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윅 4’, 범람하거나 둑을 터뜨리거나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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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윅 4’, 범람하거나 둑을 터뜨리거나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04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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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윅 4’의 한 장면. /사진=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영화 ‘존윅 4’의 한 장면. /사진=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어느 해 여름인가 군대에 다니고 있을 때, 지금은 상암월드컵구장이 자리 잡은 난지도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일주일가량 수해복구 작업에 동원됐는데, 나중에 들려온 얘기는 한강이 범람해 서울 전역이 물에 잠기는 것을 두려워한 누군가가 둑을 폭파해 약한 지대인 난지도로 물이 흘러 들어가게 함으로써 서울의 물난리를 막았다는 것이었다.

<존 윅 4>에 흘러넘치는 폭력은 그해 여름철의 홍수와 같다. 날마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모두 지쳐가는 것처럼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나갈 때쯤 존 윅의 뒤틀린 걸음걸이와 처진 어깨만큼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도 피곤해진다.

그래서인가 느닷없이 끼어드는 의리나 묘비명에 새겨진 아내와의 애정을 들먹이는 건 일종의 맥거핀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가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은 단지 폭력의 범람과 피곤함 그 자체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1세기 들어서 반복적으로 구사해 온 양적 완화와 양적 긴축의 시소게임이 자산시장을 둘러싼 이들, 위너든 루저든 그들 모두의 탐욕을 소진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가진 달러패권의 에너지 또한 중국과의 패권 다툼에 1차 투쟁장인 재무적 작란(作亂)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보일 만큼 약해져 있다. 헝다 사태와 코로나 이후 초단기 금리 인상 국면에서 중국 금융시장에 의미 있는 타격 혹은 굴복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은 연준의 리액션이 거칠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한다.

<존 윅 4> 최후의 결투가 벌어지는 성당 밑 계단에서 연준이라면 어떤 무기를 꺼내 들까? 먼저 BOJ(일본은행)나 EU의 개별국가 중 일부가 우연이라도 중국 금융당국과 협업하듯이 미 국채를 투매하지 않도록 일정 기간 외환 정책에 자율성을 보장하고 흘러넘치는 유동성을 흘려보낼 수 있게 난지도 같은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미국은 통화량과 이자율을 조절하는 간접적인 방식 혹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 등으로 경쟁국들의 환율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과거 미국에 눈 뜨고 코 베인 나라들도 이제는 미 국채, 금, 희소성 높은 천연광물이나 비트코인까지 다양한 자산을 방패 삼아 버티고 있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최근 출범한 중국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인데, 그 역할이 또 하나의 빅브라더로 불릴지라도 미국과 겨룬 두 번째 합에서도 패하지 않았다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좀 더 정교해진 통합관리기구가 방화벽처럼 작동하는 낙후된 금융관리시스템보다 오히려 연준이나 미 재무부가 다루기 쉬울 수 있다.

미국은 환율 자체에 대한 네고, 달러패권을 기초로 한 양적 완화와 금리 인하, 그리고 그 반대 방향의 작동을 동원해서 경쟁국 싹 자르기, 자본주의 순환 주기에 따른 경기침체 위험의 상쇄, 산업혁신을 위한 구조조정 등을 달성해 왔다. 더불어 페트로 달러 같은 국제 결제 수단의 강제, 금 가격의 급등을 억누르거나 비트코인 시장의 혼란을 방치하는 방식으로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렇지만 실체 없는 이미지와 같은 금 태환 없는 달러의 기축통화란 허명은 달러 유동성이 지구촌 곳곳 중앙은행들의 자산계정을 채우고 있는 만큼, 키아누 리브스가 성당 앞 결투에서 승리하고도 집으로 돌아갈 힘도 없이 지친 모습과 겹쳐진다.

존 윅의 도덕적 딜레마는 정당방위나 킬러만 죽인다거나 하는 따위로 벗어나기 어렵다. 목숨값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실존적 자가당착의 문제로 치환하는데 있다고 보는 게 편하다. 역사의식이 제거된 감수성은 종국에는 조로증(早老症) 환자처럼 삶의 의지가 고갈되어 실재 앞에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주체가 직면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화가 불가피해질수록 국가재정이 만성적인 적자에서 벗어나기 힘들수록, 어떤 제국도 2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쇠락했다.

월가는 금융제국으로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마야의 피라미드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심정으로 희생양을 찾을 것이다. 그 희생양은 세계화의 후퇴 국면에서 약한 연결고리여야 하고 M&A 대상으로 차익을 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차익을 신속하게 회수할 수 있게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금리 인상이 중지되더라도 긴축발작(taper tantrum)처럼 시장금리를 끌어올리고 월가의 누군가는 헤지펀드의 전형적인 초과수익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존 윅 4>의 노바디처럼 개를 키우거나 점장처럼 후견인이 되거나 견자단처럼 눈을 내주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제일 즐거워 보이는 사람은 현상금 중계인 이다. 전장에서 멀어지는 것,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결국 우리는 실리가 아닌 공명심을 택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흥분하기 쉬운 공명심에 실리의 무게 추를 달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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