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기술, 국가 핵심기술 지정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 압도적
MBK, 지분 추가 확보에도 과반은 못미쳐… ‘국민연금 어느 편에 서느냐’가 관건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지난 14일 마감한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서 5.34%의 지분을 추가 확보함으로써 최대주주 지위를 굳히게 됐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이 오는 23일까지 실시하는 자기주식 공개매수에서 최대 17.5%를 매입하고, 베인캐피탈이 지분 2.5% 매수에 성공하더라도 지분율에서 앞선 MBK 연합이 조만간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이사회 장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MBK 쪽이 과반 지분 확보에는 못 미쳐 지분 7.83%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어느 편에 서느냐가 관건이긴 하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업체인 고려아연이 ‘적대적 M&A’라는 태풍을 마주하게 됐다. 최윤범 회장 취임 이후 비금속 제련사업에서 탈피해 신재생에너지, 니켈 제련을 비롯한 2차전지 소재산업, 자원 리사이클링 등 미래 신성장사업 분야 진출에 승부를 걸어 온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엔 초비상이 걸린 셈이다. 자칫 하루 아침에 쫓겨나 장시간 공들여 온 기술개발 노력이 중단되고 사모펀드 자본이 경영권을 장악한 후 기업의 핵심 자산인 기술이나 인프라를 매각해 수익 실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경영진은 MBK 측의 공개매수 하루 전날에도 입장문을 내고 “MBK는 공개매수에서 단 1주만 청약을 받아도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헐값에 취득할 수 있다”며 “국가의 비철금속 핵심소재 기업을 어떻게 육성, 발전시킬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전혀 없이 오로지 경영권만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이 국가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판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해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가 심사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술은 리튬 2차전지의 주요 소재인 니켈 함량 80% 이상의 양극재 전구체 설계 및 제조, 공정기술로 전지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외국 자본으로의 기술 매각이나 유출에 정부가 제동을 걸 수 있다.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이 외국기업에 매각될 땐 산업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고 상황에 따라 인수 금지 또는 원상회복 등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MBK파트너스는 최근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자신들을 ‘한국 토종 사모펀드’로 강조하고 고려아연의 투명한 기업 거버넌스룰을 확립해 지속 성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해당 펀드에 중국 자본이 포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사모펀드 특성상 단기 차익 실현을 우선시해 알짜 계열사 등 자산 매각, 고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영풍에 재매각하는 절차를 밟지 않겠냐고 여전히 의심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다수의 비철 제련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전략 자산이다. 이런 기술의 해외 유출은 기간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국가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적 기술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사모펀드가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이 우려된 사례는 몇 년 전에도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그랬고, 대우조선해양 역시 사모펀드의 경영권 참여 이후 기술 유출 우려가 제기되면서 방위산업 기술의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바 있다. 단기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사모펀드 자본은 장기적 투자나 기술 보호보다는 신속한 자본회수를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 이로 인해 기업의 핵심 자산이나 기술이 팔리거나 해외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국가적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핵심기술 보유 기업에 대한 M&A가 국가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정부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기술 유출 방지법이나 사모펀드 규제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고려아연의 경영권 싸움과 관련한 질의가 이어지고 있다.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우려를 지적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에선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강한 우려를 표하며 일명 ‘MBK 방지법’이라 불리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한편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국민 절반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을 적대적 M&A로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 10명 중 6명은 국가 핵심기술 유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대적 M&A로 보지 않는다는 응답은 22.8%였다.
또한 고려아연의 생산 소재가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한다’라는 응답은 72.4%로 경제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응답자의 62.6%가 국가 전략기술과 인력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대부분인 75.8%가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 기업의 인수 시도에 대해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사모펀드의 공격적 M&A와 관련해 입법과 정책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80%를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고려아연이 신청한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기술’의 국가 핵심기술 지정 여부를 빨리 결론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정부가 눈여겨보고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장시간 공들인 국가 핵심기술에 대한 R&D 투자와 결실들이 물거품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기대가 그만큼 높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