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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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9.05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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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론스타가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2012년 제기한 국제 투자 분쟁이 지난달,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부와 투자자 사이의 중재 사건을 감독하는 세계은행 산하 투자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 ICSID)가 최종 선고를 내린 것이다. 법무부가 이의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하겠다지만 미덥지는 않다.

주요 판정 내용은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한국에서의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켜 손실을 입혔으므로 총 46억8000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ICSID는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1조4000억원에 사서 하나금융에 3조9000억원에 팔았다. 그뿐만 아니라 장외에서도 7400억원어치를 사서 1조2000억원에 팔았으니 총 매각 차익은 2조9500억 원이었다. 여기에 외환은행 소유 기간 배당금으로 1조7100억원을 받아 갔다. 결국 외환은행에서 발생한 투자수익은 4조6600억원이며 투하자본 대비 총 수익률은 216%에 이른다.

다만 최초 투자 시기부터 하나은행에 매각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으니 단순 연평균 수익률은 21%이며, 이 수익률은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위험을 감수한 벌처펀드 론스타에는 그리 성공작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ISDS 배상으로 회수한 수익은 약 3000억원, 투하자본 수익률로는 약 14%를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특히 이마저도 19년 만에 보탠 것이니 연평균 수익률은 극히 미미하다. 론스타가 불만족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론스타 사건 관련 일지.
론스타 사건 관련 일지.

론스타와 우리 정부의 악연은 2003년부터 시작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기업 부실이 증가하며 외환은행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자 정부는 매각을 추진했다. 론스타는 2003년 약 12억달러에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이 같은 매각 과정에서 외환은행의 손실을 최대한 부풀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 이하의 부실 금융기관으로 만들고 매각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는 ‘헐값 매각’과 합병 과정에서 ‘외환카드 주가 조작’이 문제가 되었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는 변양호, 추경호가 주관했다. 이후 론스타는 KB국민은행과 HSBC에 매각하려다 매수 당시의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주가 조작이 법적 문제가 되어 실패했다. 헐값 매각은 최종 무죄 판정을 받았으나 주가 조작은 유죄가 인정됐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담당 검찰팀이 현 정권을 잡은 윤석열, 한동훈 등이었다. 법적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이번에는 론스타의 금융기관 대주주 자격에 문제가 대두되었고, 금융위원회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결국 론스타는 2012년 약 35억달러에 외환은행을 하나은행에 매각할 수 있었다. 당시 김석동, 추경호, 김주현 등이 매각을 주도했고 이창용은 금융위 부위원장이었다.

ICSID 판정의 주요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이 2011년 발효했으므로 이전 행위는 중재 대상이 아니며, 론스타 청구는 기각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은행 매각 지연은 금융당국의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이나, 론스타도 주가 조작 유죄 판결 책임이 있으므로 50% 과실 부담이 당연하다는 지적이다. 주목할 것은 소득의 실질적 소득자에 대한 과세 쟁점인 ‘도관’(conduit) 이론을 채택하여 조세회피처에 대한 과세가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판정을 내린 점이다.

