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전투 1·2·3’ 미꾸라지 숙회와 아옌데 [영화와 경제]
상태바
‘칠레 전투 1·2·3’ 미꾸라지 숙회와 아옌데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7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칠레 전투’의 한 장면. /사진=First Run Icarus Films
영화 ‘칠레 전투’의 한 장면. /사진=First Run Icarus Films

솥뚜껑을 덜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익어나오죠 (미꾸라지 숙회, 트렁크, 1995년 김언희)

김언희의 시집 <트렁크>에 실린 ‘미꾸라지 숙회’의 한 구절이다. 그 당시엔 여자들에게 있어 결혼을 바라보는 한 단면으로 읽었는데, 지금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이라는 속박에 어쩔 수 없이 말려 들어가야 하는 서유럽이나 극동의 선진국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 같아 보인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유럽의 선진국들에 당장 닥친 문제다.

‘양털 깎기’가 부채의 레버리지를 제공하고, 레버리지가 사라지고 자기자본수익률과 차이가 없어질 때쯤, 금리를 조정하여 흑자도산을 유도하고 경쟁력이 남아있는 기업이나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차익을 실현하는 당근 정책이라면, ‘미꾸라지 숙회’는 전쟁 등의 억압적 상황을 조장한 후,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 즉, 특정 자원이나 특정 산업의 경쟁력 등을 강탈해가는 채찍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중 간의 패권 다툼이 격화할수록 유럽이나 러시아의 부활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합리적 전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20세기 초·중반의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가의 지위를 확보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미·중 간 패권 다툼이라는 꽃놀이패를 들고 유로를 구축해온 그들의 와신상담은 어처구니없게 막을 내리고 러시아가 저렴하게 제공해 오던 가스·석유 등의 에너지 부족과 물가상승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마치 2차대전 직후의 유럽처럼, 다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서유럽은 러시아의 형편없는 실력이 드러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나토라는 서늘한 두부 속으로 파고들어 가고 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전쟁 상황에서는 미국에만 매달리도록 조건화된 것인지, 문명충돌의 관점에서 스키토 시베리안으로서의 러시아에 대한 근원적인 적개심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위험사회’의 일반적인 양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근대가 퍼뜨린 새로운 문명에 내재한 모순이나 인간 본성에 깊게 스며든 신분제 사회의 잔여물로 인해, 위험에 대한 탄력성이 높아져 그 해일 같은 대규모 재앙 앞에서는 모든 가치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러면 극동의 선진국들은 중국에 위협을 느끼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서 세계화로 인한 자본의 유입과 고용의 증진 등을 포기하고 미꾸라지 숙회가 될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미국의 빅 피처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집권 때문이겠지만, 서유럽-러시아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중국에는 문명 충돌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거나 독일과 견줘 일본은 자승자박하여 헤매고 있는 역사 청산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등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 차이는 근대 자체가 품고 있는 모순과 구체제의 생래적 모순으로 발생하는 위험사회의 이중적인 나선구조에 있다. 동아시아-중국 지역은 역사·문화적으로 위험을 내면화하여 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약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중국이 시진핑 체제를 신속히 해체하고 격대지정을 회복하든지, 기존의 ‘일대일로’에서 중앙아시아 > 러시아 루트를 포기하고 인도 > 파키스탄 > 이란 >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벨트로 대체하는 데 성공하든지에 패권 경쟁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낙관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단순한 기획력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를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서유럽을 2차대전 직전으로 회귀시켜버리는 실행력이 있다. 여전히 미국에게는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한 금융산업, 100년간 끊임없이 실전으로 다져진 군사력 등 많은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뒷마당 중·남미도 역시 미꾸라지 숙회 같은 지정학적 굴레에 놓여있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시도 또한 멈춘 적이 없다.

10년쯤 전인가 낙원상가 위에 있는 영화관에서 <칠레 전투 1·2·3>을 본 적이 있었다. 칠레의 대통령 아옌데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에 맞서, 대통령궁에서 최후의 항전을 펼치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5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급박하게 흘러갔다.

구리 광산을 둘러싼 다국적기업과 칠레의 부르주아 그리고 결국에는 아옌데에게 등을 돌린 노동자들까지, 제국의 다국적기업이 얼마나 손쉽게 식민지 혹은 주변부 국가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나 자원을 전유해 나가는지, 감독은 그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은 열망과 소명 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게 된다.

브라질의 룰라도 아옌데와 같은 좌절감에 둘러싸였었겠지만 마침내 되돌아왔다. 룰라의 선거 유세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인디언 소녀가 전통 복장을 하고 룰라 옆에서 즐겁게 웃는 장면이었다. 군사 쿠데타, 나르코스, 사법 쿠데타 등이 장마처럼 중·남미에 찾아왔었지만, 그들은 이제 자신들 세계의 기본적인 모순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 같다. 룰라의 또 다른 승리를 기원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