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모르는 사이, 돈의 혁명 ‘디지털 머니’가 온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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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모르는 사이, 돈의 혁명 ‘디지털 머니’가 온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10.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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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0과 1, 단순한 2진법이 만들어 내는 ‘디지털’(digital) 세계를 처음 필자가 현실에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1988년 금융회사에 입사해 16비트(bit) 워드프로세서와 PC, 개인용 컴퓨터에서 처음 대면했다. 그 이후 디지털은 무서운 속도로 필자 주변의 세상을 바꿔 나갔다.

1990년대 초 당시 필자는 홍보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는데 인쇄 산업 공정에 컴퓨터를 적용하면서 인쇄업계에 20여 년 종사하던 지인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현장을 목격했다. 단지 몇몇 인쇄 회사가 경영 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이 아니고 인쇄 공정 상당 부분을 컴퓨터가 완전히 대체하며, 그 공정을 맡아 북적이던 을지로 인쇄 골목은 1년도 채 안 돼 사라졌다. 그야말로 ‘부지불식’(不知不識),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0과 1, 이진법 세계는 인간과 화학적 결합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22년 지금, 현실 세계에서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문명을 제외하면 인간은 단 몇 시간도 생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자료1=IMF
/자료1=IMF

부지불식간 영향을 미치는 디지털의 파괴력은 금융에도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경고하듯 국제통화기금(IMF)이 국제금융과 경제에 관한 이슈를 게재하는 <F&D>(Finance & Development) 9월호 제목은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돈의 혁명’이었다. 소제목은 ‘암호화폐, 중앙은행 전자화폐 그리고 금융의 미래’였다. 또한 미국 재무부도 대통령 행정 명령으로 9월 <미래 화폐 및 지급 결제>(Future of Money and Payments)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한국은행은 지난 1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 방향’을 발표했다. 이제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CBDC가 발행 가능할 만큼 한국은행은 제도적 검토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중요한 경제적 요인인 돈이 디지털 기술과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며 ‘디지털 머니’(Digital Money)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민은 이 변화에 부지불식 상태다.

/자료2=FED
/자료2=FED

이 부지불식 상태의 원인 가운데 중요한 것은 금융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은데, 금융과 결합한 디지털 이해의 난이도도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자료2’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난 8월 31일 발표한 ‘디지털 자산의 금융안정에 대한 의미’라는 보고서에서 정리한 ‘디지털 자산의 생태계’(Digital Asset Ecosystem)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생태계는 웹사이트, 앱, 디지털 지갑, 거래소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 계층, 분산 거래소, 대부 프로토콜 등의 스마트 계약 계층, 암호화폐, 스테이블 코인 등의 디지털 자산 계층, 그리고 블록체인의 결제 계층 등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복잡한 디지털 자산 구조를 잘 정리한 표임에도 용어 하나하나를 일반인이 이해하는 데 상당한 전문 지식이 필요할 것임이 틀림없다.

/자료3=IMF
/자료3=IMF

이와 같은 디지털 자산 생태계가 금융과 결합하고 확장한 것이 ‘자료3’에서 보는 디지털 머니의 세계다. 디지털 자산은 가치 저장 수단에 초점을 둔 것이며, 디지털 머니는 가치 저장을 넘어 가치의 척도와 교환 수단을 가진 디지털 금융 수단을 말한다. 이 표에 등장하는 디지털 머니와 관련한 주요 용어들 중앙은행 전자화폐(CBDC), 금융포용, 시큐리티 토큰, 스테이블 코인, 분산 금융(DeFi), 블록체인, 암호자산과 무보증 암호자산, 디지털 자산, 분산원장 기술(DLT), E-MONEY, 유틸리티 토큰 등인데 어렵더라도 독자들은 한 번쯤 익혀 두기를 바란다. 이들은 앞으로 일반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상식 용어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자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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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독자가 알아야 할 점은 법적으로 강제 통용되는 법정화폐가 금융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각국 중앙은행 또는 정부가 기존 물리적 화폐 중심의 결제, 지급, 금융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전자화폐 발행을 서두르거나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 4’에서 보듯이 CBDC를 기존 선진국형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바하마, 동카리브, 나이지리아는 이미 도입했거나 시범 발행했고, 중국은 지난 2월 동계 올림픽에 시범 운영했으며, 한국, EU 등은 모의실험 중이다. 종전에 강 건너 불구경처럼 신중한 태도였던 미국 등 달러 경제권도 최근 CBDC의 도입 검토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조만간 많은 중앙은행이 기존 지폐나 동전을 대체할 전자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인데, 세계 금융 산업은 당연히 근본적 변화가 닥칠 것이다. 기존에는 미온적이던 달러 경제권 중앙은행들조차도 왜 CBDC 발행을 고민하는 것일까?

