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50년 시작’ HD현대, 1982년생 정기선의 미래는?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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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50년 시작’ HD현대, 1982년생 정기선의 미래는?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2.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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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2022년 6월 HD현대그룹은 창업 50주년 기념 <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를 발간했다. 1972년 울산조선소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그룹(현 HD현대그룹)을 일으킨 고 정주영 회장을 필두로 정몽준 전 회장, 현 권오갑 회장 등 내로라하는 경영인들을 책 서두에 소개하고, 오늘날 HD현대그룹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미래 청사진을 소개하는 마무리 단락에는 한 청년 경영인의 인터뷰를 큰 비중으로 다뤘다. 인터뷰 대상은 바로 2022년 3월 지주회사인 HD현대 대표이사와 조선 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정기선 사장이었다. 인터뷰 제목은 <세계 1위 십빌더(ship builder)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는 퓨처빌더(future builder)로>이다. 1년 8개월 전 발간한 이러한 50년사는 이후 벌어질 HD현대 지배구조의 변화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자료 1. /출처=HD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자료 1. /출처=HD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1982년 출생한 정기선 부회장은 불과 마흔둘의 나이에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순위 9위 재벌 그룹의 최고 경영자에 올랐다. HD현대 회장에 권오갑이라는 전문 경영인이 있으나 사실상 HD현대그룹은 총수의 친정체제로 전환했다. 1989년 정몽준 전 회장이 정치 활동으로 물러난 후 50년 역사의 대부분인 약 35년 동안 HD현대그룹은 재벌가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 맡아 성장했다. HD현대그룹은 2015년 전후 세계적 조선산업 불황으로 거의 문을 닫기 직전까지 궁지에 몰렸었는데, 이때 전문 경영인 시스템이 뼈를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이끌며 난관을 헤쳐나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고 50년사는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 경영인 시스템의 모범 사례가 HD현대그룹의 성장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랬던 HD현대그룹이 삼성, 현대차, 엘지, 한화, 롯데 등등처럼 3세 경영이라는 총수가 있는 재벌 그룹 대열에 다시 들어서고 말았다.

정기선 부회장의 언론 기사를 보면 성격과 능력에 대한 칭찬 일색이어서 평판 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성장 과정을 일독한 사람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상위 0.001%의 혜택을 누렸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재벌가 3세인 정기선 부회장은 외국어고등학교와 SKY 대학(연세대) 출신이다. 2007년 독특하게 동아일보 인턴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한 뒤 미국 초일류 대학(스탠퍼드)의 MBA를 받았다. 이어 2010년에는 크레디트 스위스 인턴, 2011년에는 보스턴컨설팅 그룹 한국지사 컨설턴트로 경력을 쌓았고,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HD현대그룹에 전격 복귀한다. 그가 입사해서 부장 직책을 달기까지는 불과 4년이 걸렸다.

자료 2. /출처=HD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자료 2. /출처=HD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50년사’

이후 그의 승진 속도는 더욱 빠르다. 그룹이 불황을 겪으며 적자를 내던 시절인 2014년에는 2계단을 뛰어넘어 상무가 됐고, 그룹이 눈물겨운 자구 계획을 추진하며 어수선하던 2015년 11월에는 전무로 승진하며 현대중공업 기획실 총괄 부문장, 재무 부문장, 조선해양 총괄 부문장을 맡았다. 그룹의 3개 중요 부문장을 독점한 그를, 직원들이 느낀 위세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2015년도가 정기선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HD현대그룹을 지배하기 시작한 원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어 2017년 4월에는 현대중공업이 현대로보틱스(이후 현대중공업지주→HD현대),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으로 사업을 분할하는 역사적 변화가 일어났다. 2016년 말 출범한 현대그린에너지, 현대글로벌서비스(현 현대마린솔루션)까지 포함해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적 경영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현대중공업은 6개 분야로 사업 분할했다. 사업 분할 후 HD현대그룹은 시가총액이 급증하는 등 시장은 구조조정을 높게 평가했다. 이틈을 (기획을 전담한) 정기선 부회장은 놓치지 않았다. 2017년 11월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현대중공업 경영지원실장,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로, 2018년에는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까지 맡았으며, 2022년 3월 HD현대 대표이사와 HD한국조선해양(조선 부문 중간 지주) 대표이사까지 오른 것이다. 정 부회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 부장으로 복귀한 지 10년 만에 그룹을 완전히 장악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해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자료 3.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자료 3. /출처=공정거래위원회

