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 모킹제이’, 월드컵과 3차 세계대전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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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모킹제이’, 월드컵과 3차 세계대전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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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헝거게임, 모킹제이’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헝거게임, 모킹제이’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누구든지 기억 하나쯤 가진 2002년 월드컵, 가평읍 내 철로 옆에 있는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서울행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면 건물 전체가 울렸고, 아침엔 2층 주인집 아들이 러닝머신을 탔다. 읍내 유흥업소에 다니던 여종업원들이 단체로 숙식하는 곳이기도 해서 밤에는 늘 어수선했다.

폴란드전이 있던 날, 군청 앞에서 응원전이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고즈넉하기만 했던 오후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십여 명 정도의 여성이 응원 복장을 갖추고 모여 있었다. 구김살 없이 환하게 웃고 있던 그들은 군청 앞에서 응원단과 하나가 되어 소속감, 일체감 속에 안도하며 환호했을 것이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첫 번째 과제는 한 국가의 모든 자원이 동원되는 전면전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그 유력한 수단 중의 하나가 축구였다. 제국주의 시절, 적도에 있는 어느 섬 원주민들을 사냥하듯이 살육하던 잔인한 공격성을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배출하며 해소하고 있었다.

자국 리그, 클럽 대항전, 국가 대항전 등을 거치며 인종청소 같은 서구 문명의 원죄를 스포츠로 ‘대속’(substitution)하는 것이었는데, 달리 말하면 일종의 ‘승화’(sublimation)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2차대전 이후 강요된 성찰과 외교·군사적 전략 때문일 것이다. 반성이든 전략적 선택이든, 히틀러가 나치의 선전도구로 전용했던 올림픽과 다른 것은 남미 국가가 대등하게 서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게 몰입도 높게 소구하는 월드컵의 스포츠 마케팅에 의한 수익 창출 효과가 10조원 정도라고 하지만, 월드컵의 전쟁 억지로 인한 손실 예방 효과는 만 배 정도 더 클 것이다.

<헝거게임>은 국가대항전인 월드컵의 순기능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독재자 스노우는 분리와 차별에 공간적 덮개를 씌우고 헝거게임을 통해 구역간 다툼에 감정적인 역사를 부여한다. <헝거게임: 모킹제이>는 결국 혁명에 성공하지만, 역사의 나선형 구조는 혁명의 무상함, 덧없음마저 느끼게 한다.

이 같은 무력감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민주주의 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대안을 상실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향유하던 민주주의는 단지 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의사결정 구조에 머물고, 소비사회의 물신화는 인간의 삶 전반을 장악한다.

<헝거게임: 모킹제이>는 미륵이나 메시아가 필요한 결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사회의 윤회적 현상이 결국은,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 시절 풍미하던 합리적 이성이 여전히 자연 질서의 모방단계에 있음을 재확인해 준다.

캣니스가 혁명군의 뜻에 따라 받아들인 혁명의 총아로서의 ‘모킹제이’의 역할은 자연의 질서, 즉 신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이 신의 모습을 흉내 내며 발휘하는 이성이,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망케 한다. 새로운 혁명의 동인이 태동하고 헝거게임이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1세기에 새롭게 출현한 준강형 독재자들이 히틀러처럼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다시금 전체주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초군담>을 상징화한 장기판처럼 월드컵은 인류의 공존과 상호 이해에 기능하고 있으며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전을 예방하는 지혜를 응축시키고 또 응축시킨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지적대로 소비사회에서는 계급 간에 이미 형성된 아비튀스를 통해 현실에 눈감게 하고 자발적 복종을 이끄는 상징폭력이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아비튀스가 상동성을 전 지구적으로 확장한 현대에서는 오히려 자율성을 향한 상징 투쟁 또한, 전 지구적 연대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만약에 카타르 월드컵이 평상시대로 6월에 시작됐다면,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점령하더라도 월드컵에 참가할 수 있는 여론지형의 변화가 불가하다고 판단한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월드컵 이후로 미뤘을지도 모른다. 월드컵이 멈추는 날,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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