/자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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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한국은행이 지난 1월 발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주요 이슈별 글로벌 논의 동향’ 보고서에 잘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현금 이용이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소매 거래 시 현금 사용 비중이 계속 줄어 미국, 영국은 20% 선까지 내려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코로나19 이후에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 거래 비중이 증가하고,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확충하며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약화와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끊임없이 제기된 것이 위기감과 함께 중앙은행을 움직였다. 특히 빅테크 기업의 ‘DNA loop’라 불리는 사업모델은 Data→Network→Activities→Data로 반복 순환하며 영업을 확장하는 구조인데, 이러한 확장 과정 가운데 민간 디지털 머니가 금융시장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며 중앙은행의 지급결제시스템 보호가 시급해진 것도 원인이다.

/자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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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요인은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이다. 기존에 중앙은행은 비트코인 등 암호자산은 대부분 투기성 자산으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테라와 루나 사태로 잘 알려진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은 한국 금융당국이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세계의 금융거래 수단이 될 것을 목적으로 하여 가치를 안정적으로 고정하여 발행하는 가상자산이다. 문제는 중앙권력을 벗어난 디지털 세계의 화폐라는 측면에서 중앙은행 화폐와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국가 독점 화폐 시스템에 위협으로 성장한 스테이블 코인의 폭발적 성장으로 디지털화폐 수요를 중앙은행이 확인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표적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Tether), 테라 등의 투자자 피해 사고 발생으로 민간 스테이블 코인 이용자 보호에 구조적 취약성도 확인하며 신뢰성 있고 안전한 디지털화폐의 필요성을 금융당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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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중앙은행이 CBDC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디지털화폐의 ‘금융포용’(financial inclusion)과 저렴하고 신속한 국제 자금전송 기능 때문이다. 금융포용은 국민이 금융 계좌를 얼마나 쉽게 갖는가를 나타낸다. 대륙이 넓어 촘촘한 금융망을 갖추기 어렵거나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 금융 계좌 개설에 국민 간 접근 가능성 차별화가 발생하는데 이는 후진국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오래된 문제다. 특히 전통 국제 송금은 여러 기관과 단계를 거쳐야 하는 구조로 고비용의 송금 수수료를 이용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해외 이주 노동자의 국내 송금이 경제에 중요한 후진국에는 디지털 머니의 저렴하고 편리한 국제송금은 절실하다. 따라서 CBDC를 도입하면서 국제송금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설계가 가능할 전망이다.

기축통화인 달러 경제권 중앙은행의 CBDC 도입은 디지털화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CBDC 도입 방식은 다양한 형태가 연구되고 있는데 대체로 민간 전자화폐와 상호보완, 경쟁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 문제점 지적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문제점이 CBDC를 도입하면 은행 예금 시장을 잠식해서 은행 기능을 약화하고, 이로 인하여 통화정책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 중국은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해 CBDC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고 서방 정부는 추정하고 있으나, 오히려 CBDC를 통해 달러가 주변 통화를 무력화하는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 강화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어쩌면 기존 물리적 통화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화폐개혁의 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CBDC 도입 이후 변화에 대해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CBDC 등을 사용할 디지털 머니 시대는 불가피할 것이다. 이때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예견하기는 어렵지만, 디지털이 그동안 불평등을 확대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는 평가를 고려할 때 서민 처지에서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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