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경제] 창업주 신격호와 ‘기이지수’ 국민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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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창업주 신격호와 ‘기이지수’ 국민기업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1.2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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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민증 까봐라.”

모르는 사람, 특히 남성끼리 말다툼이 커지면 으레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민증(주민등록증)’의 숫자가 다툼을 정리해주는 비율은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다툼은 ‘장유유서(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음)’로 대변되는 유교의 영향이라고 알고들 있습니다.

학자들은 취학연령과 교육과정을 법제화한 근대적 학제 도입으로 ‘민증 다툼’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모든 학생이 같은 나이에 입학해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니 ‘나이’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성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화를 지향하는 사회, 이것이 나이 따지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 중인 신격호 명예회장.(맨왼쪽·연도 미상) /사진=롯데지주
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 중인 신격호 명예회장.(맨왼쪽·연도 미상) /사진=롯데지주

한국 사회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이’를 가리키는 한자말들도 오랫동안 장수하며 사용되고 있습니다.

학문에 뜻을 둔다는 ‘지학(志學)’은 15세, 공자가 자립했다는 데서 나온 ‘이립(而立)’은 30세를 가리킵니다. 세상일에 미혹함이 없다는 불혹(不惑)은 40세, 공자가 인생의 길흉과 화복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지천명(知天命)은 50세,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는 ‘이순(耳順)’은 60세를 가리킵니다.

육십갑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회갑(回甲)’은 61세, 회갑의 바로 다음해인 62세는 ‘진갑(進甲)’이라고 합니다. 중국 최고의 시인 당나라 두보의 시에서 나온 ‘고희(古稀)’는 70세이며 ‘망팔(望八)’은 71세, ‘희수(喜壽)’는 77세, ‘산수(傘壽)’는 80세, ‘망구(望九)’는 81세, ‘미수(米壽)’는 88세를 가리킵니다.

또 ‘구순(九旬)’과 ‘동리(凍梨)’는 90세, ‘백수(白壽)’는 99세, 기이지수(其頤之壽)와 상수(上壽)는 100세를 이릅니다.

신격호 롯데 창업 회장이 지난 19일 ‘기이지수’를 불과 1년 앞두고 향년 99세(백수)로 별세했습니다. 1921년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나 풍선껌 사업으로 시작해 매출 100조원에 달하는 기업을 일궈낸 고인은 대기업 창업주 가운데 최고령 CEO였습니다. 이로써 ‘창업 1세대’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창업 1세대들은 1970년대 조선, 건설,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을 창업하며 고도성장을 이끌어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역사라 할 수 있는 5대 대기업집단(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창업주들은 얼마나 살았을까요.

먼저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1910년 2월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나 1987년 11월까지 희수(77세)를 누렸습니다.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북한)에서 태어난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2001년 3월 86세의 나이로 별세, 미수(88세)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1929년 11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난 최종현 SK 창업 회장은 1998년 8월 고희를 바로 앞둔 69세에 별세했습니다. 5대 창업주 가운데 가장 먼저인 1907년 8월 경남 진주시에서 태어난 구인회 LG 창업 회장은 1969년 12월 이순(60세)을 넘긴 지 2년 뒤인 62세에 별세했습니다.

대기업집단 공정자산 순위.(단위 : 십억원, 개) /출처=CEO스코어
대기업집단 공정자산 순위.(단위 : 십억원, 개) /출처=CEO스코어

한편 국내 대기업집단의 자산규모 순위가 지난 10년 새 크게 요동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년 전과 똑같은 순위를 유지한 대기업집단은 59곳 중 7곳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포스코 등 상위 6개 그룹은 부동의 1~6위를 지켰습니다.

지난 15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대기업집단의 지난해 9월 말 기준 공정자산을 집계한 결과, 총 2138조698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위 그룹들의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19위인 대림을 제외한 7위부터 59위까지 모든 기업의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2010년 9위와 10위였던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은 59위와 13위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또 DB(20→34위), 동국제강(27→52위), 한국지엠(30→51위), 하이트진로(38→56위) 등도 두 자릿수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자산 규모가 3조원대로 줄어들게 돼 올해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창업 100년이 넘은 기업은 10곳에 불과합니다.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옛 조흥은행), 우리은행(옛 상업은행), 몽고식품, 광장, 보진재, 성창기업지주, KR모터스, 경방이 그들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국민의 기업으로 자라서 ‘상수(上壽)’인 100세를 넘도록 장수할 수 있는 ‘상수(上手·남보다 뛰어난 수나 솜씨)’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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