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안전 자산이라더니… 미국 국채는 ‘떨어지는 칼’?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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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안전 자산이라더니… 미국 국채는 ‘떨어지는 칼’?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10.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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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뉴욕 증권시장 격언에 ‘떨어지는 칼을 잡지 마라’(Don’t try to catch a falling knife)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대중을 무차별 공격하는 범죄가 잦은 시기에 다소 섬뜩한 표현이다. 그러나 여기서 ‘떨어지는 칼’(A falling knife)이란 급격하게 떨어지는 증권의 가격 또는 평가 가치를 은유하는 표현이다. 상징적 표현일지라도 시장에 발 담그고 투자한 자산 가격변화에 재산 크기가 오락가락하는 투자자에게는 떨어지는 칼이 무차별하고 잔인한 흉기임이 틀림없다. 특히 이번 달 들어서자마자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rout)하고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거리자, 세계 최고 안전 자산이라는 미 국채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떨어지는 칼이 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는 다소 복잡한 배경이 있다.

자료 1. /출처=LPL Financial 4Q Outlook
자료 1. /출처=LPL Financial 4Q Outlook

지난 4일 기준 장기금리를 대표하는 미국 국채 10년 만기물 수익률은 4.715%였다. 불과 하루 전 장중 수익률이 4.884%를 기록하자 미국은 물론 한국 주식시장도 큰 폭으로 하락했으나, 다음 날 수익률이 소폭 하락하며 금융시장은 진정되는 모습이다. 현재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은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2007년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금융위기가 닥치던 시기의 수준에 근접한 것이어서 시장은 심리적으로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6일 0.773%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자료 2.
자료 2.

많이 알려진 내용이지만 채권 가격 결정 원리를 간단히 표현하면 자료 2와 같다. 채권은 일정 기간 단위로 이자를 지급하다가 마지막 만기에 이자와 원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증권이다. 매 기간 발행 이자율로 이자 지급이 고정된 금융구조로 이러한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금융구조를 ‘고정소득’(fixed income) 금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금융 방식은 다양하게 활용하는데 은행 대출은 매월 고정 이자를 차입자에게서 얻으므로 은행 입장에서는 고정소득 금융이다. 자료 2에서 항목을 대출 관련 용어로 바꾸면 된다. 이러한 가격 결정 구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분자에 있는 이자나 원금을 분모에 있는 시중금리로 할인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중금리와 채권가격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시중금리의 급격한 상승은 채권가격 급락으로 환산할 수 있다. 이것이 미국 국채의 ‘떨어지는 칼’이다.

자료 3.
자료 3.

떨어지는 칼을 실감하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채권은 할인식과 이표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할인식 채권은 자료 2에서 중간 이자 지급 없이 채권 액면금액(=만기금액)을 현재 시중금리로 할인해서 매수하고 만기에 원금을 받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할인식 채권의 만기 수익률은 원금을 할인 매입 금액으로 나눈 것으로, 이것을 보유 기간으로 연이율화 하면 된다. 다만, 단리나 복리 등등 세부적인 계산 방법 설명은 생략하자. 한편 이표식은 자료 2 공식처럼 매기 발생 이자를 해당 기간별 시중 수익률로 할인한 총계이므로 조금 복잡하다.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는 고려할 변수가 많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10년 만기 국채를 할인식 채권으로 매입했다고 가정하여 수익률 변동 효과를 비교하면 자료 3과 같다. 0.773%에 매입한 채권 가치는 10년 후 미래가치 기준으로 4.884% 수익률로 매입하는 채권 보다 약 7.6배 비싸게 사는 것이고, 반대로 10년 후 원금을 현재가치화한 기준으로는 약 33%의 가치 손실을 보는 것과 같다.

어떤 독자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똑같은 원금을 회수하니 명목적으로는 손실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경제학적으로는 기회손실이 발생한다. 자료 3의 수익률 변화가 2년 반 시간이 지난 것이 아니고 만일 극단적 가정으로 하루 만에 수익률이 그만큼 상승했다고 하면 왜 경제적 손실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어제 매수한 채권이 오늘은 33% 하락해 거래되므로 시장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또한 2년 지나는 동안 뭐 33% 정도 투자 손실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미국 국채를 사는 사람은 안전 자산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산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특히 금융시장 분위기가 흉흉했던 2020년 3월에 많은 투자자는 안전한 자산 도피처로 생각하고 거의 원금에 가까운 돈을 주고 미국 국채를 샀을 것이다. 이것은 만기까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마이너스 금리로 웃돈을 주고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원금을 까먹었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는데 이것을 불확실성(uncertainty)으로 투자자는 해석하며 더 큰 보상(더 높은 이자)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승 이자 부분을 ‘위험프리미엄’이라고 경제학에서 정의한다. 이쯤이라면 미국 국채가 떨어지는 칼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자료 4. /출처=investing.com
자료 4. /출처=investing.com

미국 국채는 세계 금융시장의 안전 자산 역할을 하고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로 발행하므로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환율을 통해 실물경제에도 큰 영향력을 가진다. 한국 국채 시장도 시점은 차이가 있지만, 수익률 변동에 있어 미 국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국고채 10년물 수익률은 2019년 8월 1.289%를 기록하며 미국 국채 수익률보다 높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낮은 수준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일 기준 국고채 10년물 수익률은 4.012%로 미국 국채 금리보다 낮았으나 전 저점에 비해서는 약 3.7%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역시 같은 기간 국내 채권 보유자는 평가 손실이 상당했을 것이다.

이미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국채 금리 상승은 국채 가격의 하락을 의미한다. 지난해 미국 연준의 급격한 정책 금리 인상은 국채 금리 상승을 가져왔다. 초단기 정책 금리 인상의 영향은 장기 국채보다 단기 국채에 컸다. 경제학에서는 경기 침체 신호로 장단기 금리가 역전(yield curve inverting)하는 현상을 경계한다. 그 대표적 기준이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의 수익률 차이다. 지금은 사상 최장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 3월에는 실리콘밸리, 시그니처 등 국채에 투자하던 은행이 평가 손실로 파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장기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며 떨어지는 칼의 모습이 바뀌어 금리를 둘러싼 금융시장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리 상승은 채권가격 하락을 의미하므로 이는 채권의 저평가로 볼 수 있다. 주식시장에서 저가 매수(buy the deep)에 익숙한 투자자는 자연스럽게 싼 국채 매수를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떨어지는 칼을 잡지 마라’라는 경고가 등장한 것이다. 왜 칼을 잡지 말라는 것인지는 다음에 해설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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