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물질과 반중력 [김범준의 세상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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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물질과 반중력 [김범준의 세상물정]
  • 김범준 편집위원(성균관대 교수)
  • 승인 2023.10.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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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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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모든 것들은 결국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세상 만물이 마찬가지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자 중 가장 작은 것이 수소 원자다. 수소 원자는 양의 전하량을 가진 양성자와 음의 전하량을 가진 전자로 이루어져 있고, 양성자는 다시 세 개의 쿼크로 구성되어 있다.

1928년 물리학자 폴 디랙은 양자역학의 파동 방정식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에 맞게 수정 보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이 방정식에는 전자와 반대의 성질을 가진 입자의 가능성이 담겨있었다. 전자의 전하량이 마이너스이니 이 새로운 입자의 전하량은 플러스다. 디랙 방정식이 보여주는 전자와 짝을 이룬 입자가 과연 무엇인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바로 그 오펜하이머다. 디랙은 자신의 이론이 예측한 양의 전하를 가진 입자로 당시에도 잘 알려져 있던 양성자를 떠올렸지만, 오펜하이머는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다. 결국 1932년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우주선(宇宙線)에서 질량은 전자와 같고 전하는 반대인 입자를 칼 앤더슨이 찾아내게 된다. 우리가 양전자(positron)라고 부르는 전자의 반(反, anti)입자다. 전자뿐 아니라 다른 입자들도 자신과 짝을 이루는 반입자를 갖는다. 쿼크의 반입자는 반쿼크(antiquark)이고, 양성자의 반입자는 반양성자(antiproton)다. 양성자와 전자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도 반입자가 있다. 반양성자와 양전자로 만들어지는 반수소(antihydrogen) 원자다. 전자의 경우에만 다른 반입자보다 먼저 이름이 붙여졌다는 단순한 역사적 우연으로 반전자(antielectron)가 아닌 양전자(positron)라고 부른다. 양전자가 반전자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따르면 질량이 곧 에너지다. 질량을 가진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둘이 함께 소멸하면서 질량이 0인 빛의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반입자가 어떤 이유로든 존재해도, 이 반입자는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주변의 입자와 만나 에너지를 방출하며 곧 사라져버린다. 1945년 일본에 투하되어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낸 핵폭탄은 핵반응 전후의 질량 차이가 딱 0.7g에 불과했다. 이렇게 작은 질량만이 에너지로 변했는데도 엄청난 사상자가 생겼다. 만약 누군가가 상당한 분량의 반물질을 모아 저장해놓고 있다가 주변의 물질과 반응하도록 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SF 소설과 영화에서 간혹 다뤄지는 반물질 폭탄의 이론적인 작동 원리다. 하지만 현실에서 반물질 폭탄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반물질을 아주 소량이라도 만들어내면, 이 반물질이 담겨있는 용기 벽의 물질과 반응해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물질을 이용해 반중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모든 물질은 지구의 중력장 안에서 아래로 떨어지니 어쩌면 반물질은 거꾸로 위로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다. 사실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아무리 반물질이라도 지구의 중력에 대해서는 보통의 물질과 같은 방향의 힘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 근거가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의 등가원리(equivalence principle)다.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같은 것이어서 입자와 관성질량이 같은 반입자도 중력장 안에서 같은 크기의 힘을 같은 방향으로 받는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예상이다.

무거운 질량을 가진 물체가 공간에 중력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뉴턴의 보편중력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다른 방식으로 중력을 설명한다. 무거운 물체가 주변의 시공간을 구부리면 이렇게 휘어진 시공간 안에서 모든 물체는 가능한 가장 짧은 경로로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아래 방향의 중력이 작용해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뉴턴이 말할 때, 지구가 만들어낸 휘어진 시공간 안에서 사과는 그냥 가능한 짧은 경로로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속삭인다.

물질이나 반물질이나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으로 대부분 물리학자가 믿고 있었지만, 정말로 반입자가 지구 중력장 안에서 보통의 입자처럼 아래로 힘을 받아 떨어지는지를 실험으로 확인하는 것은 그동안 쉽지 않았다.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출판된 연구(DOI:10.1038/s41586-023-06527-1)가 다룬 문제가 정확히 이 주제다. 논문의 연구자들은 먼저 양전자와 반양성자를 별도로 만들어내어서 수직 방향으로 세워진 원통 모양의 용기 안에 주입했다. 각각 수백만 개의 반양성자와 양전자가 용기 안에 들어오면 이들 중 일부는 모여서 반수소가 된다. 용기를 둘러싼 여러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적절한 공간 분포를 가진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논문의 연구자들은 백여 개 정도의 반수소 입자를 용기 안에 가둘 수 있었다. 다음에는 외부에서 반수소를 수직 방향으로 가두고 있는 자기장을 0으로 했다. 만약 반수소가 지구의 중력장에서 보통의 수소와 달리 아래가 아닌 위 방향의 중력을 느낀다면 용기의 위쪽으로 더 많은 반수소가 이동하고, 만약 아래 방향의 중력을 느낀다면 아래로 이동하는 반수소 입자가 더 많아진다. 용기의 중심 부분에서 운동을 시작한 반수소는 용기의 벽과 같은 주변의 물질과 만나 쌍소멸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이 신호를 검출해 위와 아래 방향 중 반수소가 어느 방향으로 주로 움직였는지를 측정할 수 있다.

논문에서는 위보다 아래로 이동한 반수소가 유의미하게 더 많다는 결과를 명확히 얻었다. 결국 물질과 반물질은 같은 방향의 중력을 느낀다는 결론이다. 많은 물리학자가 예상했던 당연한 결과지만, 직접 실험을 통해서 지구 중력장 안에서 반물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명확히 측정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연구다. 물질이나 반물질이나, 사과나 반사과나, 아래로 똑같이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반물질 폭탄은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이론적 상상이지만, 반물질로 반중력을 구현해 물체를 공중에 띄우는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물질은 반중력 물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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