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환율 전쟁과 ‘달러 제국주의’ 그림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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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환율 전쟁과 ‘달러 제국주의’ 그림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10.2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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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금으로부터 245년 전, 경제를 작동하는 원리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애덤 스미스는 참 놀라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애덤 스미스는 개별 인간의 자기 이익 추구 행위가 수요와 공급을 통해 시장이 최적으로 작동하도록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자기 이익 추구 행위는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최대 미덕으로 승화했고, 지난 40년간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통해 동서 냉전 체제도 무너지고, 오로지 경제 논리 아래 선진국과 후진국이 잘 짜인 협력 틀 속에 동반 성장을 하는 듯했다.

이 시기 세계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협력과 공존의 신뢰로 보였다. 이러한 믿음에 세계 각국은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와 금융 인프라 구축을 의심 없이 인정했고 추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기치 못한 불확실성을 맛본 미국은 정교한 공존의 신념에 근거한 세계 질서를 너무나 쉽게 저버리고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국가 이기주의를 선택했다. 현재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미국의 이익으로 변질했다. 과거에는 군사력으로 제국주의 침략이 이루어졌으나, 금융 자본주의로 진화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은 달러를 통해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동일한 침략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 14일 발표한 국제금융센터의 한 분석 보고서는 최근 벌어지는 국제 금융 시장의 동요를 ‘역환율 전쟁’(reverse currency war)이라고 표현했다. 이 보고서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 내용은 달러 제국주의에 투쟁하는 세계 경제의 처절한 모습이다. 통상의 환율 전쟁은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을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의 강세는 수출품의 가격 상승을 가져와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므로, 특히 한국 같은 국가의 경제 상황 악화를 초래한다. 자국 경제의 보호 때문에 자국 통화가 강세를 보이는 국가는 외환시장에 개입(예를 들어 달러 매수)할 동기가 발생하는데, 엄청난 무역 적자를 보이는 미국 행정부는 환율조작국을 매년 조사하여 지정하고 있어 미국과 교역하는 국가는 환율 상승(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외환 개입에 나서기 어렵다.

또한 대부분 대미 무역 흑자 국가는 국내로 달러가 유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국채 등 외화 자산을 매입한다. 중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를 1조달러 내외로 보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물품 소비(수입)로 미국 경제에서 유출한 달러가 미국 국채를 팔아 다시 미국으로 환류하고, 제3국은 열심히 재화와 서비스를 팔아서 미국 국채를 사서 외화보유고로 축적하는 세계 경제의 구조가 형성된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달러 가치의 변동은 미국 이외 제3국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최근 달러 가치가 짧은 기간 크게 상승하며 반대편 세계 각국 통화 환율이 급락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각국 외환 당국은 달러를 내다 팔아 자국 통화 가치를 보호하는 역환율 시장 개입이 벌어지고 있다.

자료1. /출처=국제금융센터
자료1. /출처=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달러 대비 주요 6개국 통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 인덱스는 2000년 이후 다섯 차례 급등했다. 과거 IT버블·카드론 사태(1999~2002년, +30%),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27%), 남유럽 재정위기(2010년, +15%), 중국 외환위기(2014~2015년, +27%) 등 네 차례 급등이 있었고, 최근 코로나 발발 이후 미국 통화 긴축 위기(2021~2022년, +29%)로 인해 달러 가치가 급상승 중인데 조금 더 진행하면 달러 인덱스 상승 속도와 폭에서 역대급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달러 환율의 급등은 상대방 통화국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보유 달러를 내다 팔아 32개국 기준 글로벌 외환보유액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연초 이후 1.1조 달러나 감소했다. 원/달러 환율도 지난해 12월 말 1185원에서 올해 9월 말 1434원으로 21%나 폭등했고, 외환시장 개입으로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은 같은 기간 4431억달러에서 4167억달러로 264억달러 감소했다.

