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즈데이’, 지렛대가 아닌 교두보 국가로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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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지렛대가 아닌 교두보 국가로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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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웬즈데이’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영화 ‘웬즈데이’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웬즈데이’가 동생을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이 퐁당거리며 놀고 있는 수영장에 피라냐를 풀어놓는 순간 “이 시리즈를 끝까지 보겠구나, 미끼를 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플라워호에 매달려 아메리카 대륙에 가까스로 도달했던 초기 정착민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주민들과 적대적 관계에 진입했는지 아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든 종과 종의 대결이든 피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웬즈데이’는 그 사이에서 별종이라 불리며 공존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수난과 핍박 또한 언제까지든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억압된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긴장감 속에서 다루고 있다.

마치 코로나가 퍼져나가듯이 붉은색 페인트가 스프링클러로 뿌려지는 무도회 밤은 이 시리즈의 전환점이 된다. 그 후로는 파시즘의 광기에 눈감게 만드는 혹은 파시즘에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시리얼 킬러 찾기가 주된 이야기가 되지만, 현실 속에서는 별종들의 연대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암투가 첨예화하면서 공존과 화해를 주도하는 사람들, 즉 별종들이 어떻게 타자화하는지 지켜보자.

먼저 미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벌어지자 비로소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유럽의 열강들과 딜을 하기 시작하는데, 냉전 시대에는 영국과 일본을 지렛대 삼아 유라시아 대륙을 견인하고 대서양 연안에서는 나토를 전방에 내세워 동맹과 비동맹이라는 구분을 통해 유럽을 지배한다.

이로써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품고 있던 오만함의 다른 이름이었던 계몽주의나 인간 이성의 합리성은 대서양을 건너왔던 메이플라워호나 산타마리아호의 돛대 정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청교도들은 기독교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됐지만, 흑인들은 버스 안에서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도 20세기 중후반에나 얻게 되었고 그 전에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보호구역 밖에서 사실상 멸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계몽주의 수준의 합리성은 유교적 관료주의 아래에서 이미 확고부동 했음에도, 성리학이 계몽하는 존재가 인식을 침범하자 관료제 사회는 경직되고 신분제 사회의 관념을 국가 간의 관계에까지 확장한 사대와 오랑캐라는 기제를 통해 제국의 구성을 분명히 해왔다. 더불어 제국의 공간적 지배력과 계몽주의나 관료주의 아래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은 전체주의의 기반이 되곤 한다.

미국과 중국 두 제국이 불러일으키는 파시즘적 충돌이 인종과 종교, 문화 등 전방위에서 예정된, 2023년 초 느닷없이 옐런과 류허가 다보스에 만났다. 그리고 나스닥은 2023년 1월 한 달 동안 11% 가까이 상승하며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드라이브가 전환점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는데도, 어느새 우리 뒤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얼룩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1월 무역수지는 120억달러라는 기억에 없는 적자를 기록했다.

이미 헤지펀드들은 거미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모든 자원(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자원 포함)을 동원하여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거나 아니면, 시바 신의 손을 빌려 창조를 위한 파괴를 기획하고 폐허 위에 우뚝 설 용기를 가다듬어야 한다.

몇 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살아남은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은 세련되어 있지만, 가계의 부채는 세계 최고봉에 서 있다. 추락은 자명하고 가계의 레버리지를 자산으로 계상한 증권, 보험, 은행 중에 상당수는 좀비의 혈관처럼 수축된 수익구조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풀린 만큼 되감지 않으면 인플레를 초래하고 흔히들 버블이라고 부르는, 경제성장 혹은 소득증가 없는 자산 가격의 폭등으로 되먹임하고, 이윽고 자산시장의 붕괴로 이어진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 이래 핵 억지력이 작동하는 한 대리전 성격의 국지전이나 무역전쟁만이 가능하기에, 동아시아와 서유럽의 육상교역량이 해상교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할수록 중국은 세계자본주의 시스템의 보편적 규범을 좀 더 수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독일이나 한국과 같이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 끝에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국가들의 전략적 가치는 영국이나 일본과 같이 지렛대 역할을 하는 국가들을 뛰어넘게 된다. 유라시아 대륙의 남쪽 끝에 있는 인도의 역할이 나날이 증대하는 것은 이러한 전개를 가늠하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매력적인 문화강국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기존의 ‘AIIB’(Asi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가 아닌 유럽과 아시아의 육상무역을 관장하는 새로운 경제협의체의 창설을 제안하고 주도할 수 있다면, ‘잃어버린 30년’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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