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산업 활성화의 ‘정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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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산업 활성화의 ‘정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9.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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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최근 금융위원회는 공모 펀드 활성화 조치를 발표했다. 새로운 제도는 지난달 30일부터 시행했는데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칼럼에서는 새로운 공모 펀드 제도 개편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얼핏 보기에는 단편적인 제도 개선 조치로 보이는데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좀 더 크고 근본적인 측면에서 설명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로 ‘자산관리’가 있다. 일반인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ISA를 통해 자주 들었을 것이다. ISA는 ‘Individual Savings Account’라는 영어 약자인데, 그대로 해석하면 개인저축계좌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저축이란 경제학에서는 소득 중 소비하지 않은 부분이며, 금융산업에서 상품명에 사용할 때는 미래 소비를 위해 금전 등을 축적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소비임치’(消費任置)하는 민법 개념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서의 자산관리는 금융소비자보다는 금융상품 공급자의 행위를 중심으로 개념을 도입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자산관리는 영어로는 ‘Asset Management’다. 이 개념은 분산투자 이론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론 틀에서는 예금부터 주식, 실물까지 모든 시장가치가 있고 거래 가능한 모든 자산이 자산관리 대상이 된다. 필자는 펀드 산업에 1988년 발을 들였는데, 한국의 펀드 산업은 일본의 투자신탁 제도를 도입했다. 자연히 업무에 참고를 위해 일본 펀드 산업 서적을 보면서 자산관리라는 용어를 자주 보았는데, 간단한 두 단어로 이뤄진 용어지만 그 개념은 만만치 않다. 필자가 정의하는 자산관리란 개인 또는 법인이 소득 또는 누적한 자본의 가치를 유지하거나 증식(보존 또는 보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가치의 유지에는 금리, 인플레이션, 위험 프리미엄 등 가치를 변동하는 시장 경제의 요인으로부터 보호(protect)하는 것과 경제적 기회비용을 보전하고 시간가치 이상을 증식하는 행위다. 특히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산관리는 행위자의 책임에 의한 적극적 의사와 능동적 행위가 중요하다. 이렇게 자산관리는 저축보다는 투자(investment)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금융위가 활성화하려는 공모 펀드는 사모펀드와 같이 자산관리의 중요 수단이다. 그래서인지 펀드 명칭에는 투자신탁(Investment Trust), 투자회사(Investment company)처럼 ‘투자’가 상품명에 붙어있다. 국내에서 2000년 공공적 성격의 펀드 산업이 공중 분해되기 이전에, 펀드는 대다수 국민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금융시장에서 유일한 자산관리 수단이었다. 그러나 2022년 현재 펀드는 2000년 이전의 펀드와는 금융시장의 위상과 목적이 판연하게 달라졌다.

/자료1=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자료1=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오늘날 펀드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때마침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8월 주요국의 가계 금융자산을 비교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자산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상은 부동산, 실물자산, 금융자산 등 다양하며, 이용 비중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국가마다 시대마다 다르다. 자료1에서 보는 것처럼 뉴욕, 런던, 동경 등 세계적 금융시장이 위치한 미국(72%), 영국(54%), 일본(63%)은 가계 자산의 금융자산 비중이 한국(36%)보다 높다. 이 수치가 형성한 배경에 대한 필자의 해석은 이렇다.

뉴욕과 런던 금융시장은 1980년 이후 40여 년 동안 금융 자유화, 금융 증권화 그리고 금융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른바 미국, 영국은 다국적 금융회사를 신자유주의경제의 첨병으로 키우면서 금융산업에서 상상도 못 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그 원동력에 두 가지 묘수가 있었다. 달러가 금 태환을 금지하며 기축 통화 지위를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미국이 취한 첫째 조치는 중동 석유 시장의 기본 거래 통화로 달러를 지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음 미국이 선택한 조치는 뉴욕 금융시장에 옵션 등 파생 금융상품을 도입했다. 당시 옵션의 가격 공식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후 미국은 재빨리 상품성을 알아봤다. 세계 금융시장은 새로운 헤지와 투기 수단의 탄생으로 급성장했으며 파생상품 금융시장은 현물 가치 대비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레버리지를 키워 금융의 부가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상품을 통한 자산관리에 관심 두는 투자자의 확충이 필요했다. 당연히 금융산업 육성은 국가의 역점이자 국민 자산관리의 핵심이었다.

