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디커플링의 시간, 금리·임금 인상이 목숨줄 [영화와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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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디커플링의 시간, 금리·임금 인상이 목숨줄 [영화와 경제]
  • 김경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0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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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사진=CJ ENM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사진=CJ ENM

#. 그가 꺼내 든 것은 정훈희의 <안개>였다. 활동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조나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음악을 틀 수밖에 없다.

20세기 마지막 해에 종로에 있는 어느 영화관에서 <화양연화>를 봤는데, 아직도 오래된 카페의 2층 계단을 오를 때나 강릉 가는 고갯길에서 눈 덮인 산 아래 바다를 내려다볼 때면, <유메지의 테마>가 쿵쾅거린다. 박찬욱의 나무랄 데 없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안개 속에서 세계에 맞닥뜨린 주체가 마침내 타자에게 완전하게 사로잡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할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의사소통에 제약이 가해지거나 의사소통 과정에서 타자임이 발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면 누구든지 붕괴할 여지가 생긴다. 해준이 붕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다른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행운은 권태라는 근두운을 타고나서야 발휘되기 때문에, 그들의 몸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다.

이제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경직된 채로 이자율과 임금으로 이루어진 무한궤도를 굴려야 한다. 그 무한궤도는 다음과 같다. 인플레이션 → 금리 인상 → 임금 인상 → 경기침체 → 실업률 증가 → 경기후퇴.

이 메커니즘을 다룰 때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시장 관련 메신저들은 대부분 금리에 반응하는 전망을 내놓지만, 각 분기점마다 작동하는 보다 핵심적인 요소는 소비위축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금리 인상기에는 이자 상환 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증가하면 말할 것도 없이 가계의 소비는 감소한다.

따라서 자본시장이 붕괴하지 않는 수준에서의 금리 인상에 따른 완화된 경기침체를 받아들여야 하고 기축통화 대비 환율 증가에서 생겨나는 여력의 일부분을 임금인상에 내어줌으로써 소비위축이라는 재난을 에둘러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30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의 뒤통수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또한, 지정학적 위험이 인류 전체에 깔아놓은 대공황으로 가는 길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시진핑의 3기 연임을 위해 지금껏 벌려놓은 미국과의 이자율 차이를 포기하고 어설프게 경기를 진작시키려는 중국이나, 자국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자학적인 통화정책으로 기업의 경쟁력 상실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아베노믹스를 포기하지 못하는 일본, 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에르도안이 경제정책 실패를 만회하려다가 전 세계 금융자본으로부터 외면당해 결국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터키처럼, 금리 인상이라는 과제에 머뭇거린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뒤처진 얼룩말이 되고 말 것이다.

아시아의 스트롱맨들이 권위주의의 비효율성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순간 저지르는 오류들과 디커플링해야 할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서래가 지곡동 살인사건의 실체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산오나 서래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로서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실재는, 권태나 유희가 손 내미는 환상이 아니라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방감이었기 때문이다. 서래는 산오와 달리 뉴스 한 칸으로도 소비되지 않게 세간의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방식으로 세상과 헤어지는데, 이로써 해준의 심상에 각인되어 영원히 살아남게 된다.

금리 인상이 앞으로 예상되는 초인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을 미리 막기 위한(다른 말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한) 처방임을, 아울러 수출주도형 국가에서도 임금인상은 체계적 소비감소가 가져오는 장기불황에 대응하는 목숨줄임을 깨닫는 용기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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