 말이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에서 저자들은 선수들의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방정식도 제안했다. 선수들은 마치 공기 중에서 움직이는 물체처럼 저항력을 받으면서, 팀의 수비 전략에 따라서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를 평형위치로 하는 스프링에 매달린 물체처럼 움직인다. 논문의 모형에서 특히 흥미로운 요소는 선수들이 다른 모든 선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한 항이다. 이렇게 설정된 운동방정식 모형에는 여러 조절변수가 등장하는데, 저자들은 실제의 현실 데이터와 모형의 예측 결과 사이의 오차를 가장 최소로 하는, 인공지능의 학습에도 널리 이용되는 방법을 적용해 모형의 조절변수들의 값을 알아냈다.

이렇게 정해진 운동방정식 모형을 이용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저자들은 실제 현실에서 관찰한 각 수비수의 활동 범위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얻은 활동 범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 그리고 모형도 실제 현실과 마찬가지로 연결망의 균일성을 측정하는 κ의 값이 2를 기준으로 끊임없이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한다는 결과도 얻었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의 주된 결론은 실제 데이터가 보여주는 몇 가지 흥미로운 통계적인 특성을 간단한 운동방정식 모형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이론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이를 이용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연결망을 만들어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물리학자가 아니라도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다.

축구 경기를 연결망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방법은 구체적인 현실의 경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수비수 중에 누가 자신의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공격수를 밀접 마크하는 수비수의 숫자가 수비의 성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을 소개한 미국 물리학회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 기사(DOI: 10.1103/Physics.15.s144)의 재밌는 제목은 “게으른 축구 수비수가 숨을 곳은 없다(No hiding place for lazy soccer defenders)”이다.

축구 선수들에게 좋은 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축구 경기의 수비수가 팀의 승리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를 네트워크 과학의 방법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 사이의 움직임을 어떻게 조율하는지가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체 경기로서의 축구를 살펴보기에는 네트워크의 관점이 제격이다. 오늘 소개한 논문의 저자들은 이번 월드컵의 우승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물리학자들이다. 월드컵 우승 소식에 크게 기뻐했을 저자들의 더 구체적이고 더 실질적인 후속 연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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