/자료2=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자료2=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그러면 가계 금융자산에서 펀드의 위상은 어떠할까? 자료2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은 금융투자상품(58%), 일본은 현금·예금(54.2%), 영국은 보험·연금(53%)으로 금융자산 비중이 함께 높은 국가이더라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구조적 차이가 있다. 한국은 금융투자 비중이 미국의 절반 이하 수준이지만 일본과 영국보다는 높다. 반면 금융자산에서 펀드 비중은 미국 16%, 일본 4.5%, 영국 4.3%였으나 한국은 2.3%로 현저히 낮았다.

/자료3=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자료에서 재구성
/자료3=금융투자협회 ‘2022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 자료에서 재구성

2016년 이후 펀드 비중의 추이는 미국과 일본은 상승세였고 영국은 정체였으나 한국은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폭의 금융 변동성을 보인 이후 미국, 영국, 일본은 비중이 크게 높아졌으나 한국은 감소세를 계속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커다란 금융 변동성이 닥친 후 왜 한국 금융소비자는 펀드 산업을 외면했을까?

/자료4=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 통계’ 자료로 차트 작성
/자료4=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 통계’ 자료로 차트 작성

지난해 말 한국 펀드 시장 규모는 829조원이며, 사모펀드가 62%, 공모 펀드가 38%를 차지한다. 공모 펀드에서 단기금융 상품 MMF를 제외하면 공모 펀드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직전인 2017년 70%에 육박했던 공모 펀드 비중(MMF 제외 비중 55%)은 이후 침체의 길을 걸었다. 1998년 도입한 후 큰 인기를 끌지 못했던 사모펀드는 2011년 전문 투자형 사모펀드 도입, 2015년 경영 참여형·전문 투자형 개선 이후 급성장했고 이후 공모 펀드를 앞지르며 펀드 시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2019년 이후 일부 사모펀드의 불공정 판매, 부당 영업행위 등 극단적인 도덕적해이가 드러나며 다시 한번 펀드 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사모펀드 규제를 대대적으로 강화한 이후 올해 8월 공모 펀드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했다. 이번 공모 펀드 활성화의 주요 내용은 ▲공모 펀드 수익률 제고를 위해 자산운용사의 종잣돈 투자, 성과연동형 운용 보수를 도입하며 ▲장기 비활성 펀드의 투자전략 변경을 간소화하는 등 공모 펀드 설정·운용 효율성 및 투자자 접근성을 높이고 ▲외화표시 MMF 등 수요자가 원하는 새로운 공모 펀드 도입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사례와 자료에서 확인한 것처럼 국내 금융시장에서 펀드 산업 육성은 금융산업과 금융소비자 모두에게 시급하지만, 사모펀드로 성장을 유지하던 펀드 시장이 해외금리 연계 DLF, 옵티머스 펀드, 라임 펀드 등 다양한 대형 금융 사고로 사모펀드의 신뢰가 약화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다시 공모 펀드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모 펀드에 금융소비자가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노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흑묘백묘론 시각의 해결책으로는 사태 해결이 어렵다. 금융당국이 2000년 이후 대한·한국·국민투자신탁을 증권과 운용회사로 해체하고 은행, 증권 등 민간 금융회사에 펀드 산업을 넘긴 후 펀드 산업은 이익 경영에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기존에 전업 투자신탁회사 중심의 공공성이 강한 펀드 산업 체제에서 안정적 자산관리 수단으로 펀드 서비스를 경험한 펀드 소비자는 2000년 이후 펀드의 신뢰를 잃고 떠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대체할 사모펀드를 금융당국이 육성했으나 금융규제가 최소화한 환경에서 고삐가 풀린 일부 사모펀드 생산자, 판매자는 회사 또는 주주의 이익 극대화 경영에 사모펀드를 이용하고 말았다.

펀드 산업의 신뢰성 상실은 한마디로 모럴, 공공성 문제다. 그래서 펀드 운용자와 소비자의 편의를 개선하는 제도 개편으로 금융소비자의 신뢰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펀드 본래 목적은 불특정 다수의 자금을 집합하고 집합한 자금이 생산하는 정보력과 거래 우월성에 기반하여 투자이익을 생산하며 이 과실을 공평하게 지분율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펀드 정의를 듣는 누구나 떠올리는 것은 아마 이익 극대화보다는 공공성일 것이다. 금융당국이 명심했으면 하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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