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스 레인보우’, 근역강산 맹호기상도의 숨은 뜻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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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스 레인보우’, 근역강산 맹호기상도의 숨은 뜻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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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의 한 장면. /사진=스크린조이
영화 ‘워리어스 레인보우’의 한 장면. /사진=스크린조이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후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정도였는데, 어느 날 <워리어스 레인보우>를 보고 당황한 적이 있다. 외세의 침략에 치열하게 저항한 역사를 가진 민족의 의기는 우리에게만 내재한 것이라는 익숙한 착각에 반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길다. 결론도 정해져 있다. 타이완 산악지대 시디그 원주민들의 저항은 그 화력의 차이 때문에 부질없어 보인다. 실제로 영화의 중반부에서는 부족 일부를 일본으로 불러들여 산업이나 군수 설비를 보여 준다. 이로써 마음속에서도 굴복한 듯이 보였던 시디그 부족이지만, 일본군 장교의 친절이 업신여김의 또 다른 표현이란 것이 모욕적으로 드러난 순간, 족장 모우나 루도는 분연히 일어선다.

검투사 노예였던 스팔타커스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한 말, “로마를 점령하지는 못하겠지만 로마를 떨게 만들자”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저항의 역사는 깊게 각인되어 천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문화적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구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제국과 아직은 구심력을 놓치지 않고 있는 제국, 그리고 제국이라고 부르기엔 머쓱해진 나라, 자원을 경제 분야에만 집중하다 교역을 교린과 혼동하며 쇠퇴기에 들어선 나라 등이 있다.

그 사이에서 동아시아의 화약고는 타이완해협과 남중국해가 주로 거론되었는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퇴하고 있는 러시아를 목격한 순간, 그 정도의 대리전을 수행하며 중국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일 수 있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으므로, 당연하게도 한반도가 추가된다.

중국에 좀 더 치명적인 전쟁터는 한반도가 될 것이고 ‘근역강산 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를 보고 있는 인도태평양함대 사령관의 모습을 상상한다면, 그의 이와 같은 판단은 욕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전쟁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 민족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맹호도를 근거로 시진핑과 바이든에게 ‘쇼당’을 걸어야 한다.

먼저 시진핑에게 타이완해협에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대신 다리를 놓으라고(혹은 해저 터널, 카페리의 증설) 제안하고 싶다. 전쟁 의지가 생존이 아닌 자존 즉, 에고의 영역에 매달려 있다면 양안을 연결하는 교량을 세 개 정도 놓아 정혁의 기반 위에서 교류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바이든에게 권하고 싶다. 타이완해협에 다리가 놓이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휴전선 이북에 미군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전제로 평양에 미국 대사관을 수립하라고 말이다. 물론 핵탄두의 해체작업과 평양 근처에 설치할 미군기지에 대한 중국의 견제는 ‘상충관계’(trade off) 아래 두어야 한다.

때마침 스스로 ‘핵 전사’(nuclear warrior)라 부르는 미국 태평양사령부 전 부사령관 댄 리프의 말대로 “영구적인 평화협정은 미국을 실존적 위협으로 묘사하고 재래식과 핵무기를 구축하려는 김정은의 정당성을 약화할 것이고 억압적 정권의 기반이 되는 포위심리(siege mentality)를 방해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전개된 노익장 바이든의 전략가적인 면모에 희망을 걸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남북한이 군사적 충돌 한번 없이 통일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것이다. 전면전과 국지전 어디쯤 있는 수준의 전쟁을 통과해야만 통일을 손아귀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일본의 농간에 의해서 벌어질 것이라는 현실적 예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 인식에 대한 직관적인 통찰을 주는 두 가지 그림이 있다. 당대 예언서 맨 마지막 그림이라는 ‘추배도(推背圖)’와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이다. 역사라는 리얼(실재)과 해석에 대한 변증법적 관계는 전망에 대한 입장으로 종합되지만, 두 패권국가에 우리의 입장을 설득시키는 것은 진정 리얼한 것이다.

시진핑이 목에 활을 겨눈 듯한 평양의 미군기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줄여놓는 것이고 한국과 독일이라는 유라시아대륙의 양쪽 끝에 있는 두 산업 강국이야말로 세계무역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등을 떠밀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미 활성화된 인도를 중심으로 알렉산더 원정길을 따라 형성된 고대 교역로에 상응할 수 있게, 한 무제 때 옥문관을 설치하고 고선지가 개척한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실크로드와 소비에트혁명 직전 제정 러시아 때 깔아놓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라는 실핏줄이 돌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바이든이 고개를 돌려서 뒤돌아보게 해야 한다. 고립주의 노선에서 탈피해 동맹들과 궤를 같이했을 때 비로소 미국이 패권국가로 도약했음을, 현 상황에서 70년 이상 미국의 맹방이었던 한국을 전쟁의 수렁으로 밀어 넣어 중국과 대리전을 치르게 한다면, 장차 어떤 나라가 미국 옆에 남아있겠는가 되물어야 한다.

낡아빠진 G7이나 서유럽 중심의 나토에 집착하지 말고 남반구와 태평양 연안의 신흥강국들(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완, 한국 등)을 또 다른 축으로 동맹의 양 날개를 세워야만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일극 체제에서 증가한 엔트로피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 양극 혹은 다극 체제라는 부(-)의 엔트로피를 출현시켜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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