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 사법리스크, ‘DGB 시중은행’은 물 건너갔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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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오 사법리스크, ‘DGB 시중은행’은 물 건너갔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9.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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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성장 나섰다 검찰에 기소… 장기 집권 잇단 부작용에 ‘전국구 회장’ 앞두고 하차 가능성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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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보여주는 신비로운 형국 가운데 하나가 ‘자충수’다. 바둑의 원리는 한 돌 한 돌 놓으며 축성하여 상대보다 더 넓은 집을 짓거나 적을 잡는 포위망을 만드는 것인데, 어떤 수는 유리하다고 여기고 한 돌을 두었으나 자기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가 있으니 이것이 자충수다. 필자는 요즘 DGB금융지주 김태오 회장이 자충수를 몸소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추진한 DGB금융그룹 성장전략에서 발생한 예기치 못한 문제로 순탄히 제5의 시중은행 금융지주 회장이 되리라는 기대를 김태오 회장은 포기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약 오백 년 동안 많은 책사가 국가를 경영할 기회를 맡길 주군을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김태오 회장의 인생 역정도 마치 이와 같다는 생각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당시 한국은행과 함께 최고 금융 엘리트가 희망하던 외환은행에 입사한 그는 경쟁을 촉진한다는 금융 자유화 물결 속에 1991년 신설 보람은행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후 단자사인 한국투자금융이 은행업으로 전환한 시중은행인 하나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부실 보람은행을 인수하자 1999년 자연스럽게 하나은행에 합류했다. 그는 하나은행이 보람은행을 인수할 때 보람은행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며 인수·합병 과정에서 김승유 하나은행장의 눈에 들었다고 알려졌다. 김태오 회장은 나중에 하나금융지주 초대 회장에 오른 김승유의 최측근으로 평가받으며 경영 후계자 물망에 올라 하나금융지주 부사장과 하나은행 부행장을 거쳤다. 누가 봐도 김태오 회장은 차기 하나금융 회장이 될 수 있는 유력한 잠룡 가운데 하나였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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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명은 언제나 얄궂다. 그가 새로운 도전을 찾아 뒤로한 외환은행이 20여 년 만에 그의 발목을 잡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외환은행 매각이 2012년 하나은행 인수로 마무리되면서 처음에는 하나금융 유력 잠룡들은 더욱 큰 조직에서 큰 기회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태오 회장도 외환은행에 경영진으로 금의환향할 기대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금융이 인수 과정에서 외환은행 노조와 갈등을 겪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승유 회장 측근이 모두 물러나는 이변이 일어났다. 김승유 회장의 제왕적 경영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외환은행 직원 정서를 달래고 인수작업을 무리 없이 마치려는 당시 경영진의 결단이었다. 이 여파로 김태오도 2014년 하나생명 대표이사와 고문을 마지막으로 최고 경영자 등극 꿈을 포기하고 하나금융을 떠난다.

이후 약 5년의 공백기가 지나 김태오 회장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친 박근혜계로 알려진 박인규 전 DGB금융지주 회장이 대구은행 비자금 조성 사건, 채용 비리 의혹 등으로 2018년 자진 사퇴하며 DGB 수장 자리가 공석이 되고 말았다. 이때 박인규 전 은행장은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경상북도 칠곡 출생으로 대구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대구 지역 출신이면서 하나금융지주에서 부사장을 역임한 김태오 회장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취임 후 전임 박인규처럼 DGB금융지주 회장과 대구은행장을 약 1년 9개월 동안 겸임했다. 그 무렵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을 지낸 김지완씨가 BNK금융지주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경남·북 금융그룹 수장을 하나금융 출신이 장악했다. 단기금융업 회사에서 은행으로 전환하고 4대 금융그룹으로 초고속 성장한 하나금융은 스스로 아메바처럼 흡수하고 무한 성장하는 경영전략을 추진한다고 자랑하는 것을 필자는 자주 들었다. 이런 역동적 경영을 김승유라는 걸출한 금융인으로부터 직접 배우고 1990년대부터 금융산업의 격변기를 지켜본 김태오는 DGB금융그룹 회장 취임으로 다시 정상에 도전할 기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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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오 회장은 전임 박인규 회장을 퇴임으로 몰고 간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하나금융에서 보고 배운 것에 불과하지만, 지역색에 의존해온 지방은행에는 참신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이다. 먼저 DGB는 파격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ESG(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활동을 강화했다. 국제 기후기구인 SBTi에 국내 최초로 가입하고 탄소 감축 목표를 승인받는 등 여러 가지 국제적 활동을 세련되게 전개했다. 아울러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다음으로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면서 은행의 비대면 영업을 강화했고, 지방은행의 한계를 탈피하기 위해 해외사업을 가속하고 캄보디아 현지법인 ‘DGB뱅크’를 출범했다. 2023년 6월 말 현재 DGB금융그룹은 자산 98.6조원으로 성장했고, 계열사 10개를 두고 있다. 