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워 킬링 문’ 인디언 보호구역과 가자 지구, 그리고 자유의지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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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인디언 보호구역과 가자 지구, 그리고 자유의지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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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역사는 모든 연기(緣起)의 용광로가 될 수밖에 없다. 예수를 박해한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겪었던 핍박은 나치에 이르러 수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일거에 멸절당하는 참혹한 사태에 직면하였다. 그리고 이제 시오니스트들은 분노에 잠식당해 복수를 비교 형량하는 주관적인 이성으로 4주가 넘게 팔레스타인 어린아이들 머리 위로 폭격을 가하고 있다.

그 학살이 어디에서 멈추든 유럽이라는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게토나 아우슈비츠에서 숨져간 유대인들과 똑같이 기억될 것이고 이스라엘과 서방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지식인들은 ‘세계 소외’를 자처하며 2차대전 이후 멈출 수 없었던 성찰을 통해 21세기 들어 만연한 개인화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살아있다면 그녀는 또 한 번 놀란 표정을 짓게 될 것이다.

신을 질서의 상징으로 추단한다면 역사는 2중 나선형 구조라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엄격하게 작동한다. 여기 또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인종청소를 다룬 영화 <플라워 킬링 문>이 있다. 북미에서 자행된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은 기병대와의 전투가 ‘운디드 니’에서 종결된 후에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박제된 상태로 전시되고 있다.

오세이지 인디언들이 그들에게 허락된 보호구역 안에서 유전이 터졌다 한들, 그들에게 유전개발 이익의 상당 부분이 배당된다 한들, ‘쥐구멍 속의 이웃들’처럼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오세이지 인디언들이 겪었던 일들은 하와이 마누이족,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족, 그 밖에 북아메리카 어디든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지금도 허울뿐인 자치권과 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지고 있다.

관광과 목축이 거의 유일한 산업인 보호구역 안의 인디언들에게는 보조금이 주어지는데, 이로 인해 인디언 젊은이들은 노동 의욕이 퇴화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10대 후반에 이미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마약에 빠져들거나 비만에 노출되기 때문에 그들의 평균수명은 20세기 초반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이 드러내는 가자 지구와의 차이는 자유의지를 다루는 방법에 있다. 가자에서는 오직 억압만이 그들을 시험하지만, 보호구역 안에는 억압 외에 자치와 보조금이라는 ‘세계 소외’의 미끼를 던져놓음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복권 자본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청년 세대에게 공적부조를 지급하는 것은 주의를 요하는데, 이에 대한 오래된 논쟁 끝에 공적부조를 장기간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경우 명백하게 노동 의욕을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학의 주요과제인 소득재분배정책에서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부(-)의 소득세제(negative income tax)이다.

우리는 이미 15년 가까이 근로장려금이라는 정교한 부(-)의 소득 세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소득 활동이 없으면 오히려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또한 소득이 일정 구간 이상을 통과하면 역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근로장려금이 근로의욕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면, 보조금 지급수단을 현물로 할지, 현금으로 할지, 아니면 코로나 국면에서 경험했듯이 지역화폐로 할지에 대한 쟁점이 있었다. 수령자 입장에서는 현금의 효용증대가 제일 크게 나오겠지만,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화폐의 발행이 효과적이었음이 입증됐다.

하지만 이 시기에 여러 형태의 다른 현금 보조가 10대에서 20, 30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보편적으로 지급됐고, 이는 생계에 긴박하지 않았던 일부에게는 단순히 여윳돈에 불과했다. 결국 이 보조금은 코로나 충격 이후 자산 가격 폭등기에 자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 버렸다. 보조금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가 ‘카지노 자본주의’식 자산증식에 이미 노출되었기 때문에 우리 경제 시스템은 상당 기간 노동생산성의 감소와 소비 위축이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플라워 킬링 문>의 최대 수혜자는 몰리의 어머니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4명의 자매를 출산했기 때문에 거의 천수를 누린다. 몰리 역시 필사적으로 아이를 낳아 당뇨병으로 죽을 때까지 오일 회사의 배당금을 받는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여자 형제들은 아이를 낳기 전에 상속권을 독식하려는 플라워 문의 킬러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한다.

미국 내 소수민족은 대부분 모계 중심의 가족구조를 형성하는데, <플라워 킬링 문>에서도 역시나 오세이족 남성은 거세된 듯 무기력하다. 마치 조선시대 노비들이 ‘양천교혼(良賤交婚) 시 천자수모(賤子隨母)’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이와는 달리 유대인들은 여전히 가부장제를 강건히 고수하고 있다. 그들이 유럽의 게토에서 수백 년 동안 가문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어땠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게토의 유대인이든 보호구역의 인디언이든 삼켜지지도 않고 뱉어지지도 않고, 신성한 곳의 대척점에서 치외법권 하에 놓여있지만, 동시에 법의 보호를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게토의 유대인은 진정 세계를 소외시켰고 보호구역의 인디언은 세계로부터 소외됐다. 북아메리카의 유대인들은 더 나아가 월가를 장악했으며 언론과 할리우드를 지배하고 있으니 결국, 미국을 차지한 것이다. 그들은 더는 디아스포라도 아니고 호모 사케르도 아니다.

그러니 그들이 지난 100년 가까이 보여준 용기, 공동체 의식 등을 폐허 위에 던져 버리고 팔레스타인의 자유의지를 단련시키는 봉쇄 대신 팔레스타인을 가자나 서안에 가둬두지 않고 장벽을 허물어 대등한 상대방으로서 교류한다면, 미국의 패권이 쇠락하고 이스라엘을 둘러싼 아랍이 부족주의 대신 이슬람주의로 단합하는 날에도 타자의 표정을 짓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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