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있을까, 없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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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는 있을까, 없을까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1.12.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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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크리스마스에 얽힌 추억이 많다.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은 내가 어려서 해마다 성탄절 산타 선물을 거르지 않으셨다. 산타가 정말 있다고 믿었던 날은 길지 않았고, 알고 나서도 한동안 짐짓 모른 체하기도 했지만, 어려서 선물을 받고 기뻐했던 추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깨어 있으면 산타가 오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협박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크리스마스이브 늦은 밤 졸린 눈을 뜨면, 거짓말처럼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인 산타 선물을 볼 수 있었다. 산타가 남긴 카드에는 “올해는 불경기라...”는 글귀가 자주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선물이 기대보다 못하다고 실망한 기억도 전혀 없다. 정말 갖고 싶었던 장난감 선물도 가끔 받았지만, 공책과 연필 몇 자루만으로도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얘기를 하신 기억도 없고, 부모님 모두 성당에 다니시기는 했지만 산타 선물에 굳이 종교적인 색채를 입히지도 않으셨다. 산타가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는 나이에 이른 형들은 부모님의 산타 음모에 가담해 동생들의 추억이 한 해라도 더 지속되도록 부모님과 함께 애썼고, 막내 여동생마저 결국 산타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게 되고서야 매년 어김없이 오던 산타는 우리 집 방문을 멈췄다.

산타 카드의 손 글씨를 아버지의 글씨체와 세심히 비교해 볼 정도로 아이들의 의심이 싹트는 것을 보시고는, 친척 분에게 대신 카드를 써달라고 어머니가 부탁하시기도 했다. 아무리 애쓰셔도 결국 그날은 오고야 말았지만. 없는데 있다고 하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을 위해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서 매년 발걸음을 조심하셨을 부모님이 눈물 나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려서의 추억이 참 좋았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는 아내와 나도 물론 산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산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이들보다 부모가 그날 더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 어린 둘째가 내 손을 잡아끌며 자기가 받은 선물을 자랑하는 동영상이 남아있다. “아빠, 아빠”하며 그 다음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흥분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면 지금도 입가에 큰 미소가 번진다. 선물포장을 열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을 내 부모님의 표정도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내 아이들의 의심이 싹트기 시작할 즈음에, 산타 할아버지 드시라고 팝콘을 그릇에 담아 크리스마스트리 옆에 둔 적이 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팝콘 몇 개를 베란다 창문 쪽으로 한 줄로 죽 이어 떨어뜨렸다. 잠 깬 아이들은 산타가 팝콘을 드시고 갔다고 환호하고, 그래서 또 그 해는 무사히. 결국, 아이들이 내 연구실에서 산타 선물 포장지를 발견하고 나서야 우리 집 산타도 크리스마스 연례 방문을 멈췄다. 아, 포장지를 잘 숨겨놓았다면 그래도 한해는 더 이어갈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산타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된 해부터는 가족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이브 집안 풍경이 바뀌었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건강히 살아계실 때에는 자식내외와 손주들까지 모두 모여 함께 선물포장을 열며 떠들썩하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필자의 두 아이는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가재를 자주 먹던 그곳의 경험 때문인 듯, 우리나라에 돌아온 뒤 크리스마스이브 우리 집 저녁식사 메뉴는 어쩌다 매년 바닷가재가 되었다. 우리 가족이 일 년에 딱 한번 바다가재를 먹는 날이다. 식사 후에는 각자 다른 가족에게 주는 크리스마스카드가 하나씩 붙어있는 선물 포장을 차례로 함께 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다. “아빠 혹시 갖고 싶은 것 없어?” 직접 혹은 다른 가족에게 묻는 선물 탐색전이 한 달 정도 이어진다. 산타는 더 이상 오지 않지만, 그래도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받은 마지막 산타 선물은 지금도 연구실 책상 서랍 구석에 놓여있는 군용 나침반이다. 어디에 있든 내가 향한 방향을 알려주어 한동안 늘 가지고 다녔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산타야 있든 없든, 산타 선물에 얽힌 소중한 추억은 분명히 내 맘 깊이 있다. 세상일에 지치고 힘들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날 때, 내 평생 마지막 산타 선물을 가만히 손 안에 쥐어본다. 나침반이 향한 곳에 포근한 어린 날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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