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를 쓰는 법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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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를 쓰는 법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06.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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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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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 모습이 보이는 앞면, 숫자 100이 적힌 뒷면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동전은 앞면과 뒷면의 두 상태가 가능하고, 동전은 둘 중 하나의 상태에 있다.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일 수는 없다.

양자역학을 따르는 시스템은 다르다. 동전의 앞, 뒷면처럼 전자의 스핀도 위와 아래, 두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스핀의 방향이 위인 경우의 양자상태를 |1>, 아래인 경우의 양자상태를 |0>으로 표시하면, 전자의 스핀은 동전처럼 |1>의 상태, 그리고 |0>의 상태에 있을 수도 있지만, 두 상태가 중첩된 a|1> + b|0>의 상태도 가능하다. 두 상태가 이렇게 함께 중첩된 상태는 고전역학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다. 만약 양자역학을 따르는 동전이 있다면, 이 동전의 상태는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일 수 있다. 양자역학의 세상은 중첩된 상태의 세상이다.

전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면 어떨까? 첫 번째 전자의 스핀과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을 순서대로 나란히 적으면, 두 전자가 가질 수 있는 상태는 |11>, |10>, |01>, |00>로 모두 넷이 있다. 물론 이 네 상태가 임의로 중첩된 양자상태인 a|11> + b|10> + c|01> + d|00>도 가능하다. 가능한 여러 상태 중, 예를 들어 |10> + |01>을 생각해 보자. 만약 두 전자가 바로 이 상태에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첫 번째 항 |10>은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이 위 방향(1),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아래 방향(0)인 상태이고, 두 번째 항 |01>은 거꾸로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이 아래 방향(0),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위 방향(1)인 상태다. 만약 두 전자가 |10> + |01>의 상태에 있다면 위와 아래, 아래와 위처럼 두 전자의 스핀이 반대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이 위인지 아래인지는 딱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아 측정해야 알 수 있다.

두 전자가 |10> + |01>의 상태에 있도록 잘 준비한 다음에 첫 번째 전자는 이곳 지구에 두고, 두 번째 전자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은하에 보냈다고 하자. 지구에 있는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이 위인지 아래인지를 측정해서 만약 위 방향이라는 것을 지금 알아내면,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아래 방향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된다. 두 전자의 스핀 상태가 서로 얽혀있어서 하나를 알면 멀리 떨어진 다른 하나를 알 수 있는, 기묘하고 신기한 양자 얽힘의 결과다. 조심할 것이 있다. 양자 얽힘은 여러 번 실험으로 확인된 명확한 현상이지만, 양자 얽힘을 이용해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사고실험에서 첫 번째 전자의 스핀을 지구에서 측정해 ‘위 방향’이라는 결과를 얻는 순간 |10> + |01>의 상태가 |10>의 상태로 변하게 된다. 두 전자의 정보가 얽혀있던 양자상태가 측정에 따라서 얽힘이라는 특성을 잃어버린다.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두 번째 전자의 스핀이 아래 방향이라는 것은 이 순간 알 수 있지만, 이후에는 아무리 지구에서 전자의 스핀을 바꿔도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 전자의 스핀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여기서 측정해서 저 먼 곳의 정보를 순간적으로 알아냈다고 해서, 이곳의 정보를 저 먼 곳에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양자역학의 세상이 기묘해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다.

양자역학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컴퓨터가 바로 양자컴퓨터다. 우리가 현재 널리 이용하고 있는 컴퓨터에 비해서 양자컴퓨터가 훨씬 더 빠르게 작동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양자상태의 중첩 덕분이다. 여럿을 중첩해 하나로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양자상태에 양자역학에 기반한 연산을 하면, 이 연산은 중첩하기 이전의 각각의 양자상태에 동시에 병렬연산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행렬에 벡터를 곱하는 연산을 할 때, 각각의 성분으로 나눠 따로따로 계산해 나중에 함께 모아 적는 것이 고전 컴퓨터의 작동방식이라면, 벡터 전체에 그냥 한 번에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의 작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전 컴퓨터도 할 수 있다. 단지, 고전 컴퓨터로는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릴 수 있을 뿐이다.

양자상태는 정말 약하다. 외부와의 상호작용이 있다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그 고유한 특성을 쉽게 잃어버린다. 게다가 양자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기도 어렵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양자상태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양자 오류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아예 이런 오류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만들어진 오류를 양자컴퓨터 내에서 그때그때 교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양자 오류 교정(quantum error correction)의 문제다.

우리가 늘 이용하고 있는 고전 컴퓨터에서는 0과 1의 두 상태를 가질 수 있는 정보의 단위를 비트라고 하고,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를 양자비트(quantum bit)의 의미로 큐빗(qubit)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예로 든, |0>과 |1>의 두 양자상태를 가질 수 있는 스핀 한 개가 큐빗 하나에 대응한다. 초전도체를 이용한 127개의 큐빗으로 구성된 IBM 양자컴퓨터로 양자 현상을 연구한 논문(DOI:10.1038/s41586-023-06096-3)이 최근 출판되었다. 양자 오류 교정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지금의 양자컴퓨터도 일부 문제에 대해서 고전 컴퓨터를 훌쩍 뛰어넘는 계산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결과가 담겨있다.

논문에서는 통계물리학의 2차원 양자 이징 모형(quantum Ising model)의 시간에 따른 양자상태의 변화를 연구했다. 양자 오류의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 재밌다. 없앨 수 없다면 오류를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여러 다양한 크기의 양자 오류가 있을 때의 결과를 얻고, 이를 모아서 양자 오류가 0으로 접근하는 극한에서의 결과를 추정했다. 고전 컴퓨터로는 너무 긴 시간이 걸려서 얻기 어려운 결과를 이 방법을 이용한 양자컴퓨터 계산으로는 짧은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인 논문이다. 2019년 구글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슈퍼컴퓨터로는 1만년이 걸릴 계산을 구글의 양자컴퓨터로는 단 3분 20초 만에 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양자컴퓨터가 고전 컴퓨터를 크게 추월하는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이 드디어 시작되었다고 구글이 주장한 셈이다. 이후, 프로그램을 잘 작성하면 고전적인 슈퍼컴퓨터로도 같은 계산을 1만년이 아닌 5분 안에 할 수 있다는 결과도 발표되어, 양자 우월성 주장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이번에 출판된 IBM 연구진의 논문 제목 <Evidence for the utility of quantum computing before fault tolerance>에는 양자 우월성이라는 단어가 없다. 양자 오류 교정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어야 진정한 양자 우월성의 세상이 시작될 것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시점이 도래하기 전에도 얼마든지 우리가 양자컴퓨터를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인 멋진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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