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B’ 키우기 10년 헛수고, 배은망덕한 증권사?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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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B’ 키우기 10년 헛수고, 배은망덕한 증권사?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8.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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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부동산 투자에 열 올리고 사모펀드 사태 초래… 금융당국 잔칫상, 단물만 빨고 뒤통수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코브라 이펙트’는 처음 의도한 정책 목적과는 달리 정책 시행의 결과가 엉뚱한 폐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당연히 이 효과의 방점은 정책과 실패인데, 이상하게 필자는 대한민국 금융에서는 실패한 정책을 보지 못했다. 부동산 정책과는 달리 금융 부문에서는 아무도 정책 실패를 지적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30여 년 자본 시장에 몸담았던 필자는 수많은 정책 실패를 피부로 느꼈다. 그때마다 피해는 결국 금융소비자인 국민에게 직·간접으로 돌아오는데, 금융 정책은 대부분 고도의 금융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므로 국민은 실패한 사실과 스스로 피해자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치 인플레이션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금융당국은 그럴싸한 명분과 효과를 내세우고, 항상 그때가 적기임을 주장하며 금융 정책을 도입한다. 그러나 실패에 관한 백서는 나온 적이 없다.

자료 1.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1. /출처=금융위원회

이번 달 자본시장연구원(KCMI)에서 <종투사 10년 평가 및 한국형 IB의 발전전략>이라는 제목의 이슈 보고서가 나왔다. 일반인은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기 어려워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의 언어로 번역하면 ‘초대형 증권회사 육성 정책은 10년 후 성공할까, 실패할까’라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종투사는 약 10년 전인 2013년 5월 금융당국이 도입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줄임말이다. 국제금융통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2013년 부임하자마자 글로벌 투자은행을 키우는 정책을 발표하며 자본을 대형화하는 증권회사에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주기로 한다. 이에 한국투자, 삼성 등 자본 3조원 이상인 5개 증권회사가 2013년 10월 종투사로 지정받았으며, 현재는 9개사가 활동하고 있다.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자료 2. /출처=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은 종투사 지정으로 증권회사가 혁신 기업과 대형 프로젝트·모험자본에 자금 공급을 원활히 하고, 글로벌 M&A 시장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했다. 이를 위한 지원 정책으로 기업신용(자기자본 3조원 이상), 발행어음(4조원 이상), 종합투자계좌 및 부동산담보신탁(8조원 이상) 등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을 종투사에게 제공하고, 영업용순자본, 레버리지 등 건전성 규제를 적극 완화했다. 또한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프로젝트나 해외 M&A와 관련한 사업을 주관하거나 투자 참여 시 정책금융기관과 한국투자공사가 공동 투자하도록 지원한다. 그야말로 초대형 증권사에는 사상 초유의 돈 벌 기회를 주겠으니 자본 투자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당국의 취지대로 과연 증권산업은 움직였을까?

자료 3. /출처=KCMI
자료 3. /출처=KCMI

KCMI 보고서는 종투사 자본 규모 증가 외에는 증권회사가 금융당국 뜻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9개 종투사의 자기자본은 2013년 약 22조원에서 지난해 약 55조원으로 두 배 증가해 종투사 육성 정책은 외형 면에서 나름 성과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으나, 글로벌 비교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미래에셋증권의 국제 순위가 지난해 32위로 10년 전과 같았다. 세계 1위 JP모건은 2920억달러, 12위 노무라그룹은 240억달러인데, 미래에셋은 90억달러에 불과하다. 금융회사 자본 규모는 위험을 인수하고 파산을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금융당국이 10년 동안 공들였지만, 국내 증권사는 국제무대에서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여전히 어림없다.

자료 4. /출처=KCMI
자료 4. /출처=KCMI

한편 자기자본이 증가한 만큼 종투사의 순영업 이익 규모는 성장했다. 그러나 순영업 이익의 질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투자은행의 성장 과정과 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CDO 등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자기매매(트레이딩)를 줄이고 수익 안정성을 위해 자산관리를 늘리는 등 균형적 비즈니스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국내 종투사는 자산관리는 줄이고 자기매매는 크게 늘렸다. 다만 투자은행 수익 비중은 증가했으나, 이마저도 아시아지역 투자은행 경쟁력 비교에서 형편없는 상황이다.

자료 5. /출처=한신평
자료 5. /출처=한신평

국제적인 경쟁력 갖추기를 원하는 금융당국의 노력에도 국내 대형 증권회사의 생각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종투사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하면서 늘어난 자금을 손쉬운 부동산 투자에 집중할 것을 우려해 초기부터 부동산 투자를 규제했다. 그 덕분인지 한신평이 분석한 증권사의 국내 부동산 PF 위험 투자 비중은 자기자본 대비 22% 수준으로 48%에 달하는 중소형사에 비해서 안정적이다. 그러나 대형 증권사의 부동산 투자 금액이 12조원을 넘고 있어,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악화할 때 대형 증권사로부터 자금이 이탈하는 뱅크런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편 종투사는 규제가 심한 국내 부동산 투자보다는 해외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렸다. 해외부동산 투자 잔액은 올해 3월 말 기준 자기자본의 20%가 넘는다. 추측인데, ‘해외투자’라는 부분이 종투사의 글로벌 진출 이미지를 강조해 ‘부동산 투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내나 해외나 ‘부동산 투자’임은 같은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결국 지난해 이후 세계금리가 지속 상승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진국 부동산 가격도 불안에 빠졌고 최근 증권산업의 시스템 리스크 원인으로 등장하고 말았다.

결국 KCMI 보고서에서 종투사에 관한 금융당국의 10년 노력이 헛수고였음을 읽을 수 있다. 이 기간에 종투사는 여러 가지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의 주연 배우로 활약하며 글로벌 IB와는 달리 자산관리 시장을 스스로 붕괴하는 길을 걷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양산했음은 물론이다. 결국 대형 증권사는 금융당국이 마련한 잔치에서 단물만 빨고 뒤통수를 친 것인데, 금융당국은 알고도 창피해서 덮는 것인지 처음부터 대형 증권사에 돈 벌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인지 속내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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