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티안과 도마뱀 무늬’의 비밀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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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안과 도마뱀 무늬’의 비밀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6.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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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안 어미와 강아지. /출처=Wikimedia commons
달마티안 어미와 강아지. /출처=Wikimedia commons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어려운 암호를 해독한 것으로 유명한 과학자 튜링은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고안했고, 정보처리의 이론 모형 ‘튜링 기계’를 제안해 현대 컴퓨터의 초석을 놓았다. 또 얼룩말이나 호랑이 같은 동물의 겉모습에서 보이는 얼룩무늬를 형성하는 미시적인 메커니즘을 제안하기도 했다. 튜링이 제안한 방법으로 형성되는 무늬를 ‘튜링 패턴’이라 부른다. 여러 분야의 과학적 성취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먼 미래에도 우리가 계속 기억할 정말 뛰어난 과학자다.

달마티안 어미와 강아지 여럿이 담긴 사진을 보자. 어린 달마티안 강아지가 성장하면서 얼룩덜룩한 무늬의 모습이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강아지의 작고 검은 반점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성장하고, 전체 반점의 숫자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달마티안의 얼룩덜룩 무늬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튜링이 1952년 출판한 논문의 제목은 <The Chemical Basis of Morphogenesis>(형태 발생의 화학적 근거)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생명체가 보여주는 형태가 만들어지기 위한 화학적 근거를 제안한 논문이다.

색소를 만들어내는 화학물질 P(pigment)와 이의 생성을 방해하는 화학물질 I(inhibiter)가 있다고 하자. P와 I는 둘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으로 확산되는데 P는 자신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I도 만들어낸다. 그런데 두 번째 물질 I는 색소 물질인 P의 형성을 방해한다. 이 가정을 반응-확산 방정식(reaction-diffusion equation)이라 불리는 수식의 꼴로 적고 풀면, 두 물질의 공간 분포가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형의 구체적인 꼴을 잘 조절하면 튜링 패턴의 모습이 사진의 달마티안 강아지와 어미처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도 재현할 수 있다. 튜링은 많은 생명이 보여주는 개체마다 다른 다양한 형태를 단순한 화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도마뱀의 알록달록 비늘무늬. /사진=스위스 제네바대학교 M. Milinkovitch(https://www.lanevol.org)
도마뱀의 알록달록 비늘무늬. /사진=스위스 제네바대학교 M. Milinkovitch(https://www.lanevol.org)

