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의 물리학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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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떼’의 물리학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1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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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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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올 때 머릿속에서 양을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있다. 나도 해봤지만 그리 큰 효과는 없었다. 복잡한 세상 속 온갖 갈등을 고민하느니 양 떼를 떠올리는 것이 그나마 훨씬 더 나은 방법이겠지만 말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풀밭에 모여 풀을 뜯고 있는 양 떼의 모습은 무척 평화롭고 고요해 보인다. 양 떼가 어떻게 모이고 어떻게 이동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이번에 소개할 물리학 논문의 주제이다(DOI: 10.1038/s41567-022-01769-8). 풀밭을 거니는 양 떼의 고요한 장면에 대한 연구이지만, 논문이 재밌어 읽다 잠이 달아났다. 졸기는커녕, 논문 읽다 여러 번 웃었다.

논문 저자들은 연령이 1.5년으로 같은 네 마리 암컷 양을 풀밭에 풀어놓고 7미터 높이에 설치한 카메라로 양을 한 마리씩 식별해 시간에 따라 변하는 위치 정보를 데이터로 모았다. 이 작은 규모의 양 떼는 서로 다른 두 상태를 보여주었다. 여럿이 가만히 서서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서 풀을 뜯고 있는 상태, 그리고 주변의 다른 곳으로 줄을 지어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태다. 이 연구 이전에도 많은 물리학자가 동물의 집단행동을 연구했다. 찌르레기와 같은 새들은 서식지에 머물 때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 없이 모두가 함께 날아올라 서로의 이동 방향을 조율하며 멋진 집단 군무를 보여준다. 한편, 지도자가 있는 집단행동의 예로는 알파벳 V자의 꼴을 형성하고 뾰족한 선두에서 한 마리가 무리를 이끄는 철새들의 이동 패턴을 들 수 있다. 찌르레기의 군무는 민주적인 방식을, V자로 나는 철새는 계층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양 떼에도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을까?

논문에 따르면 양 떼는 2,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함께 모여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40초 정도 줄을 지어 이동하는 방식의 집단행동을 반복했다. 양들의 속도를 데이터로 모아 그린 확률분포 그래프를 보면 속도가 0에 가까운 풀 뜯는 상태와 초속 1미터 정도로 움직이는 집단이동 상태가 명확히 구별된다. 또, 두 상태 사이의 변환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뤄진다는 관찰도 논문에 담겨있다. 풀 뜯다 이동하고 이동하다 풀 뜯는 행동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매번 이동이 시작할 때 네 마리중 하나가 높은 확률로 무리를 이끄는지, 과연 특정 양이 무리의 지도자인지 살펴보았다. 이럴 때 과학자들은 통계학의 검정 방법을 이용한다. 매번의 집단이동에서 마구잡이로 무리를 이끄는 양이 정해진다는 가설을 설정하고(이를 통계학에서는 ‘귀무가설’이라고 한다), 이 가설에 바탕 한 이론적인 확률분포를 실제 데이터에서 얻어진 결과와 비교하는 방식이다.

만약 실제의 데이터가 귀무가설이 예측하는 범위를 벗어나면, 귀무가설을 높은 확률로 기각할 수 있어서, 지도자 양이 마구잡이로 정해진다고 할 수 없게 된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바로 이 검정 방법을 적용해서, 집단이동을 선도하는 양이 매번 마구잡이로 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얻었다. 비슷한 통계학의 검정 방법을 이용해서, 줄지어 움직이는 집단이동의 방향은 그전에 움직였던 방향과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결론도 얻었다.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다가 갑자기 이동을 시작하는데, 아무 양이나 마구잡이로 선두가 택해지면, 그 전에 어디에서 풀을 뜯었는지에 무관하게 그냥 새로운 곳으로 줄지어 이동한다는 결과다. 이 결과만을 보면 양 떼는 그리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양떼 무리의 집단행동은 그냥 어쩌다 일어나는 것일 뿐, 딱히 어떤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도 논문의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럿이 모이면 전체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일컫는 용어가 바로 집단지성이다. 화학 물질인 페로몬을 이용해서 집에서 먹이까지 최단 시간의 경로를 찾아내는 개미 군집이 집단지성의 고전적인 사례다. 나도 강연할 때 청중들에게 내 몸무게의 예측치를 제출하게 하고는 그 데이터를 모아 평균값을 구해 내 실제 몸무게와 비교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 각자가 최선을 다해 예측한 값을 모아 단순히 평균을 구해도 그 값이 내 실제 몸무게와 상당히 가까워 신기했다. 이것도 집단지성의 한 예다. 그렇다면 오늘 소개하는 논문의 평화로운 양떼의 집단행동에서도 집단지성을 볼 수 있을까?

논문 저자들은 한 줄로 이동하는 양떼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수학 모형을 만들고 살펴보았다. 매번의 이동에서 마구잡이로 정해진 선두의 양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두 번째, 세 번째 양이 차례로 자기 바로 앞의 양을 따른다는 결론을 얻었다. 매번 양 떼의 이동에는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어서 계층적인 구조를 따라 앞에서 뒤로 차례로 정보가 전달되지, 뒤에서 앞쪽으로는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한 번의 줄 지은 집단이동은 민주적이 아닌 계층적인 정보전달 구조를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매번의 집단이동에서 그때그때 선두에 선 양이 다르게 정해지니 결국 시간이 지나면 어느 양이나 고르게 지도자의 역할을 맡게 되어 민주주의를 닮은 모습도 보여준다. 마구잡이로 선두가 택해지고 일단 정해진 선두를 따라 한 마리씩 그냥 앞선 양을 따라가는 양 떼의 집단행동에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양을 인터뷰할 수는 없으니, 이론적인 모형으로 양떼의 집단행동의 이점을 살펴보는 방법이 제격이다. 논문 저자들은 양 떼의 실제 움직임을 기술하는 모형을 만들고는 출구를 알고 있는 양이 딱 한 마리 있는 상황을 상정해서 미로 안에 놓인 양떼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했다. 출구 정보를 가진 양이 극소수만 있어도 양떼 전체가 짧은 시간에 미로를 탈출한다는 명확한 결과를 얻었다. 컴퓨터 시늉내기의 결과를 통해 저자들은 여러 양 중 한 마리가 다음에 풀을 뜯을 적당한 풀밭을 알고 있어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정보를 갖지 않은 다른 양은 차례차례 줄을 지어 그곳으로 함께 이동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즉, 한 마리가 가진 정보가 무리 전체에 빠르게 전달되고 뒤를 따르는 양들은 무리를 이끄는 양이 가진 정보를 신뢰해 묵묵히 그 길을 따라가는데, 바로 이 방법이 무리 전체가 빠르게 더 나은 장소로 이동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얘기다.

양 떼를 구성하는 어느 특정 양이 항상 무리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가진 어느 양이나 다음의 집단이동을 이끌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적인 방식과 계층적인 방식을 조합해 양 떼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흥미로운 결론이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잠 안 올 때 세는 양들도 높은 수준의 집단지성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민주적으로 택해지고, 그렇게 택한 지도자에게 무리를 이끌 권한이 신뢰와 함께 주어진다. 물론 무리를 이끄는 권한은 잠깐의 이동 중에만 잠시 부여될 뿐이다. 다음에는 더 나은 정보를 가진 양이 또 새로 등장해 무리를 이끈다. 밤잠 설치며 양 떼를 셀 때, 양 떼가 보여주는 놀라운 집단지성도 함께 떠올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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