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 유동화 사회의 유동성 함정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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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 유동화 사회의 유동성 함정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7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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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남남’의 한 장면.
드라마 ‘남남’의 한 장면.

어느 해 여름 3층 조교실에서 흘러나오는 레인보우의 ‘Temple of the King’을 듣다가 잔디밭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윤리학 강의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교수는 군사정권에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우리가 나약하다며 비아냥댔고 우리는 비겁한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과대표가 부탁해서 가져온 망치가 생각났다. 나는 낡고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의 문에 못을 박아 폐쇄하고는 시내버스를 타고 미호천으로 갔다. 미호천 다리 위에서 강바람을 피해가며 성냥에 담뱃불을 붙이고 사과탄을 던지듯 담배연기를 날렸다.

며칠 전 방영 중인 드라마 ‘남남’을 보는데 느닷없이 화장실과 망치가 소환되어 피식 웃고 말았다. 공중화장실에서는 연애를 하거나 싸움을 벌이거나 하기 마련인데, 그 장면은 고등학생 때 임신을 시키고 도망간 남자를 30년 후에 만난 여자의 여자 친구가 그를 화장실로 데려가 두들겨 패주면서 외친 말이다. “화장실에 망치가 없어” 2000년대 초반까지 출몰하던 이데올로기적 담론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아니 다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벌어진 싸움판에 누군가 장도리를 꺼내 든다면 그건 마치 푸틴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가 나토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핵무기 사용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시도할 것이다.

월가와 다국적 기업들은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전쟁 수준에서 마무리할지 아니면 미·중간의 열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전장을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대시킬지 결정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유력한 방안이 있다. 러시아 내 일부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과 결탁해 푸틴을 제거하고 친유럽적인 ‘비시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이 방안이야말로 대중국 봉쇄정책의 완결판이기 때문에 19세기 이래 반복된 역사적 경험을 들추어보건대, 푸틴은 이미 실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하게 중국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과 중국에 직접 투자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고용효과에 있음에도 무슨 일인지 중국 지도부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해 왔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비교해 보자. 2000년대 초반 장택민은 김정일과 신의주 공동개발에 나섰던 양빈을 구금하고 단둥지역을 중국 단독으로 개발한다. 이때만 해도 중국의 중상주의 혹은 자본주의 본능은 오히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시진핑이 알리바바의 마윈을 비롯한 여러 기업인에게 가한 압박이나 코로나 기간 중 단행한 상하이 봉쇄 등은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게 만들었다. 

패권국가의 ‘톨레랑스’는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상 명멸했던 수많은 제국의 전성기는 문호개방의 정점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패권경쟁의 핵심은 군사적 요충지(말라카해협, 대만해협, 한반도 등등)를 확보하기 위해서 군사적 긴장관계를 높이기보다는 군사적 요충지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을 최대한 늘려나가는 쪽이 재무적 작란(作亂)의 투쟁장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 금리는 기본적으로 위험조정 할인율이기 때문에 시간선호뿐만 아니라 공간선호도 반영하는데, 이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만드는 쪽은 늘 국제 금융자본의 응징을 받아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실제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코앞에 다가오고 이에 따라 연준이 금리인하 압력에 노출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에 따라 미 국채를 추가적으로 발행해야 하는 재무부가 감당해야 할 채권가격의 하락과 채권수익률의 상승이 충분히 예상될수록, 이 상충관계 속에서 자본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자본시장에서 이탈한 현금은 포트폴리오의 위험분산체계 밖 저마다의 참호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후반 냉전종식에 맞닥뜨린 시민사회가 바우만의 지적대로 유동화되어 연대는커녕 지리멸렬 아고라는 텅텅 비어가듯이….

또한 중국이 제공했던 탄력성 무한대의 노동공급이 인플레이션을 상쇄했던 효과는 양적완화와 더불어 볼트와 너트 같은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합이다. 결국 세계는 공황과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발화점을 향해 다가가고 있고 뜻밖에 구원투수는 국제 투기자본이 될 것이다.

‘남남’에 나오는 여자들은 주인공인 여자경찰이나 일진이었던 그녀의 엄마, 엄마의 친구, 심지어는 한의원의 단골 할머니 세분까지 모두 완력을 사용하는데 능숙하거나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점이 너무 유쾌하다. 모름지기 책임의 무게를 받아들인 주체는 늑대 무리나 코끼리처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좌절된 사춘기 소녀의 성적 욕망이 세상과 화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악귀’였다면, ‘남남’은 그 이후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그러니 무더운 여름날 ‘악귀’와 ‘남남’을 보고 있다면, 소나기가 퍼부은 후에 퍼져있는 수박향처럼 다가오는 세컨드 임팩트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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