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쟁탈전은 대규모 자금 동원, 공개매수 가격 상향, 극심한 주가 변동, 치열한 법정 다툼과 홍보전을 동반하면서 진행 중이다. 치열하게 전개된 ‘공개매수 가격 올리기’ 레이스가 끝나고 공개매수 마감일이 속속 도래하면서 하나둘씩 공개매수 성적표도 확정되고 있다. 영풍정밀을 둘러싼 공개매수 경쟁은 싱겁게 막을 내렸지만, ‘고려아연 쟁탈전’은 여전히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긴박하게 이어진 ‘공개매수 경쟁’의 최종적인 결과는 오는 23일 마감하는 고려아연 연합(베인캐피탈 포함)의 공개매수 청약 결과에서 드러날 예정이다. 지금까지 확정된 수치들을 바탕으로 양측 진영의 판세를 시나리오별로 미리 예측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국민연금과 패시브 펀드에서 각각 발행 주식의 3% 공개매수에 응하고(국민연금이 최근까지도 꾸준히 장내 매도를 이어온 점, 위탁 운용사 보유분은 공개매수에 대한 의사결정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통 물량은 전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청약한다는 가정이다. 공개매수에 청약하는 주식 수는 발행 주식의 17.38% 정도다. 이렇게 공개매수가 완료되면 장씨 일가 지분은 38.47%, 최씨 일가 지분은 베인캐피탈에서 확보하는 주식을 더해 36.18%로 늘어난다. 양측의 지분 차이는 여전히 2.29%포인트에 불과하다. 종전처럼 국민연금이 여전히 캐스팅 보트 역할을 맡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국민연금과 패시브 펀드에서 각각 발행 주식의 3, 5% 공개매수에 응하고,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통 물량은 100%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청약한다는 가정이다. 공개매수에 청약하는 주식 수는 발행 주식의 19.38% 정도다. 이렇게 공개매수가 완료되면 장씨 일가 지분은 38.47%, 최씨 일가 지분은 베인캐피탈에서 확보하는 주식을 더해 36.43%로 조금 더 늘어난다. 양측의 지분 차이는 여전히 2.04%포인트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여전히 캐스팅 보트 역할을 맡을 공산이 크다.
최근에 와서야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 주식 7.83%(올해 6월 말 기준)가 크게 주목받는 건 때늦은 느낌마저 든다. 양가 진영에서 이번 공개매수를 마무리하고 나면 유통 주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과반이 넘는 지분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방금 살펴본 두 번째 시나리오에 더해 공개매수로 사들인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고 나면 양 진영의 지분율은 급격히 올라간다. 그래도 장씨 일가의 지분율은 최씨 일가와 겨우 2.45%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최윤범 회장은 여전히 몇몇 카드를 활용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지지 확보, 소각 의무가 없는 자사주를 활용한 우호 지분 확대, 한국투자증권과 맺은 자사주 신탁을 이용한 장내 매입 등이다. 이에 맞서 MBK파트너스도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언제든지 장내 매입에 나설 수 있다.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고려아연의 백기사 가운데 일부 지분을 빼앗아 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치열한 공개매수 가격 경쟁, 각종 소송전과 여론전, 조만간 확정될 ‘공개매수와 대항 공개매수’ 성적 등은 어쩌면 기나긴 전쟁의 제1라운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비유하자면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군의 군대가 총동원되다시피 집결해 바다 건너 트로이 벌판에 당도한 이후, 양대 진영을 대표하는 장수들만 나서서 일합을 겨룬 형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10년이나 지속된 트로이 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빛낸 인물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두 연합군 가운데 최고의 영웅들이었던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진검승부를 벌인 뒤에도 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디세우스가 만든 트로이 목마의 불룩한 뱃속이 무장한 그리스 연합군의 병사들로 가득 채워지고, 마침내 목마가 성안으로 끌려간 뒤에야 전쟁은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쟁탈전에도 어느덧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이 속속 참전하고 있다. 단지 고려아연 주식을 1주씩 새롭게 사들인 울산시민들이나 일반 투자자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때마침 국회에서 열리는 국정감사 현장만 잠깐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금융감독원장, 국민연금 이사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보건복지위 등 온갖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마이크를 붙들고 어느 한쪽을 공격하거나 방어하기에 바쁘다. 사실을 말하자면, 고려아연에 이미 상당한 자본을 투자한 국내외 대기업들의 지분만 하더라도 20%에 육박한다. 때마침 고려아연 지분 일부를 소유한 다국적 원자재 대기업의 CEO 방한 소식까지도 들린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향배가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와 첨예하게 얽혀 있다는 방증이다. 고려아연의 시가총액만 18조1568억원에 이르며 코스피 순위 20위까지 올라왔다.
