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혼내주기식 금융산업 개혁, ‘교각살우’는 안 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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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혼내주기식 금융산업 개혁, ‘교각살우’는 안 된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7.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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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경쟁 촉진, IMF 위기 이전으로 회귀 닮은꼴… 금융 개혁은 고도의 전문·도덕성 필요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새 정부 출범 1년이 지났으나 대선공약이었던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교육 개혁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노동과 연금, 교육의 제도 변화는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국민 대부분의 관심이 크고 유불리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한마디로 정부가 마음대로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영역에서의 변화는 이러한 국민의 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산업 내부 관계자와 일반인(또는 금융소비자) 사이에 정보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일반인이 금융당국과 금융산업에서 하는 일을 듣더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인은 그들이 설명하는 대로 이해해야 한다. 일반인은 금융당국과 금융산업이 치명적 정책을 도입하고 시행하다가 실패해도 잘 모르며 피부로 느끼기도 어렵다. 이러한 금융산업에 정부가 개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농협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모피아 출신을 앉히고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를 서울 남부지방검찰청과 엮더니 최근에는 금융권 수장을 모아놓고 금융산업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다.

자료 1.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1. /출처=금융위원회

지난 5일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이하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지주 회장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논의’라는 형식을 빌려 은행 산업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살펴봤더니 말이 좋아 개선방안이지 정부의 금융산업 개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참석한 은행 지주 회장들에게는 금융당국이 설명하는 개선방안의 한마디 한마디가 폭탄선언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필자가 보기에 개선방안은 검찰 시각답게 은행을 정화가 필요한 문제가 있는 세력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보고서는 고금리로 어려운 국민에게 폭리를 취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인 은행을 개혁 대상이라 못 박고, 국민에게 공감을 구하고 있다. 또한 6개 과제를 제시했는데, 5개는 보고서 제목대로 은행권의 경영과 영업 관행, 제도 개선과 관련한 내용이고 나머지는 은행 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고정금리 확대 ▲손실 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성과보수 개선 및 주주환원 정책 점검 ▲상생 금융 등 5개 과제는 최근까지 금융당국 두 수장이 앞장서 주장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은행 산업 경쟁체제 도입’은 아주 결이 다른 것이다. 금융산업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은행 산업 구조정은 곧 금융산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은행 산업이 폭리를 취했다는(은행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것을 명분으로 금융산업 기반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조치를 은행 산업 개선방안에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

자료 3.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3. /출처=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제시한 개선방안에 따르면 은행 산업의 경쟁을 촉진해야 하는 이유로 첫째는 은행업은 정량적으로는 경쟁적이나 국민 체감도는 매우 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증 이외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둘째로는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말 현재 대출 63.5%, 자산 63.4%를 차지하는 등 과점을 형성하고 있어 완전경쟁을 이상적 시장 상태로 규정하는 고전적 경제 논리에 비추어 폐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에 은행 산업에 신규플레이어 진입을 허용하고 여타 플레이어와 경쟁 촉진, 금융과 IT 간 협업 강화, 대출·예금금리 경쟁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쟁 촉진 조치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지방은행, 저축은행, 빅테크 기업의 은행업 진입 장벽 완화다. 즉 ▲대구 은행 등 지방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저축은행은 지방은행으로 승격시키고 ▲인터넷전문은행을 신규 인가하며 ▲‘은행+빅테크 IT 플랫폼’ 및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이라는 협업을 촉진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개선방안에 사례로 콕 찍어 소개한 대구은행은 현 정권의 지지 기반 소재 은행으로 정치적 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위기설의 한가운데 있고 현 정권과 관련한 이슈에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행 산업 경쟁자 지위로 승격하는 수혜자로 등장하는 것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융업 신규 인가는 많은 이권 발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정책 추진의 경제적 필요성과 정치적 배경을 신중히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자료 4. /작성=조수연
자료 4. /작성=조수연

과거 은행 산업은 1980년대 세계적인 금융 자유화 영향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신규 인가, 전환 인가를 실시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 직전 26개에 달하던 은행(특수은행 제외)은 부실화로 인해 통폐합 과정을 거치며 무려 10곳이 사라졌다. 현재는 신설 인터넷 은행 3곳을 포함해 15개 은행이 영업 중이고 시중은행 중심 금융지주 4개와 농협금융지주가 금융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 20여 년간 금융산업의 화두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형화였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건전성 확보였다. 두 차례 큰 위기를 거치며 긴 시간 우여곡절 끝에 현재 금융 시스템이 안착했는데 이번 은행 산업 경쟁 유도는 과거 큰 비용을 치른 정책 실패를 잊고 IMF 위기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습과 닮아서 필자는 걱정이 앞선다.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인 말로 세상을 다스리고 국민을 돕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로 2023년의 한국 상황에 경제 당국이 절실하게 새겨야 할 내용이 아닌가. 금융은 이러한 경제 흐름을 화폐로 표현한 경제의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금융산업의 변화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필자도 최근까지의 금융산업 개선 필요성을 늘 주장해왔다. 그러나 향후 금융질서를 좌지우지할 금융산업 변화가 부지불식간에 금융과 검찰이 연대한 일부 엘리트가 뚝딱 만들어 가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이 경제의 다이내믹스가 그리 만만치 않고 금융 부문 개혁은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중국에서는 종을 만들기 전 잘생긴 소의 피를 제사에 사용했다. 잘생긴 소는 곧은 뿔이 있어야 하는데 한번은 뿔이 삐뚤어진 소뿔에 끈을 묶어 교정하려다 그만 온전한 소를 죽이고 만 사건이 있었다. 이것을 비유해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고사성어가 전해졌다. 은행 혼내주기를 빌미로 시작해 6개월 동안 몇 차례 회의 결과로 경쟁도를 높인다고 금융산업을 손대는 것은 필자에게 IMF 당시의 기시감이 떠오른다. 한마디로 은행 산업 개선방안이 교각살우를 벌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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