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호랑이 아닌 표범 가죽과 ‘가이러스’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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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호랑이 아닌 표범 가죽과 ‘가이러스’ 휴대폰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1.15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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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虎死留皮·호사유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인사유명).’

왕언장은 중국 5대10국 시대 최초의 왕조인 후량의 첫 임금 주온의 장군입니다. 하나에 100근(60kg)이나 되는 철창을 두 손에 들고 늘 임금을 모셔 ‘왕철창’으로도 불리었습니다. 패배를 모를 것 같던 그는 후량이 멸망하고도 항전하다 당나라를 잇는다는 후당의 포로가 됩니다.

“아침에는 양나라, 저녁에는 당나라를 섬긴다면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세상 사람들을 대하겠느냐.”

부하가 되어달라는 후당의 임금 이존욱에게 왕언장은 죽음의 길을 택합니다. 61세에 생을 마감한 그가 늘 즐겨 인용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豹死留皮),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人死留名).’

지금으로부터 4년9개월여 전. 13억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우리나라 스마트폰이 공식 중국어 이름을 바꾸고 출사표를 던집니다. ‘가이러스(盖乐世)’. 즐거움(乐·‘樂’ 간체자), 곧 행복으로 세상을 덮는다(盖世)는 뜻입니다.

‘갤럭시S6’ 스마트폰이 2015년 4월 중국 출시를 알린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2011년부터 중문 표기를 사용했지만, 이후에는 영문 ‘Galaxy’로 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발음도 어렵고 의미 전달도 쉽지 않아, 발음이 비슷하고 뜻도 좋은 표기로 바꾼 것입니다.

14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10년 동안 이어 온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의 출시와 브랜드 전략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매년 2월은 갤럭시S, 8월은 갤럭시노트 신제품을 공개하던 방식에서 노트를 버리고 폴더블 신제품과 S만 가져갈지 등 여러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 김현석 대표가 지난 7일 'CES 2020 기조연설'에서 미래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삼성전자의 최신 기술과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김현석 대표가 지난 7일 'CES 2020 기조연설'에서 미래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삼성전자의 최신 기술과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지난 2010년, ‘옴니아’의 흑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브랜드 가치 5조원에 달했던 애니콜을 과감하게 버리고 첫 갤럭시S를 출시합니다. 이후 대화면 시대를 예견하며 다음해 갤럭시노트를 내놨고 그 해 애플을 꺾고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 1위에 오릅니다. 이때부터 10년 동안 브랜드 전략은 상반기 ‘갤럭시S’, 하반기 ‘갤럭시노트’로 굳어집니다.

이처럼 10년을 먹여 살린 갤럭시의 전략수정 고민은 폴더블폰 시대가 태동하면서 시작됐습니다. PC 같은 대화면을 접어 휴대성까지 높인 폴더블폰 등장으로 노트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S10 후속작 명칭으로 S11 대신 ‘S20’을 선택한 것은 갤럭시 역사 대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 같은 소식에 누리꾼들은 ‘갤럭시’에 대한 진한 애정과 함께 정해지지 않은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냅니다.

“절대 버릴 일 없다. 삼성한테 그동안 최고로 성공적이었던 브랜드가 갤럭시다. 그걸 제 손으로 버리는 건 제일 멍청한 행동” “노트와 s를 합칠 순 있어도 갤럭시를 버리면 OO꼴만 난다” “노트 아이폰 왔다갔다하다 노트로 정착했는데 노트 버리면 아이폰으로 갈 거임” “폴더블폰? 사람들은 폴더블폰 관심을 갖는 게 작은 알약 크기였다가 던지면 집이 되는 그런 마술에 관심을 갖는 거다” “가만히 잘되는 브랜드를 왜 없애나? 윗분들 탁상공론은 아니신지?” “애플이 아이폰 버리겠다고 하는 거랑 똑같은데 하면 바보지”.

지난 2005년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개명’ 절차가 쉽고 간단해진 이후 개명신청도 연간 12만~17만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지난 2018년 개명신청은 14만1666건이었습니다. 대법원의 개명절차 간소화 이유는 ‘자기 결정권과 인격·행복추구권 보장’이었습니다.

행복으로 세상을 덮겠다던 스마트폰 ‘가이러스’. 이름을 바꿀지, 계속 쓸지의 ‘개명 결정권’은 지구촌 유저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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