다음은 도마뱀 얘기다. 유럽에서 발견되는 한 도마뱀 종은 밝고 어두운 두 종류의 색을 띤 여러 비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준다. 2022년 올해, 물리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에 재밌는 논문(DOI: 10.1103/PhysRevLett.128.048102)이 출판되었다. 통계물리학 분야에는 자석이 어떻게 자성을 갖게 되는 지를 설명하는 간단한 표준모형인 이징 모형(Ising model)이 널리 쓰인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이징 모형을 이용해 도마뱀의 알록달록 무늬를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원자의 스핀은 자기 모멘트를 가져서, 우리가 익숙한, 하지만 크기는 정말 작은 막대자석에 비유할 수 있다. 이징 모형을 구성하는 많은 수의 스핀(작은 막대자석)은 아주 낮은 온도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정렬할 때, 에너지가 더 낮고, 온도가 아주 낮아지면 모든 물질은 가장 에너지가 낮은 바닥상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반면, 온도가 높아지면 이제 스핀들은 뒤죽박죽 아무 방향이나 가리키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마구잡이 방향으로 뒤죽박죽 늘어선 상태가 엔트로피가 더 높고, 온도가 아주 높아지면 모든 물질은 가장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낮은 온도에서는 모든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해, 전체가 커다란 자성을 갖게 되고, 높은 온도에서는 스핀의 방향이 뒤죽박죽이 되어 전체가 자성을 보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징 모형을 이루는 스핀은 위와 아래처럼 딱 두 방향만을 가리킬 수 있다. 낮은 온도에서 스스로 강한 자성을 만들어내는 강자성 물질이, 온도가 높아지면 결국 자성을 잃게 되는 이유를 이징 모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마뱀 사진을 다시 보자. 도마뱀 비늘 하나하나는 어둡고 밝은 딱 두 종류의 색만을 보여준다. 마치 위와 아래, 딱 두 방향만 가질 수 있는 강자성 이징 모형의 스핀처럼 말이다. 표준적인 강자성 이징 모형의 스핀은 주변의 스핀이 자신과 같은 방향인 상황을 선호한다. 그럴 때가 에너지가 더 낮기 때문이다. 만약 도마뱀 비늘의 색이 강자성 이징 모형과 같은 방식을 따른다면, 같은 색조의 여러 비늘이 한 덩어리로 크게 뭉친 상황이 에너지가 더 낮아 도마뱀 비늘무늬가 선호하는 모습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의 도마뱀은 밝은 색조의 비늘 주위에는 마찬가지로 밝은 색이 아닌, 어두운 색조를 가진 비늘이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강자성 이징 모형으로는 사진의 도마뱀 비늘무늬 패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도마뱀 비늘무늬를 설명하기 위해서 강자성이 아닌 반자성 이징 모형을 이용했다. 인접한 스핀이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보다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킬 때, 에너지가 더 낮아지는 것이 바로 반자성 이징 모형이다. 따라서, 사진의 도마뱀 비늘무늬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강자성이 아닌 반자성 이징 모형이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스핀으로 구성된 이징 모형에서 스핀들은 주어진 격자 구조의 꼭짓점들에 놓인다. 도마뱀 비늘무늬를 설명하기 위해 이용할 반자성 이징 모형의 격자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도마뱀 사진을 유심히 보면 이미 답이 보인다. 바로 삼각격자의 구조다. 삼각격자는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책상위에 백 원짜리 동전을 여럿 늘어놓고 사방에서 밀어 전체의 면적을 가능한 줄일 때 우리가 결국 보게 되는 격자구조가 바로 삼각격자다. 동전 각각의 중심점을 서로 선으로 연결하면 정삼각형 하나의 꼭짓점은 모두 여섯 개의 꼭짓점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의 도마뱀 비늘무늬에서도 대부분의 위치에서 비늘 하나 주위를 다른 여섯 개의 비늘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자, 이제 삼각격자 구조의 반자성 이징 모형이 도마뱀 비늘무늬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직 하나 더 남은 것이 있다. 사진을 보면 밝은 색 비늘보다 어두운 색 비늘이 더 많다. 이징 모형의 입장에서는 마치 위를 향하는 스핀이 아래를 향하는 스핀보다 더 많은 상황에 대응한다. 이것도 해결가능하다. 바로 이징 모형에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어주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스핀은 외부 자기장과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가 에너지가 더 낮아서 윗방향의 외부자기장이 있다면 전체 스핀 중 위를 가리키는 스핀의 숫자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모두 모아보자. 사진의 도마뱀이 보여주는 알록달록 비늘무늬를 설명하는 통계물리학의 모형은, 외부자기장이 있는 삼각격자 위의 반자성 이징 모형일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논문의 저자들은, 이징 모형의 온도, 스핀 사이 상호작용의 세기, 그리고 외부자기장의 세기를 적절히 조절해서, 도마뱀 비늘무늬를 상당히 그럴듯하게 재현했다. 바로, 아래 그림이 컴퓨터를 이용해 저자들이 구현한 결과다. 실제 도마뱀의 비늘무늬와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다.

이징 모형으로 재현한 도마뱀의 알록달록 비늘무늬. /사진=스위스 제네바대학교 M. Milinkovitch(https://www.lanevol.org)
이징 모형으로 재현한 도마뱀의 알록달록 비늘무늬. /사진=스위스 제네바대학교 M. Milinkovitch(https://www.lanevol.org)

달마티안의 얼룩무늬, 도마뱀의 알록달록 비늘무늬 등, 현실에서 우리가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패턴이 많다. 오늘 글에서 본 것처럼, 현실이 보여주는 복잡함의 바탕에서 의외로 단순한 메커니즘을 찾을 수 있을 때도 있다. 아무리 자연이 복잡해 보여도 그 안에서 단순성을 찾으려는 영원히 계속될 인류의 치열한 노력의 이름이 과학이다. 도마뱀과 자석처럼, 여럿을 하나로 관통하고자 하는 것이 물리학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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