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은 모르겠고… 내 퇴직연금 건드리지 마!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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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은 모르겠고… 내 퇴직연금 건드리지 마!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2.1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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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의 운용 방법을 직접 고르지 않은 경우, 미리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인 디폴트옵션이 내년 6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사진=픽사베이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의 운용 방법을 직접 고르지 않은 경우, 미리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인 디폴트옵션이 내년 6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사진=픽사베이

“원리금 보장상품을 포함하면 취지가 반감된다” vs “취약계층은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난 4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최한 <퇴직연금 간담회>에서 ‘이것’ 도입을 놓고 열띤 공방이 펼쳐집니다. 은행과 보험업계는 이것에 원리금 보장상품을 넣어야 안전해진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증권업계는 퇴직연금은 오로지 수익률 상승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이것은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 사전지정 운용제도입니다.

퇴직연금이란. /자료=근로복지공단 SNS
퇴직연금이란. /자료=근로복지공단 SNS

‘퇴직연금’. 근로자의 퇴직금을 금융회사에 맡기고, 기업 또는 근로자의 지시에 따라 운용하여 퇴직 때 일시금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근로자가 재직 중에는 확정급여형(DB형),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운데 자신에게 알맞은 유형을 고를 수 있고, 퇴직한 뒤에는 연금과 일시금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말 기준 모두 266조원이 쌓인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이 내년 6월부터 시작됩니다. 이에 따라 지지부진한 퇴직연금 수익률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원리금 보장상품’도 포함돼 높은 수익률을 좇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10일 금융당국과 국회,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디폴트옵션이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적립금의 운용 방법을 직접 고르지 않은 경우, 미리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뒤 4주 동안 운용지시를 하지 않았을 때는 사전에 지정된 운용 방법에 따라 운용됨이 통지되고, 또 2주가 지난 뒤부터 사전지정 운용 방법으로 퇴직연금의 운용이 시작됩니다.

퇴직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모두 266조원의 적립금이 쌓였다. /자료=금융감독원
퇴직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 모두 266조원의 적립금이 쌓였다. /자료=금융감독원

퇴직연금 가운데 DC형과 IRP가 지정 대상입니다. 다만 DC형은 의무 도입이지만, IRP는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적용을 원할 때만 지정 가능합니다. 아울러 디폴트옵션 적용 중이라도 가입자가 언제든지 운용 방법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디폴트옵션은 증권사 등 금투업계가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해 줄기차게 도입을 요구해왔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등 4개국만 디폴트옵션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는 게, 금투업계의 도입 주장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미국은 1981년 ‘QDIA’라는 디폴트옵션을 만든 뒤 현재 7%대의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주도 1992년 ‘My Super’라는 디폴트옵션을 제도화한 뒤, 2000년대 이후 연평균 7%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번 디폴트옵션 도입이 금투업계 뜻대로만 이뤄진 건 아닙니다.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된 것입니다. 개정안의 ‘하나 이상의 운용유형을 포함해야 한다’라는 요건입니다. 은행과 보험업계의 요구도 들어준 것입니다. 디폴트옵션은 원리금 보장상품 혹은 집합투자증권(펀드)으로 구성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만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에 누리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평생 일한 대가인 내 연금을 건드리지 마라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도입에 누리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평생 일한 대가인 내 연금을 건드리지 마라는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일해서 받은 개인의 보상권을 왜 정치권이, 나라가, 금융사가 맘대로 주물럭거리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주가 방어하기 위해, 세금 더 거두려고…. 의심의 눈초리는 여러 갈래지만 결국 한곳으로 모입니다. “평생 일한 대가, 내 퇴직연금 건드리지 마”입니다.

“노후 안전 자금을 지들 멋대로 하네” “왜 자꾸 남의 돈을 건들고 난리야? 공무원연금이나 손볼 것이지” “퇴직연금(8.33%)+국민연금(9%)=공무원연금(9+9%). 운영은 자기 돈처럼 운영해야 고갈 없고 수익 높아지는데, 비리 운영사가 운영사 수익에 관심이 많아서” “퇴직금마저 세금에 녹는다” “투자환경은 도박판으로 변질. 기관은 개관으로 변질” “여야가 뭔데 저거 돈도 아니면서 원금 보장 어쩌고저쩌고. 참 같잖아서 말이 안 나온다” “이걸로 주가 방어하려나 보네” “260조 퇴직연금. 한방에 날려서 노인들 노숙자 만든다. 시중금리 올라서 주식시장에서 돈 빠지니 퇴직연금으로 메꾸나? 썩을~” “퇴직연금 찾을 수 있게 해라”.

“투자 실패해서 원금 다 날리면 누가 책임져주나. DC로 넣는 건 세제 혜택이나 보려고 좀 넣는 거고, 나머지 투자 금액은 개인이 증권사 계좌로 하면 되지. 노후에 굶어 죽지 않으려고 넣는 마지막 보루가 DC인데. 투자할 거면 증권 계좌로 하면 되지 굳이 DC에 넣고 상품도 제한적인데” “여기저기서 운용해 준다면서 바꿔가며 수수료 떼가면 남는 거 있겠나? 퇴직연금 받으면 기초생활 연금 등 안 주고 건강보험 많이 떼간다. 연금 안 하고 현금 받아 집 사면 기초생활 연금 등등 다 준다”.

“내가 일해서 받을 수 있는 보상권인데 왜 보상권을 니네들이 이래라 저래라냐!!! 미쳤네 진짜. 20년 일하고 퇴사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1억을 받아야 하는데 1억은커녕 6천만원 받을 수도 있단 얘기잖아” “디폴트옵션을 강제할 경우 그로 인한 손실은 누가 어떻게 보전해줄 것인가? 국가 재정, 재무 상태의 악화로 세금을 통한 적자보전이 불가능하다면, 정부와 금융기관은 제반 상품의 개발과 이에 대한 충분한 설명, 그 접근의 편의성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는데 그쳐야 하고, 최종적인 손실에 대한 책임은 결국 연금 수령자의 자발적인 선택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 2년간 퇴직연금 수익률. /자료=금융감독원
지난 2년간 퇴직연금 수익률. /자료=금융감독원

한편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DC형 퇴직연금의 1년간 수익률은 평균 3.57%였습니다. 퇴직연금 가운데 86.4%를 차지하고 있는 원리금 보장형의 수익률은 1.74%였습니다. 반면 원리금 비보장형 IRP의 평균 수익률을 업권별로 보면 ▲증권업계 6.76% ▲보험권 2.85% ▲은행권 2.50%였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퇴직연금 중도 인출 금액은 모두 110억7000만원이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5억3300만원보다 69.4%나 급증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노후를 포기하고 퇴직연금으로 생계를 지탱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빼내 쓰는 퇴직연금은 줄고, 굴리는 퇴직연금은 팍팍 불어났으면 합니다. 평생 노동의 대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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