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는 과연 생각을 할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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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는 과연 생각을 할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04.20 16: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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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아이, 로봇’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세상이 지금 이 순간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의 세상은 이전과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살면서 몇 번 경험했다. 삑 소리 나는 모뎀으로 멀리 떨어진 컴퓨터에 원격으로 처음 접속했을 때, 웹브라우저로 컴퓨터 화면에서 학술지 논문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다. 도서관에서 힘들게 논문을 찾아 적절한 배율로 복사했던 것이 단 하루 만에 과거의 추억이 되었고, “찾으려고 하는 논문이 들어있는 학술지의 해당 호는 도서관 책장에서 늘 그것만 빠져 있다”라는 대학원생들의 머피의 법칙 농담도 하루아침에 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몇 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경기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오랜 찬사를 받아온 집중과 직관의 초라함을 떠올렸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고 중요한 정보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집중이라면, 엄밀한 단계적 추론이 아닌 경험에 기반한 즉각적 판단이 직관이다. 얼마든지 넓고 깊게 빠른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미래의 인공지능은, 넓게 볼 수 없어 좁게 보는 인간의 집중과 깊게 볼 수 없어 얕게 보는 인간의 직관을 굳이 계산과정에서 흉내 낼 이유가 없다. 집중과 직관이 인간 지성의 자랑스러운 경이가 아니라, 초라한 인간 지성이 어쩔 수 없이 택한 가여운 한계일 수 있다는 가슴 아픈 깨달음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ChatGPT를 보면서 요즘 난 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질문을 몇 번 이어가면 ChatGPT는 정말 그럴듯한 결과를 보여준다. 몇 개의 키워드만 입력하면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인공지능, 몇 단어로 원하는 그림을 알려주면 예술적인 이미지를 멋지게 자동 생성하는 인공지능, 딱 바흐가 작곡했을 것만 같은 멋진 음악을 멈추지 않고 계속 무한 생성해 들려주는 인공지능도 등장했다. 최근의 이런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무척 창의적으로 보인다. 알파고가 내게 집중과 직관의 의미를 고민하게 했듯, ChatGPT는 내게 인간의 창의성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인공지능이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냐고 아프게 묻는다.

영화 <아이, 로봇>에서 윌 스미스가 연기한 주인공은 로봇에게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겠니? 로봇이 흰 캔버스를 아름다운 걸작 그림으로 변모시킬 수 있겠니?”하고 묻는다. 그러자 로봇은 “너는 할 수 있니?”라고 되묻는다. 베토벤은 고흐가 아니고 고흐는 베토벤이 아니며, 우리 대부분은 그 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창의적인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ChatGPT가 보여주는 창의성의 수준을 비교할 잣대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나와 대부분의 독자 같은 평범한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지.

Chat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형(Large Language Model, LLM) 인공지능의 개략적인 얼개 자체는 그리 이해가 어렵지 않다. 엄청난 분량의 문서 형태의 학습 데이터를 모아서 이를 토큰이라고 불리는 몇 글자 정도 길이의 정보로 잘게 나눈다. ChatGPT3는 무려 5000억개의 토큰을 이용해 학습한 것으로 알려져서, 현재의 ChatGPT4는 아마도 이보다 더 많은 토큰을 학습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에는 수집한 토큰들을 학습 데이터로 이용해서 문장을 ‘그럴듯하게’ 이어가도록 조절 변수가 수천억 개에 달하는 대규모의 인공신경망을 학습시킨다. ‘그럴듯하게’의 의미는, A-B-의 내용으로 문장이 이어졌는데 그 다음에 C가 나올 확률이 D보다 크면 A-B-D가 아니라 A-B-C로 문장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나도 무료로 공개된 ChatGPT3.5를 이용해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해봤다. 과장은 있어도 답변의 첫 문단은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였지만, 이어지는 문단은 너무나도 엉뚱했다.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도, 이후의 근무지도 모두 틀린 얘기다. 게다가 내가 쓴 논문을 몇 편 알려달라고 했을 때 ChatGPT가 출력한 결과는 정말 황당했다. 하나같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논문들이다. 그럴듯하지만 명백히 틀린 결과가 출력된 이유도 위에서 설명한 LLM의 작동방식으로부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체 생성된 문장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이어가면서 그 다음에 나올 내용으로 확률이 높은 단어를 연이어 생성하는 과정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후 공개된 새로운 버전의 ChatGPT는 이런 문제를 일부 해결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현재의 성능이 부족하다고 해서, LLM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이런 문제가 미래에도 영원히 극복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의 발전 속도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의 LLM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더 개선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에도 ChatGPT와 같은 LLM 방식의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간처럼 생각이란 것을 하거나, 의식을 갖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재의 내 믿음이다. 물론 또 이 믿음도 미래에 다시 또 깨질 수도 있지만.

튜링 테스트는 문장의 형태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가 상대를 사람으로 인식하는지를 묻는다. 내부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식이 무엇인지와 같은 어려운 질문 대신, 인공지능의 출력과 드러난 행동만을 테스트하자는 아이디어다. 인공지능이 창의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부의 작동방식이 아닌,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결과의 창의성에만 주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효율적인 판단 방법이다.

몇 년 전 잠깐 해본 간단한 실험이다. 내가 출판한 여러 논문의 제목에 등장한 단어들을 추출하고는 이 단어들을 마구잡이로 결합해 출력해보았다. 예를 들어, “초전도 배열의 양자 상전이” 논문과 “작은 세상 연결망에서의 구라모토 떨개 모형의 때맞음” 논문이 결합해서 “작은 세상 연결망에서의 초전도 배열의 때맞음”이 생성되는 식이다. 당시에 이런 마구잡이 결합만으로도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주제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베토벤도 고흐도 아닌 우리 대부분의 창의성은, 가지고 있던 기존의 아이디어와 아무런 상관없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 만들어지지 않는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과 철학자 헤겔의 말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이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는 이유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우리가 굳이 섞어 비빔밥을 만들면 새로운 메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논어>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처럼, 존재하는 지식을 먼저 널리 배우고 이들을 엮어서 의미 있는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공지능의 결과물도 우리 눈에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현재의 ChatGPT도 결과물의 맞고 틀리고를 떠나 상당한 수준의 창의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자랑스러워했던 인간의 경이로운 창의성도 어쩌면 또다시 머지않은 미래에 유한한 단계의 컴퓨터 계산으로 치환될 수도 있다. 이미 겪어 익숙해진, 하지만 여전히 내게 가슴 아픈 깨달음이다.

인상적으로 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유명한 두 바위 장면의 대화, “모든 새로운 발견은 우리 모두가 얼마나 사소하고 멍청한지를 다시 깨닫게 해준다(Every new discovery is just a reminder-
we are all small and stupid.)”를 떠올린다. 도대체 왜 그래야 했는지를 내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과학 발전의 역사는 줄곧 인간이 스스로 얼마나 자신이 사소한 존재인지를 발견해낸 역사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인간도 동물이라는 깨달음이 그랬다. 알파고에서 내가 인간 지성의 집중과 직관의 초라함을 떠올렸다면, ChatpGPT는 인간의 창의성도 사실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이끈다. 생각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결과로서의 창의성의 세상이 불현듯 우리에게 닥쳤다. 의식 없는 창의성이 보여줄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롤러코스터 같은 발전 속도에 놀라 어지러운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가만히 떠올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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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2023-10-28 14:56:59
생각의 깊이를 알려주시는 의미있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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