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의 정경유착 그림자와 삼성 이재용의 고육지계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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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협의 정경유착 그림자와 삼성 이재용의 고육지계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8.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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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 더위에 온 국민이 지쳐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도 역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평가다. 정부는 지난달 올해 경제성장률을 0.2%p 하향 조정했다.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수출이 크게 둔화했기 때문인데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도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재벌 그룹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과거 재벌을 대변하는 이익단체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더니 2017년 자발적으로 탈퇴한 삼성을 비롯한 현대, SK, LG 등 4대 재벌을 다시 끌어모으고 있다.

8월 23일 일본경제신문 아시아판.
8월 23일 일본경제신문 아시아판.

지난 23일 일본경제신문 아시아판은 한국 재계의 이러한 움직임을 소개했다. 중도우파로 평가받는 일본경제신문은 여전히 논란이 있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 로비 단체에 한국 경제의 4대 재벌이 재합류한다고 전했다. 이 기업 로비 단체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스캔들로 오명을 남긴 바로 전국경제인연합회다. 전경련은 보수 성향 주장을 주로 펴는 부설 연구소를 흡수합병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로비 단체 이름도 1961년 당시 이름으로 개명하기로 했다고 전한다. 아울러 새로운 회장으로 풍산 그룹 류진 회장을 선임했다는 내용도 함께 소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경제신문이 전경련을 로비스트로 못 박고 있다는 점이다. 전경련은 로비란 특정 단체 이익을 위해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경련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경제 재건 촉진회’가 모태이다. 당시 재벌기업이 ‘부정 축재’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과 손잡고 재벌 이해단체로 ‘한국경제인협회’를 발족했다. 일본 기업 로비스트인 ‘경단련’(經團聯)을 모델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경협은 ‘기업’ 대신 ‘경제인’이라는 용어를 로비 단체 이름에 사용했는데, ‘나라를 올바르게 하고 백성을 구하는 사람들 모임’이라는 뜻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이익단체임에도 정경유착을 미화하는 이름을 교묘히 붙였다. 한경협은 이후 1968년 전국적 회원을 갖추자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개명했다. 이 단체는 전경련 시절, 출생 동기인 ‘정경유착’ 활동을 유감없이 벌였다. 대표적으로 노태우 비자금 사건(1995년),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2002년), 기업별 로비 대상 정치인 할당 사건(2011년)에 이어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뇌물을 제공해 재벌 총수가 청문회에 불려 나가고, 실형을 받는 등 해체 위기까지 몰렸다. 이때 청문회에서 혹독하게 시달린 이재용 당시 삼성 부회장은 전경련 탈퇴를 공개 선언했다. 당시 4대 그룹은 정경유착을 다시는 하지 않겠는다는 대국민 약속을 하며 전경련에서 탈퇴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아이러니하게 전경련을 공중 분해한 장본인인 윤석열정부는 전경련을 다시 회생시키고 있다. 윤석열 대선 후보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준 씨가 올해 2월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뒤 전경련은 혁신안을 발표하는 등 명분 쌓기용 변화를 추진했다. 금융계는 물론 재계도 식민지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일본과의 민간 부문에서 연결고리가 강하다. 한일 관계 재구축을 추구하는 정부는 재계의 적극적 협력이 필요하므로 정부에 우호적인 강력한 재계 리더십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김병준 대행 취임 이후 3월 17일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하며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조성하는 등 전경련은 윤석열정부의 한일 관계 재건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5월 윤석열 대통령 미국 방문 때 경제사절단 모집도 주도하며, 전경련은 정부 지원 아래 재계 주도권을 회복했다는 평이다. 그러나 뇌물 사태로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탈퇴한 4대 재벌이 전경련 회원으로 다시 복귀하기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전경련은 과거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 단체 개명 등 혁신안을 추진했다. 전경련은 지난 22일 임시총회를 열고 기관명 변경과 신임 회장 선임 외에도 정경유착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윤리 헌장을 제정하고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신임 유진 회장은 자신이 이사로 있는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모델로 한경협이 변신할 것을 선언했다. CSIS는 주로 외교·국제 이슈를 주로 다루는 중도 보수 성향 연구소이므로, 과거 극우 보수적 주장을 해오던 이익단체가 변신에 성공할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정경유착 탈피 이미지 홍보를 위해 엉뚱한 롤모델을 내세우는 등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자료=한경협
/자료=한경협

여기에 전경련이 제정한 윤리 헌장에는 전경련을 이탈한 재벌에게 명분을 주려는 나름 결기(決起)와 노력이 가득하다. 윤리 헌장을 읽는 사람이 정경유착을 경계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일부 표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윤리 헌장을 통해 정부가 재벌이 꿈꾸는 세상을 약속한다고 전하는 듯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기업이 주인이 될 것’이라는 자유 시장경제 헌장으로 읽힌다. 결국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은 회원 자격을 승계하며 제 발로 탈퇴한 전경련으로 다시 복귀하는 모양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다만, 2017년 청문회에서 정경유착을 끊겠다고 선언한 뒤 준법감시위원회까지 설치한 삼성은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삼성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전경련 회원 복귀 결정이 필요했고, 심사숙고하는 모양새를 갖춘 후 준법감시위원회가 ‘조건부 승인’ 의견을 냈다. 사실 준법감시위원회 토의에 부친 것 자체가 스스로 위법 여지를 인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외부 평가도 있다. 준법감시위의 승인 조건도 정경유착 위반이 있으면 즉시 탈퇴한다는 것이어서 끝없이 반복하는 말장난 무한루프와 다름없다. 사실 지난해 8월 복권을 받은 후 삼성전자 회장에 추대된 이재용 회장은 당연히 현 정부에 부채감이 있고, 최대 현안인 삼성물산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현 정권의 재계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기 어렵다. 준법감시위에 넘긴 공을 하나 마나 한 조건부 승인으로 다시 돌려받은 이재용 회장은 다시 한번 정경유착의 공포에 고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성은 그룹 차원의 결정이 아니라 계열사별 자체 결정이라는 형식으로 삼성전자 등 4개사는 한경협에 재가입하지만, 삼성증권은 재가입하지 않는다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여줬다. 삼성증권의 이탈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총수가 있는 재벌에 계열사의 일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계열사 자율적 복귀 거부 결정 모습은 향후 한경협의 정경유착이 재발할 때는 이재용 회장과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를 최대한 약화시키는 효과가 예상된다. 삼성증권의 한경협 복귀 거부는 그룹 지배력이 약화했다는 모양 빠지는 소리를 듣더라도 정경유착이라는 개미지옥에서 한 발을 빼내, 만일에 대비한 이재용 회장의 고육지계일 수 있다. 경제에 경제보다 정치 논리가 가득하면 기업가는 걱정이 커진다.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될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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