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노랜딩 혹은 질서 있는 퇴각은 가능한가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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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노랜딩 혹은 질서 있는 퇴각은 가능한가 [김경훈의 시네노믹스]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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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의 한 장면.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봄에는 만물이 생육하고 사냥이 시작된다. 교미와 죽음이 동시에 벌어지는 ‘주이상스’(고통스러운 쾌락)의 계절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역사의 터전에서 씨앗을 뿌리고 인과의 굴레 속으로 과감하게 전진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 장군은 쪼그라든 권력에 회한을 느끼고 그 공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쿠데타를 모의할 가능성이 순간 치솟는다. 더구나 이중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식민지 시절 만주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4·19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 2차대전 직후 대부분 식민지에서는 매판 자본가 외에 부르주아지라고 부를 만큼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5·16 군사쿠데타는 힘의 공백을 메꾼 것이라는 설명을 그냥 휴지통에 던져 버리기 쉽지 않지만,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루는 12·12 사태는 월남전에서 입지를 확보한 육사 출신들의 체계적 권력 다툼, 즉 군부 내부의 충돌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명분 없는 쿠데타는 우리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한글과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기대는)을 도외시한 것이었고 이미 상당 수준 성장한 시민사회와 부르주아지의 역량을 무시한 문화 지체의 하나였기 때문에,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의 군부는 분단국가의 군인들이 갖게 되는 영향력마저도 상실한 채 야전이 아닌 관료 체제에 길들인 월급쟁이 군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서울의 봄’ 당시 세계는 연속된 오일쇼크로 ‘하이퍼 인플레이션’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또한 첨예한 냉전 시기 자주국방에 핵무장론을 얹었다가 미국에 의해 제거된 것이 10·26사태의 실재라는 풍문이 떠돌았고, 이란에서는 회교 혁명이 일어나 왕정을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아랍권이 시대에 발맞추기 시작했으니 세계 역시 ‘봄의 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뿌려진 유동성과 두 개의 전쟁 등에서 비롯된 공급충격으로 푸시된 인플레이션, 일단 무역전쟁으로 포문을 연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우리가 아닌 북한의 핵무장,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다시 불을 지핀 무슬림의 지하드 등등, 분명한 것은 ‘노랜딩’(무착륙) 혹은 질서 있는 퇴각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의 프로세스 혹은 메커니즘을 통제할 수 없다. 단지 시장이라는 블랙박스(과정)에 어떤 자극 혹은 input(수단)이 들어갔을 때 어떤 output(실재)이 나오는 지만 관측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그 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금리 인하와 세계 중앙은행의 공조라는 수단이 금융시장이라는 과정에 투사될 수 있는 핵심 변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기축통화국인 미국이었고 세계화의 정점에서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어느 정도 협조했기 때문에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라는 수단이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화는 파탄이 나 있고 두 개의 전쟁은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 비용이라는 거대한 인플레이션 요인이 작동하게 했고 미국은 대선 국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급락했던 달러 가치의 회복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를 월가가 놓칠 리 없다. 따라서 금리 인하와 각국 중앙은행 간의 협조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우리는 경제 안정화라는 실재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시장에 무엇을 투입하여야 할지 새롭게 고민하여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방법적 파국 프로그램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니 월가에 맞서지 않으면서, 우리의 경쟁력 있는 기업집단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기회로 삼고 노동자들의 근로의욕 저하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라는 뜨거운 문제를 보로메오 매듭을 풀듯이 욕망에 대한 통찰 속에서 다루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대타자의 주이상스(JA)인 M&A(Merger & Acquisition)나 남근 주이상스(Jφ)인 개인회생이나 법원경매를 통한 구조조정을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서울의 봄>은 역사 드라마이지만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활극이다. 이태신이 고군분투하지만, 극 중반 정상호의 신병을 보안사가 확보하면서 이미 승부가 끝나버렸기 때문에 이태신에게 감정이입하기는 어려웠고, 혹여나 전두광에게 동조된 관객들이 진실에 눈감게 하는 ‘저지 기계’(deterrence machine)로 작동하지 않게 전두광이 화장실에서 비루하게 웃는 장면을 배치함으로써 밸런스를 잡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한 발짝 더 나가 하나회가 문민정부에 의해 전광석화처럼 척결되었고, 이후 군부는 시민들을 학살하고 사조직에 휘둘렸다는 멍에를 짊어지고 분단국가의 군대라고 하기에는 왜소한 역할만 부여받는 신세가 되었다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역사가 시간이라는 맷돌을 지나면 당사자들의 주관성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해석하는 입장들이 제각각인 만큼 주관성은 다시 여름철 풀숲처럼 무성해지고 실체적 진실은 더 멀어진다. 이때야말로 전체주의가 창궐하기 좋은 시기이고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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