그러나 역시 주식회사 시스템에는 ‘지분’이 깡패다. 아무리 그룹 직위가 높아도 지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자료 3은 공정위가 발표한 지난해 5월 1일 기준 ‘HD현대 지분도’이다. 지분도에 따르면 HD현대가 지주회사이고 사업 분야별로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오일뱅크(옛 현대그린에너지), HD현대사이트솔루션(옛 현대건설기계) 등이 중간 지주 역할 담당하고 있으며 기타 회사들이 분포하고 있다. 이 가운데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정기선 부회장이 대표를 맡았었고 대형 기업공개를 앞두고 있어서 화제다. 공정위는 이러한 HD현대를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총수는 다름없는 정몽준 전 회장으로 HD현대 지분 26.6%를 소유하고 있다. 2017년 현대중공업 사업 분할 과정에서 정몽준 전 회장의 현대중공업 지분은 10.2%에 불과했으나 자사주 교환으로 HD현대 지분 26.6%를 확보했다. 이 과정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였다. 어쨌든 지분도에서 보듯 HD현대 지분이 5.3%에 불과한 정기선 부회장은 그룹 대표이사 직위에 걸맞은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자료 4. /출처=HD현대, 금융감독원
자료 4. /출처=HD현대, 금융감독원

이재용 삼성 회장은 무리한 지분 확보 전략이 초래한 사법 리스크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정기선 부회장이 어떠한 방법으로 지분을 확충할 것인지 시장은 주목한다. 현재 정 부회장의 HD현대 지분은 2018년 4월 정몽준 전 회장으로부터 약 3000억원을 증여받아 현재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무렵 HD현대그룹은 공교롭게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시가배당 기준 5% 이상 고배당 정책을 발표했다. 당연히 시장은 주주 우대정책을 반겼으나, 역설적으로 총수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HD현대는 회계연도 기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최저 5.1% 이상 최고 9.6%의 배당률을 기록했으며, 그 결과 해당 기간 누계로 정몽준 회장은 4000억, 정 부회장은 860억원의 배당을 챙겼다. 이에 따라 정기선 부회장은 2018년 증여세의 상당 부분을 해소했을 것이다.

앞으로 정 부회장의 지분 확보를 위한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재용 회장처럼 CB(전환사채), 합병 등의 전략을 이용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사법 리스크를 감당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명쾌한 방법은 정몽준 총수의 지분 26.6%를 증여받고 그룹 계열사의 경영 이익 제고 및 고배당으로 증여세를 변제하는 것이다. 지난 26일 현재 HD현대의 시가총액은 5조4821억원이므로 정 부회장이 총수로부터 지분 20%를 증여받아 25% 이상 대주주로 등극하려면 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증여가 필요하다. 60% 증여세율을 가정할 때 약 6600억원의 증여세 납부도 부담이다. 증여세 금액이 커 연부연납을 신청하고 5년간 납부한다 해도 연간 13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증여세 50%를 담보대출로 납부하고 나머지를 연부연납 하더라도 이자까지 매년 약 80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HD현대그룹이 밝힌 배당정책에는 2023년까지 배당 성향 70%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이 배당정책을 계속 고수한다고 가정하여 정 부회장이 부담할 증여세에서 필요 당기순이익을 역산하면 HD현대는 매년 4600억원 이상 순이익을 유지해야 한다.

자료 5. /출처=HD현대
자료 5. /출처=HD현대

2022년 HD현대의 연결 당기순이익은 1조4000억원이었다. 그러나 2021년과 2020년은 적자였고, 2019년과 2018년은 각각 1730억원과 2686억원이었다. 최근 공시한 2023년 실적도 2645억원으로 기대치 이하다. 정 부회장이 이처럼 변동성이 큰 HD현대그룹 경영 여건에서 배당에 기대어 증여를 받고 지분을 추가 확보한다면, 상황이 나빠지는 해가 계속될 때는 개인 파산하거나 증여세 납부를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정 부회장 지분율이 급감하면서 HD현대그룹은 적대적 M&A나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3세 경영 지배구조 공격’에 노출될 것이다. 정 부회장에게는 일단 그룹 순이익을 안정시키면서 아울러 극대화하는 경영전략을 추진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HD현대는 2021년 3월 미래 성장 계획을 발표했다. 친환경 선박과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2050년까지의 그룹 성장 로드맵을 그렸는데, 최근 정기선 부회장의 행보는 이 계획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계획이 증여세를 내주기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결과도 불투명하다. HD현대그룹의 위기 해소 과정을 틈타 정 부회장은 총수 친정체제 재구축을 추진하는데 일정 부분 성공했으나 당분간 지분 확보의 허들은 넘기 힘들어 보인다. 상당수 재벌가는 유사한 지배구조 장악이 벽에 부딪히면 불법 논란 소지가 있는 꼼수를 택했다. 정 부회장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지만, 이런 가운데 HD현대그룹 조선 부문 중간 지주인 한국조선해양 사외이사에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을 영입할 예정이라는 언론보도는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42세 불혹에 들어선 정기선 부회장이 지배구조를 장악하기 위해 정권과 접점을 늘리는 등 좀 더 은밀한 묘수에 유혹되지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결국 전문 경영인 시대 종말은 HD현대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의 서막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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