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왕후장상’ 조원태 회장과 “고졸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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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왕후장상’ 조원태 회장과 “고졸신화”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1.1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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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조원태 회장. /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사진=한진그룹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왕후장상 영유종호)”

시황제 진나라의 멸망을 가져온 중국 최초 농민 봉기인 ‘진승·오광의 난’. 품을 팔며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 진승과 오광은 강제 노역까지 동원돼 인솔 책임을 맡습니다. 노역장까지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사형이 기다리는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대 같은 세찬 비. 진승이 오광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세상을 한번 뒤집고 죽는 게 어떠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수백명의 농민들과 뜻을 함께하며 죽기를 각오합니다. 진승은 이들 앞에서 왜 세상을 뒤집어야 하는지 빗소리마저 숨죽이게 외칩니다.

“왕후장상의 씨앗이 어찌 따로 있단 말인가?”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사람의 신분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인하대 학사학위 취소 처분 행정심판에서 국민권익위원회가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교육부는 2018년 조 회장의 편입학 과정에 부정이 발견됐다면서 학사학위 취소를 통보했었습니다.

한진그룹 지주사 격인 한진칼이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연임 건을 다루는데 최근 가족과의 경영권 분쟁과 함께 달갑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3월 주총에서 출석 주주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면 조 회장은 연임에 실패하고 그룹 경영권까지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인하대 운영 재단인 정석인하학원은 이번 행정심판(행정소송 이전 단계) 결과에 불복하고 사법기관에 정식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고졸신화다” “회장 할아비래도 불법편법으로 학사 취득한 거 사실이면 당연 취소해야지” “고졸이 능력 있으면 CEO 해도 된다. 하지만 거짓학위는 범죄자다” “어디 조선 땅에 이런 친구들이 조씨 뿐인가? ‘싸아~~ㄱ다~ 갈아 엎어~ 주~~세여~’.., 나는 이 노래가 넘 좋음” “학력으로 회장 뽑으면 현직 회장들 거의 다 아웃이지” “스카이 내놓으라 하는 인간들도 저사람 앞에서 땅이 닿게 고개 숙이는 이유는 뭐냐?” “이번 마일리지 개편안, 해도해도 너무하다” “어디 한진 뿐이겠냐? 아마 대부분 그럴 걸?”.

조준희 은행장이 지난 2011년 2월 경주 현대호텔에서 전국 영업점장회의를 열었다. /사진=IBK기업은행
조준희 은행장이 지난 2011년 2월 경주 현대호텔에서 전국 영업점장회의를 열었다. /사진=IBK기업은행

지난 2012년 7월 한 은행은 전체 직원의 13%인 1600명을 ‘원샷인사(임직원 승진·이동을 하루에 실시)’하면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던 해외지점 근무 기회를 영업력이 탁월한 숨은 인재들에게 돌렸습니다. 한 점포에 학연·혈연·지연 등 연고가 같은 직원이 몰리지 않도록 ‘시스템 인사’도 선보였습니다.

그 곳의 은행장 인사 목록에는 운전기사와 보일러공, 창구직원을 거쳐 지점장으로 승진한 성공신화의 주인공을 비롯해, 청원경찰 출신 과장, 용역경비원 출신 계장 등 파노라마 같은 인생 역정들이 빼곡했습니다.

그 은행장은 “나도 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이 아니지만 행장이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라며 누구나 행장이 될 수 있는 은행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는 바로 당시 금융권에 고졸채용 바람을 몰고 온 조준희 IBK기업은행장이었습니다. 기업은행 49년 역사 최초의 내부 출신 은행장이었습니다.

학연과 지연, 스펙과 간판이 거미줄처럼 얽힌 한국사회에서 ‘학벌 없는 직장’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간 조준희 은행장. 그가 ‘금과옥조(金科玉條·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겨 꼭 지켜야 할 법칙이나 규정)’처럼 새겼다던 말입니다.

“왕후장상의 씨앗이 어찌 따로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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