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 무시해도 별 탈 없을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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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그플레이션’ 무시해도 별 탈 없을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8.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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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요즘 농산물 가격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잦아졌다. 농산물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상품’(commodity)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 곧 식량이다. 선진국 금융시장에서는 농산물을 선물, 옵션 등 금융 상품화해서 거래소에서 사고판다. 즉 농산물은 어떤 사람에게는 투기의 대상인 것이다. 같은 재화를 놓고 경제적 지위에 따라 이해가 첨예하게 달라지며 재화에 대한 수요의 행태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사례다. 수급과 가격이 안정적일 때에는 농산물은 경제적 문제이지만, 불안정할 때는 사회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안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구조의 원리상 부자는 극소수이고 빈자는 다수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 민주주의는 1인 1표 원칙을 고수하므로 식량 안보는 정치,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므로 정권에게 농산물 가격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농산물 가격 상승과 연관하여 최근 집중 조명하는 용어가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다. 이것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초래하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보통 물가 측정에 자주 등장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기준시점의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품목 458개 가격을 대상으로 산출하며, 이 품목에서 에너지 품목과 함께 농산물을 제외한 물가지수를 핵심(core) 소비자물가지수로 구분하여 물가 동향을 관리한다. 농산물을 별도로 구분하는 것은, 농산물이 국민경제에서 중요성이 경미해서가 아니라 날씨, 기후 등 계절적 요인으로 농산물 가격 변동이 심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 농산물산업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고 외신과 주요 경제감시 기구에서 자주 지적하고 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을 어디는 애그플레이션이라고 하고, 어디는 식량 위기(food crisis)라고 한다. 농산물산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자료=골드만삭스
/자료=골드만삭스

유엔 식량기구 FAO가 발표하는 ‘세계식량지수’(Food Price Index)는 7월 평균 141 수준이었다.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발표하는데,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1월에는 100 수준이었고, 올해 5월 160 수준까지 치솟았다가 최근까지 하락했다. 2월 우크라이나사태로 인한 일시적 급등세 이후 농산물은 최근 하락세를 보였으나, 식량 가격은 2020년 이후 여전히 40% 이상 상승했다. 지구촌에 애그플레이션이 닥친다는 보고서는 주로 5월 무렵에 출현했는데, 지정학적 충돌에 의한 일시적 농산물 가격 상승 외에도 이상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이행에 따른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면서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세는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월 21일 발표한 ‘최근 애그플레이션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식량 수급 불안이 발생한 원인 중 눈여겨볼 것은 이상 기후와 이에 따른 식량 안보 목적의 농산물 수출 규제다. 올해 2월 세계 1위 밀 생산국인 러시아가 4위 생산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인도가 밀과 설탕의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 터키, 말레이시가 등도 팜유, 해바라기씨유, 식용유, 닭고기 등등 주요 농산물 수출을 금지하자 국제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은 광범위한 파급 경로를 거쳐 국내 물가에 파급한다. 수입 곡물 가격 상승은 제분, 전분, 사료 등 1차 가공식품 가격을 올리고 2차로 가공식품과 농수축산물 가격을 올리며 최종적으로 외식과 의약품, 화장품, 기초 생필품의 원료인 화학 제품 가격을 올린다. 한국은행은 가공식품 및 외식 가격은 일단 오르면 잘 내리기 어려운 하방 경직성이 있어 물가 오름세는 장기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통계청
/자료=통계청

우리나라 경제도 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 잠깐 주춤했으나 7월까지 7개월 연속 상승 중으로 7월은 전년 동월 대비 6.3% 상승을 기록했다.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5%였고, 소비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으로만 측정한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 7.9% 상승했다. 생활물가지수 중 식품 부문은 전년 동월 대비 8.8%였고 생선·해산물,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지수는 13%, 신선 채소만 떼어 보면 26%였다. 신선채소는 7월에 전월 대비 무료 17%나 올라 폭등이라는 단어가 적합했다. 이미 국내 서민 밥상에는 애그플레이션이 차려지고 있다.

대통령 국정 수행에 관한 여론조사 부정 평가에 물가 문제가 등장할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인플레이션이 경제적 취약 계층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애그플레이션일 때 그 양상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분기 기준 소득 하위 20% 가구는 가처분 소득의 42.7%를 식료품과 외식비에 지출했고 소득 상위 20% 가구는 13.2%였다고 연합뉴스가 집계했다. 지난달과 같은 신선식품 가격 상승이 몇 개월 이어지면 소득 하위 20% 계층은 양질의 영양을 공급받기 힘들고 건강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이것도 정치 공세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 전 정부 때려잡기로 민심을 잡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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