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와 ‘적합도 지형’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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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크론 변이와 ‘적합도 지형’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2.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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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요즘은 자주 볼 수 없지만, 고기압과 저기압에 해당하는 영역을 우리나라 지도 위에 표시한 기상도로 날씨를 예측하는 장면을 오래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주변보다 공기의 압력이 더 높은 지역은 ‘고’, 압력이 낮은 지역은 ‘저’라고 표시한 기상도를 보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지, 비구름이 어느 방향으로 옮겨가 강우지역이 어떻게 변할지 파악할 수 있다. 기상도에서 고기압으로 표시된 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닫힌 모양의 폐곡선 안쪽은 주변보다 기압이 높고, 그 바깥은 기압이 낮다. 고기압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폐곡선 위에서는 기압이 같아서 기상도에 등장하는 이런 선들을 등압선이라고 부른다. 그 위에서는 기압이 같다는 뜻이다.

지형의 높고 낮음을 2차원 지도 위에 표현할 때도 같은 방법을 쓴다. 선 하나로 부드럽게 연결된 위치들은 해발고도가 같은 지점들이어서 이 선을 등고선이라고 부른다. 등고선으로 지형의 높고 낮음을 표시하면 산꼭대기 부분은 작은 원으로 둘러싸여있다. 그 원은 또 그 밖의 좀 더 큰 원안에 놓여있다. 평면 위에 봉긋 솟은 원뿔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뿔 꼭짓점을 둘러싸고 높이가 일정한 점들을 선으로 이어서 그리고 위에서 바라보면 이 점들은 둥근 원 모양으로 원뿔 꼭짓점을 둘러싸고 있다. 여러 등고선 각각에 해발고도가 얼마인지를 숫자로 표시하기도 한다. 가장 빠르게 산꼭대기로 오르는 방법은 해발고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등고선을 수직방향으로 가로질러 가는 것이라는 것도, 산꼭대기에서 물을 흘리면 각 등고선을 수직으로 가르는 방향을 따라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학에서는 이처럼 지형(landscape)을 자주 이용한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그렇다. 현재 인공신경망의 상태를 높은 차원의 공간 안에 한 점으로 표시할 수 있다. 이렇게 표시한 각 위치마다, 신경망의 출력 결과가 우리가 원하는 정답과 얼마나 다른지, 그 오차 값을 대응시켜보자. 각 위치에서의 오차 값을 마치 그 곳의 해발고도처럼 간주해서 그린 전체 오차 지형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신경망 출력의 오차를 줄이는 간편한 방법은 오차의 지형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아래로 조금씩 나아가도록 신경망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경사가 급히 변하는 방향으로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뜻하는, 인공신경망의 인기 있는 학습방법인 경사하강법(gradient-descent method)이다.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아이디어도 무척 간단하다. 현재의 인공신경망의 상태에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오차의 지형도에서 가장 빨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지를 계산하고는 그 방향으로 작은 발걸음을 연이어 옮겨 걸어가는 것을 반복한다. 경사하강법을 이용하면 오차 지형도의 가장 깊은 골짜기, 즉 출력과 정답의 차이가 가장 작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

물리학에도 지형을 이용할 때가 많다. 온도가 아주 낮을 때 물질은 가장 에너지가 낮은 바닥상태에 도달한다. 온도를 낮추면 액체인 물이 얼어 결정구조를 가진 얼음이 되는 이유도 바로 얼음이 물보다 에너지가 낮기 때문이다. 낮은 온도에서 물질이 보여주는 에너지의 바닥상태를 얻는 방법은 에너지 지형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를 찾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적합도 지형. 모든 생명은 제각각의 여정을 따라 적합도 지형의 산봉우리로 오르는 과정을 이어간다. /출처=위키미디어
적합도 지형. 모든 생명은 제각각의 여정을 따라 적합도 지형의 산봉우리로 오르는 과정을 이어간다. /출처=위키미디어

인공지능 분야에 오차 지형이 있고 물리학에 에너지 지형이 있다면 진화 생물학에는 적합도 지형(fitness landscape)이 있다. 적합도는 생명체가 성공적으로 남기는 자손의 숫자에 비례한다. 오차 지형과 에너지 지형에서는 깊은 골짜기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생명은 골짜기가 아니라 산꼭대기를 좋아한다. 적합도 지형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생명체는 적합도가 높아 이후 세대를 거듭하며 자손을 많이 남기게 되고, 결국 경쟁에서 이겨 우점종이 된다. 진화의 과정은 각 생명이 가장 높은 산봉우리로 오르는 치열한 경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점종이 델타에서 오미크론으로 바뀐 이유는 적합도 지형에서 오미크론이 더 높은 산꼭대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리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사실 생물학이 훨씬 더 어렵다. 이유가 있다. 풍경을 찍은 스냅사진처럼, 물리학의 에너지 지형은 시간이 지나도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오늘 0도의 온도에서 얼음이 언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 내일 다시 실험한다고 다를 리가 없다. 물리학의 에너지 지형은 고정되어 있어 변하지 않아 언제 어디서 봐도 어제의 깊은 골짜기는 여전히 그곳에 같은 깊이로 있다.

생물학의 적합도 지형은 다르다. 모든 생명은 자신의 유전형을 조금씩 바꿔가며 적합도 지형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려는 노력을 이어간다. 하지만 막상 산꼭대기에 도달해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피면, 오를 때 보았던 풍경과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모든 생명이 마주한 환경은 시시각각 변해 적합도 지형은 늘 움직여 변한다. 무거운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형벌을 받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가 하는 일도 생명이 하는 일에 비하면 쉬워 보인다. 어제의 진화의 성공이 내일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늘 변화해가는 적합도 지형에서 산꼭대기로 오르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여정이 생명의 진화다.

우리 모두가 고통을 겪는 중에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이가 연이어 일어났다. 각각의 변이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유전형을 조금씩 바꾸며 적합도 지형 위를 여행한다. 적합도 지형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현 단계의 잠정적인 승자가 바로 오미크론 변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변이가 앞으로의 경쟁에서 모든 코로나 변이의 최종 승자가 될지 미리 알기도 어렵다. 저 멀리 더 높은 산봉우리가 있을 수도 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과 보급, 집단 면역과 집단 감염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환경이 변하면 적합도 지형도 바뀐다. 계속 변하는 적합도 지형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과정을 묵묵히 이어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인간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라보는 적합도 지형을 이루는 풍경의 일부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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