그룹 주력 회사는 대구은행으로 자산의 77%, 당기순이익의 81%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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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김태오 회장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 금융당국은 2023년 들어 은행의 공공재 특성을 강화하기 위한 은행권의 경영·영업 관행 제도 개선 TF를 운영하며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5일에는 은행 지주 회장을 모아놓고 여러 가지 개선 내용을 발표했는데, 첫 번째 개선방안인 ‘은행권 경쟁 촉진 및 구조개선’이 특히 눈에 띈다. 1988년부터 금융시장의 굴곡을 지켜 본 필자는 금융당국의 경쟁 촉진 정책을 보면 낯익은 기시감이 든다. 경쟁이 효율을 높인다는 수백 년간 지속한 고전 경제학의 신념은 ‘경쟁은 언제나 옳다’고 국민을 가스라이팅 해왔다. 그러나 경쟁은 상당한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특히 금융권 경쟁 촉진은 신규 금융업 진입자의 이익을 낳고 이후 과도한 경쟁이 금융소비자의 피해와 금융회사 부실 그리고 국민 세금 낭비를 초래하고는 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쟁이 부족한 원인이 1992년 이후 인터넷 전문은행을 제외하고는 신규 은행 인가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허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구은행을 콕 집었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 탄생에 이바지한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정치적 선물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구은행은 대구·경북 등 핵심지역의 여신 비중이 72%를 넘는다. 전북은행을 제외한 6개 지방은행은 모두 70% 내외의 높은 소재 지역 의존도를 보인다. 그러나 대구·경북 지역의 은행 수신 중 대구은행 점유율은 36%이며, 여신은 25%에 불과하다. 전국구로 영업하는 시중은행 등이 대구은행 핵심 영업 지역을 크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대구은행이 시중은행으로 전환할 때 수도권 및 지방은행이 없는 충청·강원 등지에서 영업을 확대할 수 있고, 외국계 은행만큼 대출 규모를 가진 시중은행이 출현한다고 기대효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충청·강원 지역은 이미 해당 지역 지방은행을 흡수한 시중은행이 지역은행처럼 영업하고 있어 자신의 핵심 영업 지역에서 시장 점유율 50%도 지키지 못하는 대구은행이 생면부지 지역에 진출해 시중은행 벽을 극복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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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오 회장의 적극적 성장전략과 뜬금없는 금융당국의 지원까지 가세하며 DGB금융그룹 앞날은 올 상반기에 탄탄대로 같았다. 김태오 회장은 DGB가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면 고래가 아닌 메기로 성장하는 전략을 선택한다고 선언했다. 자본금(1000억원), 지배구조(지분 제한 산업자본 4%, 동일인 은행 보유 10%) 등 시중은행 전환 요건을 이미 충족한 대구은행은 은행장 직속으로 전환 준비 전담반도 설치하고 9월 전환 인가 신청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인지 김태오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성장전략이 DGB금융그룹을 얽매는 자승자박 상황이 됐다.

8월 10일 금융감독원은 대구은행의 증권계좌 임의 개설 혐의에 대한 검사를 7월 12일부터 실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디지털 전환의 일환으로 2021년 8월 도입한 은행 입출금통장 연계 비대면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가 탈을 일으켰다. 경험에 비추어 필자는 대구은행이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한 후 직원에 대한 대대적 실적 압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융회사는 신상품·신서비스를 도입하면 예외 없이 직원 실적 경쟁을 붙이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구은행 직원들은 1000여 건에 이르는 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개설했고 고객에게 개설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내 문자도 차단했다. 디지털 전환이 급하게 추진되는 환경에서 금융실명법 위반을 포함한 상당히 심각한 범죄가 조직적으로 자행됐다. 더군다나 금융감독원은 이 사실을 대구은행 내부 감사가 아닌 외부 제보로 인지하고 검사에 나섰다. 앞서 DGB는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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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지방은행 한계를 넘어보려는 시도로 성급히 추진한 해외 투자도 김태오 회장에 큰 부담이다. 단순 투자 실패가 아닌 죄질이 나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대구은행이 2018년 캄보디아에서 캐피탈 사업을 하던 현지법인 DGB SB의 상업은행 전환을 추진하면서 현지 인가를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2021년 12월 대구지방검찰청이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을 기소했기 때문이다. 국제 뇌물 사건으로는 골드만삭스가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뇌물을 주고 금융거래를 성사한 1MDB 사건이 유명하다. 골드만삭스는 23억달러의 벌금과 수수료 수입 6억달러를 토해내고 기소유예를 받았다. 김태오 회장 등 대구은행 관련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시중은행 전환 시점에서 해외이지만 은행업 인가를 위해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금융당국이 대구은행 도덕성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정부 들어 금융지주 회장 물갈이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들 사건으로 2018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김태오 회장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후임 DGB금융지주 회장으로는 전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권혁세씨가 거론된다. 권혁세 전 금감원장은 2009년 3월 추경호 부총리가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으로 임명될 때 나란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있었고, 김태오 회장의 경북고 1년 후배다. 또한 그는 2020년 DG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역임해 지역 연고와 경력에서 차기 회장에 최적이라는 평가다. 결국 김태오 회장은 시중은행 금융지주 회장이 되기 목전에서 하차할 가능성이 커졌다. 김태오 회장으로서는 과거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개인적 야망을 접어야 했던 상황이 떠올라 아쉬움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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