자료2. /출처=국제금융센터
자료2. /출처=국제금융센터

급격한 달러 가치 상승(달러 이외 통화 가치 하락)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가져올까? 먼저 2022년 현재의 달러 가치 상승은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과 동반한 것이어서 두 가지 요인이 상승 작용하며 비달러 국가의 국민은 경제적 고통이 단순히 2배가 아니라 지수가 증가하는 속도로 배가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충격은 소득 여건이 한계적 상황인 가구나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또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품 가격의 상승을 통해 국내 인플레이션율 상승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달러로 거래해야 하는 원유 등의 에너지 수입국은 러시아 전쟁 등 공급 교란까지 겹치며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경기침체가 겹치면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고물가, 고금리 상태에 경기침체가 닥치면 실업률이 상승하고 상위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국민 생활은 그야말로 IMF도 우려하는 ‘생계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가 발생하며 어느 국가나 정치적 안정도 보장할 수 없다. 아울러 달러 가치 급등은 국가적 위기를 불러오는 자본 유출을 초래한다. 2014~2015년 이른바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으로 알려진 중국 외환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1조달러 이상 보유한 국가임에도 당시 미국 금리 인상 기대가 불러온 위안화 약세는 중국의 자본 유출 쓰나미를 불렀다.

현재 역환율 전쟁의 발생 원인은 미국 정부와 연준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달러를 무제한 찍어 지원, 보조금으로 퍼부었다. 미국 경제가 급락 후 반등하자 지난해부터 경제학자들은 일찌감치 인플레이션을 경고했으나, 미국 연준은 저소득층 고용의 확실한 회복이라는 목표 달성을 거론하며 올해 초까지 일시적일 것이라는 주장으로 물가 상승에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물가가 치솟기 시작하자 지난 3월부터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이후 연준 통화 정책은 이전과는 정반대 방향인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다.

현재 연준은 미국 경제의 고용 상황과 소비가 탄탄하므로 물가를 잡는 통화 정책은 성공할 것이며, 가벼운 경기둔화만 동반하는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높은 인플레이션 지속으로 연준의 통화 정책은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세계를 달러로 묶어놓고 미국 경제만을 위한 연준의 통화 정책은 세계 경제에 앞으로 큰 비용을 요구할 전망이다.

세계 경제가 고통받는 원인이 명확해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절대적 영향권에 놓인 세계 경제는 어느 하나 불만을 내놓기 쉽지 않다. 달러 지배권에 도전한 중국, 이란 등 몇몇 국가들에 닥친 불행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쩌면 달러가 굴비 꿰듯이 엮은 세계 경제망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 군사 침략보다 더 효과적인 보이지 않는 식민화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연준이 통화 정책에 실패해 큰 경기침체가 오면 미국 이외 특히 신흥국, 경제 취약국의 피해는 지금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신흥국이 망가지는 때가 론스타 펀드와 같은 미국 자본시장의 벌처(vulture) 펀드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이들은 망가진 경제에서 부실 자산을 헐값에 사서 염가로 수리한 후, 수배 혹은 수십 배 비싼 값에 팔아 차익을 남기는 사모 펀드다. 이러한 사모 펀드도 미국 경제의 중요한 생태계이므로 미국에는 신흥국의 파산이 나쁘지 않다.

자료3. /출처=국제금융센터
자료3. /출처=국제금융센터

달러 강세와 금리 인상이 러시아 전쟁과 겹치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변동성이 커지면 선진 금융 기술자들은 더욱 동태적으로 이익을 차지할 기회를 얻는다. 미국에는 달러 강세가 막대한 국가 부채 부담을 낮추는 효과도 있고, 이러한 달러의 위세를 세계 각국이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되어 미국의 지도력은 더욱 강해지는 부수 효과도 있다. 연준의 통화 정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부담은 대부분 미국 외부로 밀어낼 수 있다. 여러모로 2022년 달러 강세는 달러가 첨병인 신제국주의를 모두가 인식하는 시기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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