은둔형 기업의 대표 격이었던 고려아연이 대한민국 증시 최고의 관심 종목으로 등극한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이미 올해 3월에 개최된 정기주주총회 때부터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 사이에 첨예한 표 대결이 발생하고 몇몇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는 등 심상찮은 기류들이 나타나곤 했지만, 이토록 빠른 결별과 파국을 맞은 끝에 적대적인 대치 상황으로까지 진행될 줄은 몰랐다.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인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국가 경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마저 탐욕스러운 금융 자본에 의해 와해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세계 제1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도 매우 크다. 일반적인 기업들과는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크다. 오죽하면 MBK파트너스가 이번 쟁탈전에 참전하자마자 중국 자본에 매각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겠는가.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MBK의 해외 매각 금지 약속을 빤히 듣고도 여전히 그들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건 약탈적 투기자본의 본질이 결코 쉽사리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을 휩쓴 끝에 머나먼 모스크바까지 탐을 낸 건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한 탓이었다. 나폴레옹이 1812년 10월 모스크바를 점령하자마자 서둘러 퇴각을 결정한 건 곧 닥쳐올 겨울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병사와 군마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식량과 건초를 조달하는 것도 크나큰 난제였다. 모스크바 시민들이 도시 전체를 불사르고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1812년 조국 전쟁의 승리 원인을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오늘날 특정한 대기업을 사모펀드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모두가 국민 전쟁에 나서듯 덤벼들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나 고려아연을 지키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사람들은 톨스토이의 문장을 한 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스몰렌스크의 화재 이래, 종래의 어떠한 전쟁의 전설에도 적용되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도시와 마을의 소실, 몇 가지 전투 후의 후퇴, 보로지노에서의 손해, 두 번째의 후퇴, 모스크바의 포기와 화재, 약탈병의 체포, 수송차의 탈취, 유격전 등 이 모든 것은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나폴레옹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검술가의 정규적인 자세로 모스크바에 남아, 상대방이 검 대신에 자기 머리 위에 쳐든 몽둥이를 본 바로 그 순간부터, 꾸뚜조프와 알렉산드르 황제를 향해서 전쟁하는 방법이 규칙에 어긋난다고 (마치 사람을 죽이는 데도 무슨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불평을 계속했다. 지위가 높은 러시아인에게는 몽둥이로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가 창피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랑스 측의 규칙 위반의 불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 전쟁이라는 몽둥이를 무서운 힘으로 번쩍 들어 올려 우둔하리만큼 거칠게, 그러나 목적에 따라서 무조건 내리쳐 침략자 전체가 박멸될 때까지 프랑스군을 후려갈긴 것이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중에서
2024년 9월에 기습작전으로 시작된 고려아연 쟁탈전은 시시각각으로 형세가 뒤바뀌는 중이다. 수조 원의 자금들이 긴박하게 조달된 이번 공개매수와 대항 공개매수도 먼 훗날 되돌아보면 기나긴 전쟁의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쟁은 예상 밖으로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만 하더라도 도대체 벌써 몇 년째인가. 아무쪼록 고려아연이 이토록 위험한 전쟁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다시 평화롭게 자신이 걷던 길을 힘차게 내딛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