현재 ISDS(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 제도)는 한-미 FTA를 포함한 6개 FTA, 81개 투자보장협정에서 허용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부가 진행하는 ISD 사건은 론스타 포함 7건이다. ISDS는 금융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은행이 다국적 투자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장치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정부를 상대로 내국인과 비교해 공정·공평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추상적 규정은 남용될 소지가 있고, 공무원은 ISDS를 회피하기 위해 내국민 보호 정책에 소극적일 수 있는 ‘된서리 효과’(chilling effect)가 작동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론스타는 ISDS를 제기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우리 정부에 2008, 2009년 그리고 2012년 1월 17일 보냈는데, 마지막 편지 열흘 뒤인 2012년 1월 27일 금융당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 승인했다. 시민단체는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규명해 징벌적 매각명령을 내리자고 했으나, 이를 금융당국이 거부한 것은 ISDS 발동에 대한 부담감이었다는 추정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다소 무리한 산업자본 판단과 전격적인 매각 승인에도 론스타는 2012년 5월 22일 우리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접수하고 12월에 ICSID 중재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론스타는 ‘모피아’(재정·금융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어 일컫는 말)의 뒤통수를 쳤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수와 매각 과정에 의사결정을 한 금융 공무원(모피아)들은 지금까지 정당한 정책 판단이었다고 주장한다. 2003년 외환은행 매수 과정의 ‘헐값 매각’은 수많은 의혹과 추적에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론스타는 이처럼 오락가락한 금융당국의 의사결정을 빌미로 ISDS에서 더 뜯어 먹을 것이 확인되자 가차 없이 행동에 옮겼다. 특히 대한민국 최고 인재들인 모피아가 단체로 희롱당한 것은 의문이며, 그럴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나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한다. 구체적인 이유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법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알 수 없다. 단지 모피아가 대상이 아닌 외환은행 주가 조작만 검찰은 조사하고 처벌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불공정’에 대한 인간 행태를 분석하는 잘 알려진 실험이 있다.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실험인데, 실험에는 제안자와 응답자가 있다. 제안자가 응답자에게 실험용으로 제시된 100달러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줄 것을 제안한 뒤, 응답자가 제안을 받아들이면 비율대로 100달러를 분배하고 실험은 끝난다. 단 응답자가 제안을 거부하면 양쪽 모두 빈손으로 실험을 끝낸다. 실험의 관점은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얼마를 나눌 것이며 거부할 것인가, 즉 불공정에 대한 한계이다. 이 실험을 통해 ‘경제학을 배우면 이기적으로 된다’라는 연구 결과를 일본 경제학자 도모노 노리오가 그의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다.

경제학 전공자와 기타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기타 전공 학생은 49%를 나눠주겠다고 했으나, 경제학 전공자는 단 20%를 나눠 주겠다고 제안했다.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이면 이 경우 단 1달러를 주고받아도 무일푼보다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친다.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경제학 전공자는 제안 금액을 최소화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점에서 ‘공정’과 충돌한다. 추가적인 연구로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지난 1년간 전혀 기부하지 않았는지 설문 조사를 했는데, 역시 결과는 경제학자가 9.3%의 응답률로 최고였다. 음악, 교육 등 교수진은 1.1%로 최저였고, 기타 전공 교수들은 2.9~4.2%였다. 경제학을 아는 사람은 불공정을 신경 쓰지 않고 인색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금융산업에 벌어진 무자비한 최후통첩 게임의 사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그리고 ISDS 사건일 것이다. 시민사회는 참여자들의 공정을 10년 이상 지적하고 부르짖고 있지만, 론스타 최후통첩 게임의 당사자, 금융당국 등 관련자 등 누구 하나 꿈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경제적 효율을 위한 공정 희생의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이 사건 속 한국의 모피아는 공정에 대한 무감각은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는 않다. 그들은 부득이한 정책적 결정이었음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생계와 자아실현 수단인 금융시장을 지키겠다는 목적에 그들의 결정을 한정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ISDS 배상으로 시끄럽지만 지금 분명 우리 정부는 ‘론스타의 축복’(Lone Star’s Blessing)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론스타 사건에 관련된 사람은 잘되면 잘됐지, 잘못된 인물은 없고, 특히 현 정권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외국 자본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강하고 지나치게 국수주의적이라고 ISDS에 답변서를 제출한 원로 경제학자 한덕수는 국무총리에 있고,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에 참여한 모피아 경제학자 추경호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으며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위에 있던 김주현은 금융위원장, 이창용은 한국은행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또한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을 맡았던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되고 한동훈은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이 보이지 않게 이들을 엮어주는 사회적 인맥으로 작동한 것일까? 아울러 여러 가지 구설에 시달리고 있는 한동훈 장관에게 이번 ISDS 판정은 과거 그가 담당한 외환카드 주가 조작 기소가 ISDS 배상금액 축소에 이바지했다는 자랑거리로 이용할 카드로 보인다. 말머리에서 얘기한 것처럼 론스타는 이러한 국내 정치적 배경을 천금 같은 기회로 이용할 동기가 충분하다. ‘론스타의 저주’는 국민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며, 론스타와 어떤 이에게는 축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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