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왜 다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상태바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왜 다를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02.23 1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미지 사진=이미지투데이

녹음된 목소리를 들으면 내 목소리 같지 않다. 모두가 경험한 일이다. 반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는 내 귀로 바로 앞에서 듣나, 녹음된 목소리를 듣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다른 이가 듣는 내 목소리와 다르다는 얘기다. 녹음한 우리 자신의 목소리는 왜 낯설게 들릴까?

내 몸 자체의 정보를 인식하는 것은 나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생성되어 들어온 정보를 인식하는 것과 묘하게 다르다.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면 스스로 자기 겨드랑이를 손으로 간지럽혀보라. 자신을 간지럽히며 깔깔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몸을 움직일 때 우리 뇌는 먼저 예상을 형성한다. 그리고 실제로 들어온 감각 정보에서 예상 감각을 뺀 차이를 감각 경험으로 생성한다. 자신을 간지럽힌다는 것을 알고 있는 뇌는, 실제로 입력되는 겨드랑이의 간지러운 감각 정보를 다른 이가 간지럽힐 때보다 크게 줄여서 인식하게 된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 손목을 손가락으로 때리는 벌칙 게임을 젊어서 자주 했다. 해본 사람이라면 많은 이가 아마도 동의할 수 있듯이, 친구가 내 손목을 나보다 더 세게 때린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난 살살 때렸는데 친구가 더 세게 때린다고 느끼니, 게임이 이어지면서 때리는 강도가 점점 세어지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이를 악물고 힘껏 상대 손목을 내려치게 된다. 빨갛게 물든 손목을 감싸고 친구를 야속해 하며 게임이 끝날 때가 많았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내 손가락이 친구의 손목에 닿을 때 내 뇌가 느끼는 강도는 친구가 느끼는 강도보다 작다. 친구가 때릴 때는 내 뇌가 예상 감각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녹음된 목소리가 내 목소리와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 소개할 논문(DOI:10.1098/rsos.221561)이 바로 이 주제를 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막상 논문을 읽고 나서, “아, 나도 이런 생각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떠오르는 연구가 난 참 재밌고 좋다. 이 논문도 그랬다. 간단하지만 명쾌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누구나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실험을 진행해 명확한 결론을 얻은 논문이다.

내가 목소리를 낼 때 내가 인식하는 소리는 귀의 고막 밖에서 공기의 진동으로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성대의 떨림이 전달되어 내 머리뼈도 떨리고, 이 머리뼈의 진동도 내가 듣는 내 목소리의 인식 경험에 일조한다. 높은 진동수의 소리보다 낮은 진동수의 소리를 더 잘 전달하는 우리 머리뼈는 일종의 ‘로-패스 필터’(low-pass filter)로 작동한다. 말할 때 내가 듣는 내 목소리는 다른 이가 듣는 내 목소리보다 저음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목소리를 녹음하고는 저음 변조를 거쳐 들려주면 어떨까? 이 경우에도 자기 목소리의 인식률이 명확히 높아지지는 않는다고 논문 저자들은 말한다. 내가 나로 인식하는 내가 듣는 내 목소리가 단지 목소리의 진동수 패턴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자들의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 자기 목소리를 인식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실험으로 정말로 머리뼈를 진동시키자는 얘기다. 어떻게? 바로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골전도 헤드폰을 이용하는 거다. 먼저, 실험 참가자 각자의 ‘아’ 소리를 녹음하고는 목소리의 크기와 지속시간을 표준화하고 프로그램으로 배경 소음을 줄인다. 그리고는 참가자 A의 목소리를 A가 모르는 사람 B의 목소리와 비율을 바꿔가며(15, 20, 45, 55, 70, 85%) 섞는다. A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어있을수록 A가 자기 목소리로 인식할 확률이 늘어나게 된다.

논문 연구자들은 16명의 사람에게 준비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각자의 자기 목소리 인식률을 측정했다. 실험 참가자에게 고막을 울리는 보통 헤드폰과 골전도 헤드폰을 모두 착용하도록 하고는 둘 중 하나의 헤드폰으로만 소리를 들려주었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골전도 헤드폰으로 소리를 들려줄 때가 보통의 고막 진동 헤드폰으로 들려줄 때보다 자기 목소리의 인식률이 더 높았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의 인식에는 음성의 진동수 패턴뿐 아니라 실제 머리뼈의 역학적인 진동 등의 요인이 함께 기여한다는 결과다.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목소리는 바로 자신의 목소리다. 내게 가장 익숙한 목소리가 바로 내 목소리라는 얘기다. 골전도 헤드폰과 보통의 고막 진동 헤드폰 사이의 인식률의 차이가 목소리의 익숙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피는 실험도 논문 저자들은 진행했다. A가 잘 알고 있는 사람 B의 익숙한 목소리와 제3자 C의 목소리를,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섞어 A에게 들려주면서 친구 B의 목소리 인식률을 측정했다. 이 실험에서는 골전도 헤드폰이라고 해서 인식률이 고막 진동 헤드폰보다 유의미하게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결과를 얻었다. 목소리의 친숙도가 아니라 머리뼈의 진동 자체가 내 목소리라는 느낌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결론이다.

조현병 환자 중에는 ‘환청’(hearing voice)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경계성(경계선) 인격 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환자 중에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의 목소리로,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오해하는 환자도 있다고 한다. 오늘 소개한 논문의 연구 결과가 이런 정신 질환의 진단 방법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저자들은 제안한다. 이러한 응용의 가능성을 넘어서 논문에서 추구하는 질문은 무척 심오하다. 나를 나로 인식하는 자기 인식이 사실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이 오늘 소개한 논문의 중요한 결과다. 골전도 헤드폰을 통하면 내 목소리의 인식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내 목소리의 자기 인식이 단순한 음성정보뿐 아니라 내 머리 전체의 떨림에 대한 감각 정보의 처리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와 ‘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연구는 필요해 보인다.

나라는 자의식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과학연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자의식의 형성에 우리 자신의 물리적인 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뇌과학자가 많다. 이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고 한다. 오늘 소개한 연구는 목소리의 자기 인식에 국한된 것이지만, 나를 나로 인식하는 데 있어서 우리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물리적인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중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골전도 헤드폰으로 내가 나를 인식하는 과정을 연구한 멋진 논문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