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코끼리에게서 얻는 ‘성비’의 과학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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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코끼리에게서 얻는 ‘성비’의 과학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2.04.1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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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 /사진=픽사베이
아담과 이브. /사진=픽사베이

진화 생물학에 ‘피셔의 원리’(Fisher’s principle)라는 이론이 있다. 부모가 자식세대의 암컷과 수컷에 투자하는 양육의 비용이 같다고 가정하면 결국 암수의 성비가 1:1로 수렴한다는 이론이다. 자연에는 하나의 수컷이 많은 암컷과 교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종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바다코끼리의 한 집단은 한 마리의 수컷과 100마리 정도의 가임기 암컷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집단의 암수비율이 극도로 편향되어 있는 동물들도, 태어나는 새끼의 암수 비율은 1:1에 가깝게 수렴한다는 것이 피셔의 원리가 알려주는 신기하지만 자명한 결과다.

바다코끼리 한 집단의 암컷 입장에서 자식 세대의 성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유리할지 생각해보자. 언뜻 생각하면 암컷 새끼만을 낳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수컷 새끼를 낳아봤자 다른 수컷과의 경쟁을 모두 이기고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게 될 가능성이 적으니 암컷 새끼를 낳는 것이 더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암컷 새끼만을 낳는 상황에서는 수컷 새끼를 낳는 것이 유리하다. 이 수컷 새끼는 수많은 손자손녀 바다코끼리를 할머니 바다코끼리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를 구체적인 숫자로 해보자. 만약 바다코끼리 암컷 각각이 2:1의 비율로 암컷과 수컷 새끼를 낳는다고 해보자. 이 경우 집단 안에서 태어나는 전체 암컷과 수컷 새끼의 숫자를, 예를 들어 각각 20마리와 10마리라고 해보자. 2:1의 암수 비율로 새끼들이 태어난다고 가정한 결과다. 자, 그 다음 세대에는 모두 40마리의 자손이 태어난다고 또 가정해 보자. 그리고는 이들 40마리 자손 세대의 부모 세대를 보자. 먼저, 수컷 10마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40마리의 자손이 10마리의 수컷에게서 태어났으므로 수컷 한 마리는 40/10, 평균 4마리의 자손을 가진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암컷은 평균 40/20 = 2마리의 자손을 가지게 된다. 결국 처음 할머니 세대의 암컷 바다코끼리는 자식으로 수컷을 낳는 것이 더 유리하다. 수컷 자식에게서 더 많은 손자손녀 바다코끼리가 태어난다.

진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손의 숫자라서, 위의 과정이 진행되면 처음 2:1의 암수비율이 변하게 된다. 수컷을 낳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2:1의 암수 비율에서 암컷에 해당하는 2는 점점 줄고 수컷에 해당하는 1은 점점 늘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암수 비율이 1:2로 역전될 수도 없다. 위의 논의를 또 그대로 따라하면 암컷 10마리와 수컷 20마리가 낳은 자손 40마리에서 암컷은 한 마리당 4마리의 자손, 그리고 수컷은 한 마리당 2마리의 자손을 갖게 되고, 따라서 1:2의 암수비율에서는 거꾸로 암컷이 유리하게 된다. 1:2에서 시작하면 1은 늘고 2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의 과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1:1이 되는 것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암수의 비율이 된다. 15마리와 15마리의 암컷과 수컷이 만나 40마리의 자손을 낳고, 결국 암컷 한 마리의 평균 자손수와 수컷 한 마리의 평균 자손수가 40/15로 같아지는 상황이다. 암수비율 1:1의 상태에서, 암컷 쪽이 조금 늘면 다음에는 거꾸로 수컷 쪽이 조금 늘어나는 방향으로, 수컷 쪽이 조금 늘면 다음에는 거꾸로 암컷 쪽이 늘어드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된다. 암수비율 1:1의 상황이 어쩌다 깨지더라도, 결국 1:1의 균형 상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뜻이어서, 암수 성비의 균형은 1:1에서 이루어진다. 바로, 피셔의 원리다. 결과에 이르는 논의의 방법과 구조가 게임 이론의 방식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피셔의 원리가 알려주는 1:1의 암수 비율은 게임이론의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이다.

위의 논의에서 평균 자손수를 이용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암수 1:1로 균형을 이루면 수컷 한 마리의 평균 자손수와 암컷 한 마리의 평균 자손수가 같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컷이 같은 숫자의 자손을 가진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약 100:1의 암수 비율로 구성된 바다코끼리집단에서도 모든 암컷은 1:1의 암수 비율로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 피셔의 원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많은 수컷 중 자손을 남기는 수컷은 극히 소수다. 할머니 암컷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낳은 자식 수컷이, 많은 암컷으로 이루어진 큰 집단에서 많은 손자손녀를 남기는 아빠 수컷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 확률은 1/100로 무척 작다. 그래도 만약 희망이 이루어지면 엄청난 숫자의 손자손녀의 할머니가 될 수 있다. 한 번의 번식기가 지나면, 자신이 낳은 수컷 한 마리는 1/100의 확률로 100마리 손자손녀의 아빠가 되고, 자신이 낳은 암컷 한 마리는 거의 1의 확률로 딱 1마리 손자손녀의 엄마가 된다. 100X(1/100) = 1X1로 자신이 낳은 암컷, 수컷 자식 한 마리에게서 각각 기대하는 손자손녀의 숫자가 같을 뿐이다. 바다코끼리 암컷이 수컷 새끼를 낳는 것이 고위험/고소득 투자라면, 암컷 새끼를 낳는 것은 저위험/저소득 투자에 가깝다. 양육 투자로 얻을 손자 세대의 평균 개체 수는 암컷 새끼를 낳든, 수컷 새끼를 낳든 같지만 말이다.

위의 얘기는 무척 단순화한 상황을 다뤘다. 만약 암컷 새끼와 수컷 새끼가 가임기에 도달할 때까지 부모 세대가 지불할 양육의 비용이 다르다면, 피셔 원리의 암수 균형은 1:1이 아닌 다른 비율에서 이루어진다. 또, 만약 가임기까지 생존할 확률이 암수가 다르다면, 태어날 때의 성비는 1:1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인간이 그렇다. 태어날 때에는 남자아기가 여자아기보다 좀 더 많지만, 남녀의 성비 균형은 이후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1:1로 다가서게 된다. 어린 남자 아이의 평균 사망률이 어린 여자 아이의 평균 사망률보다 약간 더 높기 때문이다. 일부일처로 평생을 살아가는 동물 종이나, 일부백처, 백부일처로 살아가는 동물 종이나, 군집내의 암수 비율은 거의 1:1인 경우가 많다. 진화의 원리와 게임이론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피셔 원리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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