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의 ‘금융안정계정’과 관치의 트라우마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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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의 ‘금융안정계정’과 관치의 트라우마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8.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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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필자는 자랑스럽던 금융회사에 젊은 시절 청춘을 걸고 첫 입사해서 정치권과 당시 그 하수인 역할을 하는 금융 공무원들에게 회사가 휘둘려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히 경험했다. 1988년 12월 12일 정부가 시중은행으로부터 2조7000억원을 차입해 무제한 주식을 매입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 원인이 되어 회사는 경영 부실화를 초래했고, 1992년 한국은행의 무제한 특별융자로 전환했다가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 관리로 넘어갔다.

최초 지시를 받던 시기에도, 예보 공적자금 관리 시기에도 필자는 현장에 있었다. 정치적 의도가 담긴 금융정책의 결과는 참혹했다. 12·12 조치로 공공성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육성하고 떠받치던 3개 투자신탁회사가 빚더미 위에 올라섰다. 수천 명의 직원들이 부실 금융회사라는 불명예를 떠안았고 공적자금회수라는 이름 아래 회사는 팔려나갔다. 펀드로 건전하게 성장하던 자산관리 시장은 뿌리 채 뽑혀서 늘 그 시장을 탐내던 다른 금융회사에 헐값에 넘어갔다. 공공 금융으로의 가치가 사라진 펀드 시장의 결과는 공모펀드의 위축과 사모펀드의 성행, 그리고 불공정 판매 등 뻔뻔한 금융업 작태의 횡행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증명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나라 잃은 망국민 같은 설움을 받으며 금융정책에 대한 신뢰는 옅어지고 의심은 커졌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금융정책을 보는 필자의 심정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2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과거 금융위 행태를 보면 금융정책의 시행을 앞두고 여론전을 펼치기 위해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고는 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의 경제·금융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통화 긴축, 지정학적 갈등과 공급망 교란 등으로 불확실성이 확대하는 복합적 위기 국면이라고 규정했다. 10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국제금융센터가 글로벌 리스크에 대한 안건을 발제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대부분은 알기 쉬운 얘기였으나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의 발표 내용이었다. 가계·자영업 부채, 부동산 금융 등의 경제 취약부문 리스크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할 수 있고 이에 대비해 금융기관 손실 흡수 능력도 선제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담회 다음날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부실 예방을 위한 금융안정계정 도입 안을 발표했다. 현 정부가 서둘러 시끄러움을 자초한 다른 정책 추진 양상으로 볼 때, 이처럼 빠른 정부의 속도전이 이상한 것은 없다. 필자도 금융안정기금 정도로 생각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몇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자료=금융위원회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는 비은행 부문 성장, 금융산업 연계성 심화, 예측할 수 없는 실물 부문 충격 등 금융환경 변화로 특정 부문 위기가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할 우려가 증가하기 때문에, 일시적 곤란에 처한 금융권에 적기에 유동성 공급과 자본 확충을 지원할 장치로 금융안정계정을 도입한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TARP(Troubled Asset Relief Program), TLGP(Temporary Liquidity Guarantee Program)라는 프로그램으로 금융기관의 선제적 구제를 시작했고 일본·유럽에서도 2014년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금융안정계정은 예금보험공사의 별도 계정으로 설치하고, 보험료로 재원을 충당하며 금융위원회 결정에 따라 금융회사 신청으로 예금보험공사가 집행하는 형태다. 특히 국민 부담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 출연, 정부 보증 채권 발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하기 위해 이번 달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시발점이 금융회사다. 금융 세계화로 금융시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며 금융회사 경영진의 일확천금 경연장으로 바뀌자 금융회사는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세계의 안전자산 역할을 하던 미국 금융시장은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금융회사의 사기극을 연출했고, 그 결과가 금융위기라는 비극이다. 내부에서 금융회사가 위험을 제조한 것이지, 외부 금융환경 변화가 원인이 아니었다. 또한 금융회사는 위험을 다루는 비즈니스다.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금융회사라면 외부 환경 변화가 재무적 어려움은 줄 수 있지만 어지간한 충격을 견디도록 자율적으로 조정한다.

따라서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처럼 불량한 가치관을 가진 경영진이 지배하는 금융회사가 과도한 위험투자 등 내부로부터 은폐한 위험이 커질 경우다. 미국도 금융안정이라는 볼모에 잡혀 위기를 생성한 장본인인 금융회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지원을 놓고 갑론을박하며 반금융 정서가 팽배했다. 한편 국내 금융 그룹은 사모펀드 등 초대형 금융사고를 초래하고도 각종 법 기술에 기대어 법적 면피를 받으며 회장, 은행장 등 경영진이 자리를 지켜가는, 보기에도 낯부끄러운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금융회사에 사적 이익에 치우친 금융회사를 위해 선제적 경영 방어 장치를 해주자는 금융위 주장은 정권과 금융의 끈끈한 유대, ‘가재는 게 편’이라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렵다.

또한 왜 하필 지금 금융안정계정을 도입하는 것일까? 어쩌면 금융안정계정의 도입 효과는 엉뚱한 부작용이 더 금융시장에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질문에 필자가 최초 상기도 항목에 기입할 것은 다름 아닌 금융산업의 정부 지배력 강화다. 지난 정부까지 일부 금융지주와 금융감독원의 충돌이 심심찮았다. 정부 각 요직에 검사 출신을 배치하며 통제를 강화하는 현 정부 통치 스타일에 이런 체면 구기는 상황을 용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금융안정계정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선제적으로 금융위가 긴급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은 반대로 금융회사에는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금융회사의 법적, 업무감독 통제에다가 위기 상황에서의 자금 공급 통제권을 추가하는 것은 완벽한 금융회사 통제를 의미한다.

또한 재정부담 없이 수익자인 금융회사에 보험료로 부담하겠다는 것이지만 결국 보험료는 금융회사의 비용에 반영되는 것이므로 보험료 증가가 금융회사 이용자 부담으로 전가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현행 예금보험료가 예금자 보호를 위해 사후 금융회사 위험을 담보하는 것이라면 금융안정계정은 거의 같은 규모 또는 적용 범위에 따라서는 기존 예금보험이 비적용 하던 위험까지 포괄하는 더 큰 규모의 금융회사 위험을 담보하는 새로운 예금(실제로 금융회사)보험이 탄생하는 것과 같다. 이 큰 비용을 금융회사가 경영진이나 직원 월급에서 부담할 리는 없고 당연히 예금자에게 금융회사는 전가할 것이고 결국은 국민 부담으로 금융회사 위험을 보증하는 효과로 귀결될 것이다. 재정부담이 없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이 금융 구조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거의 전 국민 준조세가 생기는 꼴이다. 입법부터 운영까지 금융안정계정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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