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혜주는 엔비디아·삼성전자? ‘곡괭이와 삽’을 사라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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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수혜주는 엔비디아·삼성전자? ‘곡괭이와 삽’을 사라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6.1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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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혁명’의 시대 (하)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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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은 한국 증시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분야일 뿐만 아니라 시가총액 비중도 가장 큰 업종이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1, 2위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반도체 소부장 기업이 실핏줄처럼 반도체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은 얼마나 될까. 네이버에서 분류한 기준으로 보면 무려 132개사에 달한다. 장비 업체가 85개사이고 나머지는 소재와 부품회사들이다. 이들 기업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95조원 수준인데, 네덜란드의 ASML이나 일본의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춘 거대 기업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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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소부장 기업을 반도체 종합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비교해 보면 소부장 기업들의 시가총액 규모가 보다 자세히 드러난다. 소부장 기업 132개사가 반도체 업종 전체 시가총액(707조5941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3.4%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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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은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열풍으로부터 과연 얼마만큼 수혜를 봤을까. 챗GPT가 등장한 2022년 말 대비 주가 상승률 상위 20개사를 살펴보면, 이 가운데 9개 종목이 인공지능(AI) 관련주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종목은 소부장 업종 내 시가총액 1위로 우뚝 올라선 한미반도체다.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에 필요한 TC(열 압착) 본더 장비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업체이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동사의 TC 본더 장비 수요가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최근 한화정밀기계에서 TC 본딩 장비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면서 독주 체제가 위협받고 있지만, 탄탄한 기술력이 뒷받침되고 있어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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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서는 AI 열풍 덕분에 떼돈을 벌어들이는 주요 업체들, 가령 미국의 엔비디아, 타이완의 TSMC, 네덜란드의 ASML, 일본의 도쿄일렉트론과 같은 회사들뿐 아니라 전력 유틸리티, 에너지, 소재 기업 등에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데이터 센터 확장 등으로 AI 붐이 확산하면서 이들 업종까지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픽앤쇼벨(Pick & Shovel)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1800년대 중반 무렵 미국 서부지역에 골드러시 광풍이 불었을 때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은 정작 금광 채굴업자가 아니라 곡괭이와 삽, 청바지 등을 팔았던 용품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AI 열풍이 HBM을 직접 제조하는 회사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과 종목들로 확산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에 상장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실질적으로 얼마만큼 불어났을까. 지난해 이후 신규 상장된 종목들을 제외하고 비교 가능한 120개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시가총액 합산으로 113.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말 기준으로 43조2113억원이던 120개사의 합산 시가총액이 지난 7일 기준으로 92조4242억원까지 불어난 셈인데, AI 열풍을 주도하는 몇몇 대표적인 기업들의 폭발적인 주가 상승 흐름을 제외하고 나면 아직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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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합산 시가총액이 두 배가량 불어나는 동안 한미반도체는 단연 돋보이는 주가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1월만 하더라도 시가총액이 겨우 1조원을 맴돌고 있었던 터여서 최근의 가파른 주가 상승세는 특히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여름, 2차전지 테마주에 대한 투기적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속칭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던 인물로부터 ‘대표적인 고평가 주식’으로 자주 입길에 오르내린 점까지 고려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주가 흐름이 아닐 수 없다. 2차전지 관련 주들이 엄청난 거래량과 함께 대시세를 분출하던 날(지난해 7월 26일) 한미반도체의 시가총액은 지금의 4분의 1 수준인 4조2635억원이었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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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스케이홀딩스는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에 필요한 장비 제조업체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 업체의 공격적인 HBM CAPA 증설에 따른 디스컴(Descum)·리플로우(Reflow) 매출 증가세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향후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종목이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순위는 12위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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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윙은 반도체 검사 장비 전문 업체이다.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하는 반면, HBM은 D램보다 수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다. 그 때문에 반도체 검사 장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추세인데 테크윙이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소부장 업체들 가운데 시총 순위는 어느새 10위까지 올랐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와이씨는 반도체 검사 장비 업체다.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테스트 공정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 가운데 시가총액 순위는 15위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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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강한 국가다. 반도체, 자동차, 화학, 조선, 철강 업종의 기업들이 한국 증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22년 늦가을에 갑작스레 등장한 챗GPT가 전 세계 IT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젠슨 황이 이끄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벌써 공급 부족에 시달릴 만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3개사가 전부다. 이런 여건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뿐 아니라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도 크나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반도체 장비 업체나 소재 업체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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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술 문명을 주도하는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겪게 될 회복하기 힘든 타격이 두렵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매년 데이터 처리 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린 신제품을 공급하면서 전 세계 데이터 센터를 AI 공장으로 뒤바꿔 놓을 기세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직접 공급하는 칩 생산업체뿐 아니라 반도체 생산 공정에 다양한 장비와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소부장 업체들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젠슨 황.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젠슨 황.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엔비디아는 비트코인 채굴 광풍이 불어닥쳤을 때 성능 좋은 GPU를 판매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 적이 있다. 금광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몰려들던 사람들에게 곡괭이와 청바지를 파는 전략이 21세기에 고스란히 재현된 셈이다. 그래픽 카드 제조업체인 줄로만 알았던 엔비디아가 어느새 AI 가속기라는 놀라운 도구를 판매하면서 인공지능(AI) 혁명 시대를 주도하고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철학자가 일찌감치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 말하지 않고 호모 파베르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으로부터 생각하는 능력(지능)을 발달시킨 인류가 마침내 지능까지도 인공적인 도구를 통해 발달시키는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 줄 아는 기업들을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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