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의 위기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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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의 위기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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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위기의 민주주의-룰라에서 탄핵까지’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누구에게나 자기 나름대로 찾아낸 1000년 안의 대사건이 있고, 그 맥점을 따라 세계를 해석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성립하자 서유럽은 비로소 실크로드를 벗어나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까지 해양세력은 대륙을 압도했다.

갑판 아래 노예를 가득 실은 범선들은 콜레라나 기독교, 총을 퍼뜨렸지만, 동시에 식민지 국가에 공화정을 각성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역성혁명에 대한 인식도 강박적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끝없는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던 식민지에 이식된 산업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미국이 달러 지배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차관이라는 이름으로 흩뿌린 씨앗 자본을 목화솜처럼 키워낸 몇몇 국가들에 의해 기적적으로 꽃피우게 된다.

또한 20세기 내내 펄럭이던 사회주의의 깃발이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긴장 완화)로 덧없이 꺾이게 되자 차우셰스쿠 같은 존재는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21세기 초반 오바마 집권기에 아랍의 봄과 함께 푸틴, 시진핑, 아베, 에르도안, 두테르테 같은 스토롱맨들이 나타났다.

결국 트럼프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자, 그들은 대의제 의결기구 혹은 직접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좌절시키거나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언론의 공론형성 과정을 왜곡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오바마가 일본 왕에게 넙죽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모습은 다가오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예고하는 것이었다.

전후 70년 세월을 자민당에게 의탁했던 유사 민주주의 국가 일본을 10년 가까이 지배한 아베나 마약과의 전쟁을 공언하며 형·사법 절차를 무력화했던 필리핀의 두테르테, 수사와 기소권마저 가진 판사가 사법 쿠테타를 벌이며 민주정부를 무너뜨리는 동안 대통령 자리에 오른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등은 계속된 경제난 속에 피폐해진 유권자가 자발적으로 헌납한 상징권력을 차지한 것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가 자본주의 순환 주기 안의 충격을 넘게 되면 중산층이 엷어진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문화자본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여가가 필수적인데, 도시 소시민을 포함하는 중산층이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내면화한 정도가 시민사회 문화자본의 일부라고 한다면, 불황의 장기화는 중산층에서 이탈한 노동자 등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는 상징권력의 출현으로 이어지고 이 권력은 폭력적으로 행사되게 마련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장의 좌판에 놓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에 반해, 냉전이 해체되고 서방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했던 중국이나 어떻게든 가스·석유 등의 천연자원을 밑천 삼아 유럽 등과 교역하고 경제성장을 늘려온 러시아가 직면한 사회주의의 위기는 사회주의 자체에 있다. 격대지정(현재 지도자가 차기가 아닌 한 대를 넘어 그 다음의 지도자를 미리 정하는 일)에 의해 안정적으로 집단지도체제의 신진대사를 유지하던 중국은 왜 시진핑의 3기 연임을 받아들인 것인가, 러시아는 왜 푸틴의 헌법을 기만하는 장기집권을 거부하지 못하는가?

역설적으로 부르주아의 정치참여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러시아의 석유 재벌 호도르코프스키가 대선에 출마해서 푸틴과 끝까지 맞서는 것이 가능했다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이끄는 세계 평화)는 트럼프와 함께 내리막길에 들어섰을 것이다.

브라질의 특유한 사법 시스템은 아마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제국에서 파견된 판사가 전권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비롯됐으리라. 신분제 사회의 잔여물이 근대성의 작동을 방해하듯이 식민지 시절의 잔재는 상부구조를 기형적으로 뒤틀어 놓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룰라의 석방과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보우소나루를 앞서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룰라의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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